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들이 2월26일 지린성 지린시 롯데마트 앞에서 롯데의 사드 부지 제공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중국 포털 갈무리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대한 중국의 경제 보복이 이어지면서 중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이 사업을 매각하거나 구조조정에 나서는 등 한계 상황에 몰리고 있다. 거대한 중국 시장을 공략하려고 진출한 기업들이, 사드 보복과 ‘반한 기류’로 사업이 뿌리째 흔들리면서 그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중국과 대화 채널을 만들어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18일 관련 업계의 말을 종합하면, 사드 보복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곳은 현지 소비자를 직접 상대하는 유통·자동차·제과업체 등이다. 사드 부지를 제공한 롯데는 직격탄을 맞았다. 영업 정지 등으로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롯데마트는 운영 중인 중국 매장 112곳을 팔려고 내놓았다. 다른 롯데 계열사들도 중국 사업에 대한 구조조정을 검토 중이다. 롯데 관계자는 “롯데마트 외에 철수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면서도 “현지 인원 감축 등 구조조정은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일부에서는 롯데제과·롯데칠성의 현지법인도 매물로 나올 수 있다고 점친다.
현대·기아차는 중국 판매가 ‘반토막’ 나면서 ‘제2의 롯데마트’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온다. 1~8월 중국 내 누적 판매량(57만6974대)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4.7%나 줄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글로벌 타임스>는 지난 6일 “현대차의 중국 파트너인 베이징기차가 합자회사 ‘베이징현대’와의 합자 관계를 끝내는 것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베이징현대는 현대차와 베이징자동차가 절반씩 지분을 투자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한국 기업을 압박하려는 중국 관영 언론의 의도가 담긴 것으로 짐작된다”며 “사업을 접을 생각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식품·화장품 업계도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오리온은 중국 매출이 지난해 3분기 3484억원에서 올해 2분기 1415억원으로 줄었다. 이에 따라 현지 직원 1만3000명 가운데 약 20%를 줄였다. 아모레퍼시픽은 사드 보복 여파 등으로 2분기 영업이익이 1304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엘지화학 등 전기차 배터리 생산 업체들은 중국 정부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돼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 업체 관계자는 “가동률이 절반 수준”이라며 “거대한 중국 시장을 포기할 수 없어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사태 해결을 위해 정부의 적극적인 태도를 주문한다. 한재진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사드 리스크에 따른 불안감이 계속 커지고 있는데 민간기업 차원에서는 해결할 방법이 없다”며 “사실상 끊겨 있다시피 한 한-중 통상·외교당국 간 고위급 대화 채널을 서둘러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등 오랫동안 중국 시장에 공들여 왔는데 롯데마트 철수처럼 자꾸 포기하는 일이 잇따르면 장래에 중국 시장 손실이 더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조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양국이 고위 통상채널에서 협력하는 모양새를 보여준다면 중국 소비자에게 ‘한국산을 다시 구매해도 별로 문제 되지 않겠구나’ 하는 시그널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드 경제보복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는 카드를 일단 접은 우리 정부는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다음달 18일 열릴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 집중하고 있어 대화 분위기를 조성하기 쉽지 않아서다. 통상 당국자는 “중국의 정치시스템이 우리와 크게 달라 우리 쪽의 사드 관련 대화 요구에 잘 나서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결국 당대회 뒤 중국 내 정치적 분위기가 바뀌면 양국 서비스 시장 개방 협상을 본격화하고, 이 대화 틀을 기회 삼아 사태 해결의 돌파구를 찾아보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내년 3월까지 중국의 중요 정치일정이 이어져 대화 계기를 찾지 못한 채 더 장기화될 가능성도 있다.
별다른 묘책이 없는 상황에서 정부는 현지 진출 기업의 지원에 주력하고 있다. 생산기지를 중국에서 제3국으로 이전하면 해외사업금융 보험료 할인 등 지원을 해주고 있다. 또 중국 진출 자동차부품 업체가 북미·인도 등 대체 판로를 개척할 수 있게 발굴·지원하는 ‘공급선 다변화’ 정책도 펴고 있다.
김소연 조계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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