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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탄소배출권 거래처럼…‘고용 크레디트’ 사고 팔자”

등록 2017-11-14 16:40수정 2017-11-14 20:46

강두용 산업연구원 부원장 인터뷰
“기업이 1명 새로 채용하면
1크레디트 시장서 매도
정부가 사주는 방식
해고하면 되사가야”
“불경기엔 가격 상승
호황기엔 가격 하락
가장 적은 비용으로
일자리 목표 달성 가능”
강두용 산업연구원 부원장
강두용 산업연구원 부원장
탄소배출권거래처럼 고용분야에서도 기업의 신규 채용 때 이른바 ‘고용크레디트’(채용보조금)을 도입하자는 야심적이고 혁신적인 일자리 정책 제언이 나와 주목된다. 기존 임금보조금 정책과 달리, 학술적으로 매우 흥미로울 뿐 아니라 재정지출 효율성과 정책시행 타이밍 측면에서도 “현실에서 충분히 적용해볼만한 혁신적 고용정책”이라는 말이 나온다.

지난달 31일 세종시 산업연구원에서 <한겨레>와 만난 강두용(57) 산업연구원 부원장은 2015년부터 자신이 주창하고 있는 이른바 ‘고용크레디트 거래제도’에 대해 “기업이 신규채용할 때 임금에 보조금을 주는 기존 방식에 견줘 훨씬 더 시장친화적이고 비용효율적이며, 경제정책 시행에서 흔히 발생하는 시차 문제도 해결하는 완전히 새로운 접근”이라고 말했다. ‘스마트 고용정책’으로 불리는 이 크레디트 제도의 기본적인 구상 및 작동방식은 탄소배출권거래시장과 유사하다.

※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우선 국가는 일시적인 일종의 채용보조금인 고용크레디트가 거래되는 시장을 새로 도입·운영한다. 이 시장에서 거래에 참여하는 크레디트 공급(발행)자는 모든 산업에 걸친 민간기업들이고, 크레디트 수요(매입)자는 국가이다. 국가의 크레디트 구매수량은 특정 시점마다 설정되는 전체 고용(실업률)목표에 따라 정해진다. 민간기업들은 신규채용할 때마다 각자 크레디트를 발행하는데, 신규고용을 위해 필요하다고 여기는 채용보조금 수준을 자기 기업의 크레디트 매도(의향)가격으로 제시한다. 주식 1주를 팔 때처럼 크레디트 한 단위를 거래시장에서 팔아 매도대금(채용보조금)을 받게 되는 셈이다. 강 부원장은 “크레디트 수요자인 정부는 가급적 싼 가격에 구매하려 할 것이고, 기업은 신규채용 노동자에게 줄 임금과 그 노동자의 생산성에 따른 기대수익을 고려해 그 차액만큼을 크레디트 가격으로 받으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크레디트는 주식시장처럼 매일 거래되고 크레디트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 끊임없이 변동한다. 정책당국은 하루 1만명, 1주일 5만명, 1개월 20만명 등 신규 추가고용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수준에서 크레디트의 ‘시장 매수호가’를 그때 그때 조정해 간다. 특히 크레디트 가격은 전체 노동시장의 고용상황과 경기변동에 따라 신축적으로 조정된다. “실업자가 점차 증가하는 불경기에 기업의 크레디트 공급량은 줄어들지만 악화하는 실업을 줄이기 위해 정부의 수요(매입) 호가는 오르면서 크레디트 가격은 상승하게 될 것이고, 반대로 호황기에는 크레디트 가격이 하락하게 될 것이다.”

신규 노동자를 채용한 뒤에 ‘미리 정해진 임금’을 월마다 보조하는 기존 임금보조 방식은 경기상황에 따른 고용변동에 적절히 대응하기 어렵고 보조금 조정도 쉽지 않을뿐 아니라, 목표 고용률에 도달하기 위해 기업에 줘야할 임금 보조금이 얼마인지 고용당국이 사전적으로 알기도 어렵다. 강 부원장은 “이 크레디트 제도는 경기가 변동할 때 당국의 고용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최적의 채용보조금 수준이 시장에서 끊임없이 바뀌며 조정된다. 기존 임금 보조금의 과잉 혹은 과소라는 시행착오 문제를 우회할 수 있는 제도”라고 강조했다. 크레디트 거래는 통상 불황기에만 한시적으로 시행되는 재정정책과 달리 시장에서 상시적으로 이뤄지는데다 기존 임금보조 정책과 달리 보조금 관리를 위한 행정 비용도 줄어든다.

그런데 정부한테 크레디트를 팔아 고용보조금을 받은 기업이 채용 노동자를 나중에 다시 해고하는 ‘모럴 해저드’는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크레디트 제도는 일시 채용보조금을 받은 뒤에 훗날 해고하게 되면, 이번에는 반대로 그 기업이 크레디트를 해고 시점의 시장가격으로 구입하도록 ‘환매 의무’를 부과한다. 해고를 줄이거나 제약하는 장치인 셈인데, 다만 자발적 이직의 경우엔 환매 의무가 없다. 그는 “국가 재원으로 운영되는 고용크레디트가 경제 전체의 총수요를 부양·진작하는 효과도 내게 된다”며 “특히 글로벌화와 기술변화, 인공지능 자동화 등으로 높은 실업이 장기간 지속되는 현실에서 고용·소득불평등에 대한 분배 측면의 대응이란 점에서도 정책적 의미를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고용크레디트는 국내외를 통틀어 강 부원장이 처음 내놓은 정책 구상으로, 산업연구원과 한국은행의 연구보고서로 이미 제안한 바 있다. 그는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도 이 제도를 듣고나서 매우 흥미롭고 적용을 시도해볼만하다고 말했다”며 “각 시점에서 사회적으로 달성해야 할 고용목표가 정해지고나면 그 목표에 정확하게 또 비용효율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이라고 말했다. 현재 시행중인 유사한 사례도 이미 있다. 현행 세법은 투자세액공제처럼 고용에서도 고용증가분에 한시적으로 세액공제(정액)를 해주고 있고, 고용보험의 경험요율제는 고용실적에 따라 보험료 차등을 둬서 해고가 많은 기업에는 더 많은 보험료를, 해고가 적은 기업에는 낮은 보험료를 적용하고 있다.

이 제도 도입에 따른 소요 재정은 얼마나 될까? 이에 대한 추산은 모든 기업이 과연 신규채용할 때마다 크레디트 보조금을 받으려 할 것인지에 주로 달려 있다. 그는 “보조금을 받은 뒤 해고하면 크레디트를 되사야하고 그 때 기업이 부담해야 할 크레디트 가격이 애초 채용 때보다 높아질 불확실성도 있다”며 “따라서, 신규채용 노동자에게 기대하는 수익이 지불해야 할 임금보다 크다면 굳이 크레디트 보조금을 받겠다고 행동하는 기업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 크레딧은 국가 재원이 먼저 지출되지 않고 기업이 고용을 늘린데 따라 실적베이스로 지급되는 외과수술적 처방이므로 재정지출 효율성도 높다. “실업률 급증 등 문제가 터지면 해결하려고 정부가 개입해 정책·제도를 만들고 또 집행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려 결국 타이밍을 놓치게 되는 일이 흔하다. 반면 크레디트 제도는 정책당국이 사회적 합의에 기초해 정한 실업률 목표에 따라 매일 매일 자동 실행되므로 재정지출에서 발생하는 ‘시차 문제’도 거의 해결된다.”

이 크레디트 제안은 단순히 고용의 양적 숫자뿐 아니라 고용의 질도 관리할 수 있다. 크레디트 가격을 결정하는 변수에 신규채용이 정규직인지 비정규직인지, 한달 근로시간이 몇 시간인지 등을 가중치로 넣어 고용의 질을 정책당국이 조정할 수 있는 것이다. 강 부원장은 이른바 ‘풍선효과’가 발생할 우려도 거의 없다고 말했다. “기존 실업 및 일자리 처방은 특정 업종이나 특정 실업자 계층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한 쪽에서 보조금을 제공해 고용을 늘리면 다른 분야에서 고용을 줄이는 일이 발생한다. 반면 고용 크레디트 제도는 모든 경제 영역에 걸쳐 시행되므로 이런 대체효과가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적다.”

고용크레디트는 고용에 ‘사회적 가치’를 부여하는 일자리 정책의 새로운 모색이다. “모든 실업은 당사자가 지불하는 비용보다 사회적으로 치러야 하는 비용이 더 크기 때문에 정책당국이 제1의 과제로 대응해야 한다. 고용크레디트는 가격시스템이라는 시장원리에 친화적이고, 가장 적은 비용으로 일자리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제도다.” 강 부원장은 서울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1985년에 산업연구원에 들어와 그동안 일자리 정책, 가계-기업간 소득불균형, 노동생산성 추세 분야를 주로 연구해왔다.

글·사진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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