[토요판] 뉴스분석 왜?
소득주도성장론 논쟁
소득주도성장론 논쟁
소득주도성장론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경제성장을 위해선 생산성을 높이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임금 결정에는 생산성 요인도 작동하지만 협상력도 중요한 요소이며, 예를 들어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이 낮은 것은 이들의 협상력이 낮은 데서도 비롯된다. ‘임금=생산성’이라는 등식이 언제나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사진은 서울시 학교 비정규직 노조원들의 총파업 결의대회 모습.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 문재인 정부의 경제철학을 상징하는 소득주도성장론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가계소득 증대가 총수요 확대에 미치는 효과가 불분명하고 구체적 정책수단도 명확하지 않다는 게 비판의 주된 논거다. 소득주도성장론은 과연 한국 경제 위기 탈출의 해법일 수 있을까? 독자들의 이해와 판단을 돕기 위해, 24일 열린 한국사회경제학회 학술대회에서 ‘소득주도성장론에 대한 비판과 반비판’이란 제목으로 발표된 글을 간추려 소개한다.
문재인 정부 핵심 경제철학으로 부상
이윤몫 줄어 총수요 효과 불확실하고
구체적 정책수단 불분명한 건 한계 기업으로선 임금 억제 바람직하나
경제 전체로는 ‘비용의 역설’ 나타나
한국경제 장기침체 예방을 위한
구조적 총수요 정책으로 이해해야 ‘소득주도성장론’이 노동을 존중하고 ‘사람이 먼저’라는 슬로건을 내건 새 정부의 핵심 경제철학으로 부상했다. 새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소득주도성장론은 임금주도성장을 확장한 개념으로, 임금을 포함한 가계의 소득 증대를 통해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을 모색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한국에서 소득주도라는 용어를 쓰게 된 것은 자영업 비중이 높은 점을 고려해 임금 형태 이외의 노동소득까지 범위를 확장하기 위해서다. 편의상 여기서는 소득주도성장과 임금주도성장을 구분하지 않고 쓰기로 한다.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일반이론>의 마지막 장에 이렇게 썼다. 임금주도성장 개념의 단초를 제공한 대목이다. “저축은 필요 이상으로 많으며, 소비 성향을 증가시킬 수 있도록 소득의 재분배를 도모하는 제 방안은 자본의 성장에 적극적으로 기여하게 될 것이다 (…) 관습적인 소비 성향의 증가가 일반적으로 (즉, 완전고용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투자유인을 동시에 증가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데 (…).” 지출 성향이 낮은 곳에서 지출 성향이 높은 곳으로 소득을 이전하면 전체적으로 총수요가 증가한다. 지출 성향이 낮은 소득은 대개 자본소득이거나 부자의 소득이므로, 소득의 재분배는 분배의 교정 차원을 넘어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방안이기도 하다. ‘포스트 케인지언’이라고 불리는 학자들은 이러한 해석을 중시했다. 그들은 소득의 재분배가 총수요를 자극할 뿐만 아니라, 설비 가동률과 이윤율을 높이게 되므로 투자가 활성화되어 장기적으로 성장을 촉진한다는 이론을 제기했다. 분배와 성장의 선순환을 공식화한 것으로, 임금 상승이 소비와 투자를 모두 자극할 수 있다는 견해다. 이론의 문제가 아니라 실증의 문제 그러나 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1990년 바두리와 마글린의 연구 이래 임금몫의 상승이 소비와 투자에 미치는 효과를 분리해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게 된다. 임금몫의 상승이 소비를 촉진하고 기존 설비의 가동률을 높이는 것은 맞다고 해도, 이윤몫의 감소가 설비를 확장할 투자 인센티브를 감소시키므로 총수요에 미치는 효과는 불확실하다. 어떤 국면에서는 임금주도성장이, 또 다른 국면에서는 이윤주도성장이 지배할 수 있다. 따라서 임금 상승이 성장을 추동할지 여부는 이론의 문제가 아니라 실증의 문제로 귀착된다.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에서도 확인된 바 있듯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경우 1980년대 이후에 임금몫 또는 가계소득이 차지하는 몫이 하락하는 추세를 보였다. 많은 연구들이 이러한 경향이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음을 보여줬다. 많은 국가가 이윤주도성장이 아닌 임금주도성장 특성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판정된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제연합무역개발회의(UNCTAD), 국제노동기구(ILO) 등에서 임금주도성장을 대안적 성장모델로 제시하기도 했다. 주류경제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성장론에 관한 한 역시 혁신성장이 모범답안이다. 경제는 잠재성장률 추세를 중심으로 변동하므로 잠재성장률 자체를 끌어올리는 것이 성장이고, 총수요는 경기변동을 유발하는 요인이지만 적절한 안정화 정책으로 그 변동성을 줄일 수 있다. 잠재성장률은 공급 쪽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주류경제학의 시각에서 성장은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과정이며 기술 진보가 성장을 좌우한다. 설사 수요를 강조하는 케인스주의 입장에 선다 하더라도, 외생변수와 내생변수의 구분, 엄밀한 인과관계를 중시하는 경제학의 방법론에 비추어 볼 때, 임금주도성장론은 비판받을 여지가 사실 적지 않다. 잠시 임금주도성장을 논외로 하고 교과서적인 케인스 경제학을 떠올려보자. 이자율, 환율, 소득은 내생변수이고, 여기에 재정정책이나 통화정책으로 충격을 가하면 내생변수들이 반응한다. 예를 들어 확장적 통화정책에 의한 이자율의 하락은 소비와 투자를 증가시킨다. 환율의 절하는 순수출을 증가시킨다. 그렇지만 이자율주도성장, 환율주도성장이라는 용어는 쓰지 않는다. 임금몫은 변수로 등장하지도 않을뿐더러 총수요에 미치는 영향은 모호하다. 임금주도성장, 이윤주도성장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 자체가 주류경제학의 관점에서 보면 매우 어색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이론적으로 공급 측면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점, 분배가 성장에 영향을 줄 수도 있지만 역의 인과관계도 존재한다는 점, 임금(몫)의 외생성 가정이 설득력 있게 전달되지 않는 점, 케인스적 관점에서 공급보다 수요를 중시한다 하더라도 수요체제 자체도 임금주도와 이윤주도로 구분된다는 점, 임금주도성장을 위한 정책수단 제시가 명쾌하지 않은 점 등은 임금주도성장론이 극복해야 할 쉽지 않은 과제들이다. 단기 처방보다 구조전환 필요한 한국 경제 한국에서 임금주도/소득주도성장론을 바라보는 태도는 아직은 매우 이념적이고 정서적인 듯하다. 과거 고도성장을 경험했고 수출 주도로 ‘큰돈을 벌어 온’ 한국 경제의 현실을 고려할 때, 낯설 뿐만 아니라 불편하게까지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은 이해할 만하다. 한국 경제의 성장률은 계속 낮아지고 있다. 하락의 추세는 상당히 급격한데, 문제는 박근혜 정부 시절 2%대의 성장마저 부동산 경기 부양 등 인위적 부양 조처를 통해 가까스로 얻은 성적이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소득주도성장 전략은 한국 경제의 성장률 하락 추세를 반전시킬 수 있을 것인가? 우선 한국 경제의 여건부터 살펴보자. 현재 한국의 실질금리는 0에 가까운 수준이다. 이자율이 하락하면 투자가 늘고 저축이 감소하는 기제가 작동해야 하지만, 저축이 투자를 크게 초과하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과거에 비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총투자율이 내려갔다고 해도 여전히 그 비율은 30%에 육박하므로 과소투자가 원인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과소투자보다는 과잉저축, 즉 과소소비의 문제가 더 두드러져 보인다. 박근혜 정부는 자동차세 한시 인하,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 행사 등으로 소비 활성화를 시도하였으나 반짝 효과에 그쳤을 뿐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다. 단기 처방보다는 구조전환이 필요한 이유다.
한국 경제는 성장 잠재력이 갈수록 낮아지고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경제활력 감소라는 구조적 위기에 처해 있다. 소득주도성장론은 한국 경제의 장기 침체를 예방하기 위한 구조적 총수요 확대 정책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사진은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어르신들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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