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출범 넉달째인데 장관 못찾은 중기부 ‘개점휴업’
내년 예산도 홀대 조짐…“대통령 관심 멀어졌나”
내년 예산도 홀대 조짐…“대통령 관심 멀어졌나”
‘중소기업 천국을 만들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한달여 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중소기업 관련 단체들이 공동 개최한 대선후보 초청 강연회의 방명록에 쓴 글귀다. 대선 때 ‘3천명 지지서명’ 등으로 화답한 중소기업계는 새 정부 출범을 누구보다 반겼다. 대기업 중심의 ‘기울어진 운동장’이 고쳐지고, ‘중소기업 중심의 성장’으로 경제 패러다임이 바뀔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기대는 희미해지고 우려와 실망감이 커지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문 대통령의 공약에 따라 장관급 부처로 승격한 중소벤처기업부가 아직 수장을 찾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 정부 출범 104일 만에 지명한 장관 후보는 역사관·종교관 논란 끝에 낙마했다. 청와대는 부실한 인사 검증을 스스로 탓하기보다 ‘구인난’을 호소하며 중기부 초대 장관의 공백 장기화를 합리화시키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여기까지 온 마당에 더 신중하게 후보를 물색하겠다”며 장관 후보 지명을 추석 연휴 이후로 미룰 계획임을 밝혔다.
정부 출범 초기에 부처마다 중장기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달리는 모습인데 중기부는 ‘개점휴업’이나 다름없는 상태다. 부처 승격에 따라 몸집은 커졌으나 주요 보직의 인사를 아직 마무리하지 못했다. 1급 관리관(차관보급)이 맡는 4개 실장 자리 가운데 중소기업정책실·창업벤처혁신실 등 2곳이 아직 비어 있고, 중소기업 경영 현장의 애로를 들어주고 규제업무를 총괄하는 중소기업옴부즈만, 중소기업 정책의 싱크탱크 구실을 하는 중소기업연구원의 원장도 장기 공석이다. 이렇다 보니 중앙부처 가운데 유일하게 대통령 업무보고를 못 했고, 정기국회 첫 국정감사도 장관 없이 맞게 됐다.
중소기업 관련 주요 정책 수립과 법안 마련도 미뤄지고 있다. 구체적으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보호를 위한 적합업종 제정안은 국회 법안심사 소위가 중기부 장관 임명 이후로 보류시켰다. 주요 현안이나 정책 과제에 대해서도 중기부의 목소리는 잠잠하다.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충격은 중소기업에 쏠리는 만큼 중기부가 후속 대책 마련에 앞장서야 할 터인데도 기획재정부나 고용노동부 등에 주도권을 빼앗겼다. 중기부 관계자는 “장관이 없다 보니 다른 부처와 정책 협의나 조율 과정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중소기업 중심으로 경제정책의 전환을 위해서는 올해 안에 범정부 차원의 목표를 정해놓고 내년부터는 정책 이행에 속도를 내야 하는데, 지금은 필요한 예산 확보도 불투명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내년 예산에서도 중기부 ‘홀대’ 조짐은 나타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때 중소기업에 대한 연구개발(R&D) 예산을 임기 내 두배 늘리겠다고 공약했으나 내년도 중기부 관련 예산(1조926억원)은 올해보다 오히려 2.2% 줄었다.
중소기업계에선 이런 현상에 대해 중소기업 정책에 대한 청와대의 의지와 능력 부족 탓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중기중앙회의 한 간부는 “박근혜 정부 때만 하더라도 출범 6개월 만에 100가지가 넘는 중소기업 정책 과제를 내놓은 바 있다. 지금은 그때보다 더 복잡한 현안들이 발생하고 있는데도 대통령의 관심은 멀어지고 중소기업 정책의 시곗바늘은 사실상 멈춘 느낌이 든다”며 불만을 표시했다. 청와대의 발표대로 추석 연휴 직후 장관 후보가 지명되더라도 청문회까지 고려하면 장관이 있는 중기부 출범은 빨라야 10월말께나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박순빈 선임기자 sb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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