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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의사 죄책감이 만든 베지밀, 숱한 신생아 생명 살렸다

등록 2017-10-10 15:51수정 2017-10-10 21:01

‘베지밀’ 개발 정재원 정식품 명예회장 별세
19살 독학으로 의사 검정고시 최연소 합격
병원에 맷돌·가마솥 두고 두유 연구 매진
1960년대 ‘유당불내증’ 앓던 아기들 살려
44년전 정식품 설립해 꾸준한 장학활동도
정식품 제공.
정식품 제공.
우리나라 최초의 두유 ‘베지밀’을 만든 정식품 창업주 정재원 명예회장이 지난 9일 저녁 별세했다. 향년 100세.

정 회장은 1917년 황해도 은율 산골에서 태어났다. 두 살 때 부친을 여의었다. 정 회장은 생전에 유년기에 대해 “어머니, 형, 누나와 함께 밀죽으로 끼니를 때우는 배고픈 시절이었다”고 회고했다. 어머니는 누에치기, 콩밭 매기, 품삯 일로 자식들 교육을 뒷바라지했다.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어머니 바람에 따라 황해도 도립 사범학교 시험을 쳤으나 낙방했다. 이듬해 평양 관립 사범학교 시험에 응시했지만 또 실패했다. 소년은 평양에 홀로 남아 목욕탕 심부름꾼, 모자가게 점원 등을 전전하며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15살 때 친척 소개로 평양 기성 의학강습소 사환으로 취직했다. 책이 귀한 시절이라 학생들은 등사기로 찍어낸 교재로 공부했고, 사환의 일은 매일 잉크를 롤러에 묻혀 수천장의 교재를 등사하는 것이었다. 매일같이 등사를 반복하다보니 어느 순간 의학 교재 내용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머리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일을 하며 공부를 시작했다. 당시 의사가 되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의대를 졸업하거나, 의학 강습소를 수료하고 의사 검정고시에 합격하는 것이다. 등사기 앞에 선지 4년 만인 1936년 19살의 나이로 정 회장은 의사 검정고시에 최연소 합격했다.

1955년 지금의 정식품 서울사무소가 자리한 서울 중구 회현동 정소아과 의원 앞에 선 정재원 회장. 정식품 제공.
1955년 지금의 정식품 서울사무소가 자리한 서울 중구 회현동 정소아과 의원 앞에 선 정재원 회장. 정식품 제공.
서울 명동 성모병원에서 견습 의사 과정을 밟던 시절 뼈가 앙상하고 배만 불룩한 갓난아기 환자를 만났다. 아기 엄마는 신의주에서 아이를 업고 꼬박 하루를 걸려 왔다고 했다. 차트에는 ‘소화불량’이라고 적혀 있었다. 의사들 중 누구도 손을 쓰지 못했고, 갓난아기는 결국 숨졌다. 의사로서 무력감과 죄책감을 떨쳐낼 수 없었다. 신생아들이 복부팽만에 장기간 설사를 계속하다 결국 숨지는 원인모를 ‘소화불량’은 당시 소아과 의사들의 큰 숙제였다.

유학 시절 정재원 회장의 모습. 정식품 제공.
유학 시절 정재원 회장의 모습. 정식품 제공.
요즘처럼 외국의 최신 의학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시절이 아니었다. 1960년 정 회장은 숙제를 풀기 위해 영국과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1964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학 메디컬센터에서 ‘유당불내증(lactose intolerance)’라는 병명이 수록된 최신 논문을 발견했다. 유당 분해효소인 락타아제 결핍으로 모유나 우유에 포함된 유당이 정상적으로 소화되지 못하고 대장에 도달해 유독물질이 생성되는 병이었다. ‘소화불량’의 원인을 찾아낸 정 회장은 유당이 함유되지 않은 대용식 연구를 시작했다. 어머니가 끓여주시던 콩국을 생각해냈고, 두유가 단백질, 탄수화물, 지방 등 필수 영양소가 풍부하면서도 유당 성분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정재원 회장과 정소아과 직원들의 모습. 정식품 제공.
정재원 회장과 정소아과 직원들의 모습. 정식품 제공.
1965년 귀국한 정 회장은 현재 정식품 서울사무소가 위치한 서울 중구 회현동 정 소아과 의원 지하실에 맷돌과 가마솥을 들여놓고 간호사 출신 아내 고 김금엽씨와 함께 연구와 실험을 거듭한 끝에 두유 생산에 성공했다. ‘베지밀’의 탄생이었다. 베지밀로 정 회장은 1966년 제1회 발명의 날 대법원장상을 수상했다. 이전까지 아무도 손을 쓰지 못했던 유당불내증 신생아들이 정소아과에서 살아났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전국에서 환자가 몰려들었다. 다른 소아과들도 두유를 얻기 위해 정 소아과를 찾았다. 가내수공업 방식으로는 수요를 감당할 수 없었다. 1973년 정식품을 설립하고 경기 신갈에 공장을 지었다. 56살에 의사에서 기업인으로 변신한 것이다.

정식품 제공.
정식품 제공.
정 회장은 1984년 세계 최대 규모의 두유 생산시절을 갖춘 청주공장을 준공했고, 1985년 중앙연구소를 설립했다. 사업 다각화를 꾀하지 않고 꾸준히 두유 생산에만 매진했다. 1984년에는 ‘혜춘장학회’를 설립해 이후 33년 동안 약 2350명에게 21억원의 장학금을 전달했다. 2000년 명예회장으로 추대됐다. 지난해 기준 정식품은 매출 1870억원, 두유 시장 점유율 51%를 기록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 발인은 12일 오전 8시다. 장지는 용인천주교묘지. 유가족은 아들 정성수 정식품 회장, 딸 조숙·명숙·인숙·민숙씨 등이 있다. (02)3010-2230.

유신재 기자 oh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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