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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소득주도 성장론, 만병치료약 아닌 경기침체 예방약이다

등록 2017-08-27 15:42수정 2017-08-27 16:00

[토요판] 뉴스분석 왜?
소득주도성장론 논쟁
소득주도성장론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경제성장을 위해선 생산성을 높이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임금 결정에는 생산성 요인도 작동하지만 협상력도 중요한 요소이며, 예를 들어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이 낮은 것은 이들의 협상력이 낮은 데서도 비롯된다. ‘임금=생산성’이라는 등식이 언제나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사진은 서울시 학교 비정규직 노조원들의 총파업 결의대회 모습.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소득주도성장론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경제성장을 위해선 생산성을 높이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임금 결정에는 생산성 요인도 작동하지만 협상력도 중요한 요소이며, 예를 들어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이 낮은 것은 이들의 협상력이 낮은 데서도 비롯된다. ‘임금=생산성’이라는 등식이 언제나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사진은 서울시 학교 비정규직 노조원들의 총파업 결의대회 모습.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 문재인 정부의 경제철학을 상징하는 소득주도성장론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가계소득 증대가 총수요 확대에 미치는 효과가 불분명하고 구체적 정책수단도 명확하지 않다는 게 비판의 주된 논거다. 소득주도성장론은 과연 한국 경제 위기 탈출의 해법일 수 있을까? 독자들의 이해와 판단을 돕기 위해, 24일 열린 한국사회경제학회 학술대회에서 ‘소득주도성장론에 대한 비판과 반비판’이란 제목으로 발표된 글을 간추려 소개한다.

가계소득 늘려 성장-분배 선순환 모색
문재인 정부 핵심 경제철학으로 부상
이윤몫 줄어 총수요 효과 불확실하고
구체적 정책수단 불분명한 건 한계

기업으로선 임금 억제 바람직하나
경제 전체로는 ‘비용의 역설’ 나타나
한국경제 장기침체 예방을 위한
구조적 총수요 정책으로 이해해야

‘소득주도성장론’이 노동을 존중하고 ‘사람이 먼저’라는 슬로건을 내건 새 정부의 핵심 경제철학으로 부상했다. 새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소득주도성장론은 임금주도성장을 확장한 개념으로, 임금을 포함한 가계의 소득 증대를 통해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을 모색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한국에서 소득주도라는 용어를 쓰게 된 것은 자영업 비중이 높은 점을 고려해 임금 형태 이외의 노동소득까지 범위를 확장하기 위해서다. 편의상 여기서는 소득주도성장과 임금주도성장을 구분하지 않고 쓰기로 한다.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일반이론>의 마지막 장에 이렇게 썼다. 임금주도성장 개념의 단초를 제공한 대목이다. “저축은 필요 이상으로 많으며, 소비 성향을 증가시킬 수 있도록 소득의 재분배를 도모하는 제 방안은 자본의 성장에 적극적으로 기여하게 될 것이다 (…) 관습적인 소비 성향의 증가가 일반적으로 (즉, 완전고용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투자유인을 동시에 증가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데 (…).”

지출 성향이 낮은 곳에서 지출 성향이 높은 곳으로 소득을 이전하면 전체적으로 총수요가 증가한다. 지출 성향이 낮은 소득은 대개 자본소득이거나 부자의 소득이므로, 소득의 재분배는 분배의 교정 차원을 넘어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방안이기도 하다. ‘포스트 케인지언’이라고 불리는 학자들은 이러한 해석을 중시했다. 그들은 소득의 재분배가 총수요를 자극할 뿐만 아니라, 설비 가동률과 이윤율을 높이게 되므로 투자가 활성화되어 장기적으로 성장을 촉진한다는 이론을 제기했다. 분배와 성장의 선순환을 공식화한 것으로, 임금 상승이 소비와 투자를 모두 자극할 수 있다는 견해다.

이론의 문제가 아니라 실증의 문제

그러나 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1990년 바두리와 마글린의 연구 이래 임금몫의 상승이 소비와 투자에 미치는 효과를 분리해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게 된다. 임금몫의 상승이 소비를 촉진하고 기존 설비의 가동률을 높이는 것은 맞다고 해도, 이윤몫의 감소가 설비를 확장할 투자 인센티브를 감소시키므로 총수요에 미치는 효과는 불확실하다. 어떤 국면에서는 임금주도성장이, 또 다른 국면에서는 이윤주도성장이 지배할 수 있다. 따라서 임금 상승이 성장을 추동할지 여부는 이론의 문제가 아니라 실증의 문제로 귀착된다.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에서도 확인된 바 있듯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경우 1980년대 이후에 임금몫 또는 가계소득이 차지하는 몫이 하락하는 추세를 보였다. 많은 연구들이 이러한 경향이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음을 보여줬다. 많은 국가가 이윤주도성장이 아닌 임금주도성장 특성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판정된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제연합무역개발회의(UNCTAD), 국제노동기구(ILO) 등에서 임금주도성장을 대안적 성장모델로 제시하기도 했다.

주류경제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성장론에 관한 한 역시 혁신성장이 모범답안이다. 경제는 잠재성장률 추세를 중심으로 변동하므로 잠재성장률 자체를 끌어올리는 것이 성장이고, 총수요는 경기변동을 유발하는 요인이지만 적절한 안정화 정책으로 그 변동성을 줄일 수 있다. 잠재성장률은 공급 쪽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주류경제학의 시각에서 성장은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과정이며 기술 진보가 성장을 좌우한다. 설사 수요를 강조하는 케인스주의 입장에 선다 하더라도, 외생변수와 내생변수의 구분, 엄밀한 인과관계를 중시하는 경제학의 방법론에 비추어 볼 때, 임금주도성장론은 비판받을 여지가 사실 적지 않다.

잠시 임금주도성장을 논외로 하고 교과서적인 케인스 경제학을 떠올려보자. 이자율, 환율, 소득은 내생변수이고, 여기에 재정정책이나 통화정책으로 충격을 가하면 내생변수들이 반응한다. 예를 들어 확장적 통화정책에 의한 이자율의 하락은 소비와 투자를 증가시킨다. 환율의 절하는 순수출을 증가시킨다. 그렇지만 이자율주도성장, 환율주도성장이라는 용어는 쓰지 않는다. 임금몫은 변수로 등장하지도 않을뿐더러 총수요에 미치는 영향은 모호하다. 임금주도성장, 이윤주도성장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 자체가 주류경제학의 관점에서 보면 매우 어색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이론적으로 공급 측면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점, 분배가 성장에 영향을 줄 수도 있지만 역의 인과관계도 존재한다는 점, 임금(몫)의 외생성 가정이 설득력 있게 전달되지 않는 점, 케인스적 관점에서 공급보다 수요를 중시한다 하더라도 수요체제 자체도 임금주도와 이윤주도로 구분된다는 점, 임금주도성장을 위한 정책수단 제시가 명쾌하지 않은 점 등은 임금주도성장론이 극복해야 할 쉽지 않은 과제들이다.

단기 처방보다 구조전환 필요한 한국 경제

한국에서 임금주도/소득주도성장론을 바라보는 태도는 아직은 매우 이념적이고 정서적인 듯하다. 과거 고도성장을 경험했고 수출 주도로 ‘큰돈을 벌어 온’ 한국 경제의 현실을 고려할 때, 낯설 뿐만 아니라 불편하게까지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은 이해할 만하다. 한국 경제의 성장률은 계속 낮아지고 있다. 하락의 추세는 상당히 급격한데, 문제는 박근혜 정부 시절 2%대의 성장마저 부동산 경기 부양 등 인위적 부양 조처를 통해 가까스로 얻은 성적이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소득주도성장 전략은 한국 경제의 성장률 하락 추세를 반전시킬 수 있을 것인가? 우선 한국 경제의 여건부터 살펴보자. 현재 한국의 실질금리는 0에 가까운 수준이다. 이자율이 하락하면 투자가 늘고 저축이 감소하는 기제가 작동해야 하지만, 저축이 투자를 크게 초과하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과거에 비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총투자율이 내려갔다고 해도 여전히 그 비율은 30%에 육박하므로 과소투자가 원인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과소투자보다는 과잉저축, 즉 과소소비의 문제가 더 두드러져 보인다. 박근혜 정부는 자동차세 한시 인하,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 행사 등으로 소비 활성화를 시도하였으나 반짝 효과에 그쳤을 뿐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다. 단기 처방보다는 구조전환이 필요한 이유다.

한국 경제는 성장 잠재력이 갈수록 낮아지고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경제활력 감소라는 구조적 위기에 처해 있다. 소득주도성장론은 한국 경제의  장기 침체를 예방하기 위한 구조적 총수요 확대 정책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사진은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어르신들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한국 경제는 성장 잠재력이 갈수록 낮아지고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경제활력 감소라는 구조적 위기에 처해 있다. 소득주도성장론은 한국 경제의 장기 침체를 예방하기 위한 구조적 총수요 확대 정책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사진은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어르신들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소득주도성장론에 대한 국내의 비판론자들은 여전히 소비보다는 저축과 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투자 활성화를 위한 규제완화 촉구는 단골 메뉴다. 물론 성장이 투자에서 비롯된다는 사고가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당면한 현실과 발전 단계를 감안해야 한다. 우리의 투자율은 결코 낮은 수준이 아니다. 게다가 한국 경제의 국내총생산 대비 자본축적은 이미 선진국 수준으로 높아진 상태다. 한국은행의 국민대차대조표에 의하면, 2016년 국내총생산 대비 고정자산 배율은 3.3에 이른다. 이미 2010년께에 이 배율에 도달한 이후 거의 같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데, 제조업 강국인 독일과 일본도 비슷한 수준이며, 우리보다 1인당 국민소득이 높은 선진국 가운데 우리보다 유의미하게 더 높은 배율을 가진 국가는 오스트리아 정도에 불과하다.

민간소비의 원천은 가계소득인데, 한국의 국민소득에서 가계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주요 선진국에 비해 매우 낮다. 국민계정으로 본 소비 성향이 낮은 것은 기본적으로 가계소득 비중이 낮기 때문이다. 한국보다는 조금 높지만, 주요 선진국 가운데 일본도 이 비중이 낮은 편이다. 일본과의 비교는 매우 흥미롭다. 일본은 고도성장기를 지나 성장이 둔화되는 가운데 저출산·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었는데, 한국은 일본을 20년 시차를 두고 따라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은 1990년대 이후 디플레이션 과정을 반복하면서 장기 침체를 겪었다. 디플레이션은 침체의 원인이 공급부족보다는 수요부족에 있다는 증거다.

일본은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가운데 가계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낮고 기업소득 비중이 높은 대표적인 국가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최근 보고서는 일본에서 지난 20여년 동안 노동생산성이 연간 1.5% 내외 증가했지만 실질임금은 전혀 증가하지 않았다는 놀라운 결과를 보여주기도 한다. 위기 극복을 위해 임금비용을 억제하고 기업저축을 확보하려고 한 생존전략은 사회 전체적으로 총수요 부족과 임금-물가 하락의 악순환을 낳고 말았다. 포스트 케인지언이 강조하는 ‘비용의 역설’의 전형적인 예가 아닌가? 비용의 역설이란, 개별 기업의 입장에서는 임금비용을 억제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이지만, 그 결과 임금소득이 부족해져 수요 침체를 가져오기 때문에 경제 전체적으로는 도리어 해가 되는 상황을 의미한다.

우리로선 일본의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소득주도성장론의 비판자들은 임금을 올리는 것이 우선이 아니라 생산성부터 제고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그들도 소득주도성장론의 주장과 다를 바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생산성에 상응하는 임금을 지급하라. 그러지 않으면 당장 해당 기업의 이윤율은 올라가지만, 경제 전체적으로는 비용의 역설에 의한 수요의 부족 문제에 빠지게 된다.

소득주도성장론 자체에 관심이 없거나 이데올로기에 입각한 비판자들은 성장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생산성 제고가 중요하다고 외치고 있다. 이처럼 생산성이 오로지 공급 측면에서 결정된다는 사고에도 이의를 제기할 필요가 있다. 사실 생산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매우 추상적이어서, 그것을 숫자로 측정하는 순간 본래의 의미가 왜곡되는 경우가 생긴다. 중소기업 비정규직 근로자의 임금은 대기업 정규직에 비해 3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생산성 결정론에 의하면 생산성이 3분의 1밖에 안 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대책은 중소기업 비정규직 근로자의 생산성을 높여야 하는 것인가? 임금 결정에는 생산성 요인도 작동하지만 협상력도 중요하다. 비정규직 근로자 임금이 낮은 것은, 근로자가 생활의 필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임금=생산성’이라는 등식이 언제나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한국 경제의 현실과 발전 단계를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소득주도성장론을 장기침체 예방을 위한 구조적 총수요 확대 정책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일본의 예에서 드러나듯이 인구의 정체·감소가 총수요 감소 요인으로 작용할 것임에 틀림없다. 저성장 시대에 돌입할 것은 거의 확실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소득주도성장은 장기침체 예방을 위한 성장 방어 전략이 되어야 한다. 인구 감소기로 돌아서게 될 앞으로 10~15년간 확장적 재정정책을 펴야 하며 통화정책과의 조율도 중요하다. 현재의 특수한 상황을 감안할 때 수요주도의 중기 성장 개념 정도가 적절하다고 본다. 인플레이션율이 2.5~3.0%를 넘지 않는다면 총수요 확장 정책은 여전히 유효하다.

한국 경제는 오랫동안 공급·제조업·수출 위주의 성장전략을 펴왔다. 상당한 성과가 있었고, 돌이켜 보면 소규모 경제이기 때문에 그러한 전략을 펴는 것이 불가피한 측면도 있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내수와 분배 문제가 너무 소홀히 다루어졌고 이제는 성장도 한계에 봉착했다. 정말 풀기 어려운 문제가 주어진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고환율 정책은 수출 대기업에 혜택이 주로 돌아갔고 상대적으로 내수를 위축시켰다. 박근혜 정부의 저금리 정책은 가계부채 급증을 낳았다. 겉으로 녹생성장이나 창조경제 같은 근사한 성장 전략을 내걸었지만, 실제로는 총수요 확대를 염두에 둔 정책을 편 것이다. 이제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을 대안으로 내걸었다. 분배를 소홀히 하면서 지속성장을 하는 것이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점, 당장 공급보다 수요부족이 더 큰 문제인데다 인구 감소가 닥쳐오고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시도할 가치가 있는 대안이다. 마법의 탄환도 아니고 만병통치약도 아니지만, 침체기의 적절한 대응 전략인 건 분명하다.

주상영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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