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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노사 대결에서 합의로 대반전, 핀란드가 날아올랐다

등록 2017-11-23 10:44수정 2017-11-23 11:20

【HERI 쟁점진단】
내전, 반목의 앙금 털고 사회적 대화 모델 일궈낸 핀란드
한국은 노사정위원회 등 사회적 합의 기반이 뼈대만 남아
노사간 신뢰와 합의에 기반을 둔 노동-사회정책 구축 절실
핀란드는 올해 독립 100주년을 맞았다. 지난해 12월 31일 밤 핀란드 헬싱키 도심의 시민광장에서 시민들이 2017년의 새해를 기다리며 자축하고 있다. 헬싱키/EPA 연합뉴스
핀란드는 올해 독립 100주년을 맞았다. 지난해 12월 31일 밤 핀란드 헬싱키 도심의 시민광장에서 시민들이 2017년의 새해를 기다리며 자축하고 있다. 헬싱키/EPA 연합뉴스
핀란드는 인구 500만명의 작은 나라이다. 산림 외에는 자원도 별로 없다. 강대국 틈에 끼어 끊임없이 침략을 받은 점이 우리와 비슷하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을 틈타 독립했으나 정파 간의 극심한 대립, 불신, 내전의 험난한 길을 겪었다. 하지만 60년대 후반부터 노사정 등 이해당사자가 대화와 합의의 전통을 만들어냄으로써 갈등을 줄이고 경제, 사회발전을 가속할 수 있었다. 이런 경험은 노사간 신뢰와 합의에 바탕을 둔 노동정책 및 사회정책의 틀을 다시 만들어야 하는 우리 사회에 적지 않은 교훈을 준다. 핀란드의 사회적 대화 모델을 짚어본다.

23년만의 총파업과 핀란드의 사회적 코포라티즘(Corporatism)

2015년 9월 18일, 핀란드의 3대 노조가 연합해 하루 총파업을 벌였다. 당시 유하 시삘라 총리가 이끄는 우파 연합정부(중앙당, 보수당, 민족주의 포퓰리즘 핀란드인당 3당 연정)가 장기 경기침체에 빠진 핀란드의 경쟁력을 강화하자며 공휴일 및 초과근무 수당 축소, 연금생활자 주거수당 축소 등을 강제하는 내용의 법안을 의회에 제출한 데 대한 항의였다. 하루이긴 했지만 총파업은 1992년 이후 23년 만의 사건으로 철도, 버스, 항공 등 대중교통 운행이 중단되고, 어린이집과 병원 등 공공서비스 기관 상당수가 운영을 멈추면서 국내외 여론의 큰 주목을 받았다.

파업에는 핀란드 3내 중앙노조인 에스아꼬(SAK), 에스떼떼꼬(STTK), 아까바(AKAVA) 산하 단체들이 대거 참가했다. 당일 낮 헬싱키역 광장의 집회에 3만 명이 넘는 노동자, 시민들이 참가한 것을 비롯해 핀란드 전역에서 약 30만 명의 노동자들이 항의 집회를 벌였다. 집회에 참여한 진보정당들(사민당, 녹색당, 좌파동맹 등)과 노조 대표들, 그리고 시민들은 정부가 추진하는 복지 축소와 재정 긴축 정책의 문제점을 비판했다. 이들은 특히 시삘라 정부가 노사 간 자유로운 단체협상을 통해 노동시장 정책 및 관련 사회정책의 기본 내용을 정해온 핀란드의 사회적 합의 모델을 위배했다는 점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로써 2015년 총선에서 승리한 중앙당의 시삘라 총리가 강력하게 추진했던 ‘생산성 향상을 위한 사회협약’ 체결은 수포가 되고, 핀란드의 사회적 코포라티즘 모델에도 큰 위기가 올 것으로 전망됐다.

그런데 총파업 직후 반전이 벌어졌다. 핀란드 일반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최대 중앙노조 에스아꼬(SAK)의 대표 라우리 뤼리가 총파업 후 일주일 만에 노조의 사회협약안을 마련해 다시 제안한 것이다. 그는 자본 편향적 협약을 추진하는 정부의 제안 내용과 방식에 문제가 있지만 사회적 합의 프로세스를 파기하는 것보다 능동적으로 합의, 시행하는 것이 핀란드 경제와 사회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며 정부와 고용주 대표들의 전향적 태도 전환을 촉구했다. 이후 핀란드 정부도 노조안의 실효성과 타당성을 긍정하며 소극적 자세로 일관하던 고용주 단체를 압박해 협상을 진행했고, 우여곡절을 거쳐 2016년 여름, 사회협약이 성사될 수 있었다. 한편, 협약 성사 이후 정년으로 에스아꼬 대표직에서 은퇴한 뤼리는 2017년 봄 지방자치선거에서 사민당 후보로 출마했고, 현재 필자가 사는 땀뻬레 시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전국 노조 대표의 실용주의적 태도와 주도적 리더십, 그리고 이를 통해 대중적 지지를 끌어내는 정치적 역량이 퍽 인상 깊었다.

북유럽 속의 핀란드: 같은 지향, 다른 경로

서울 시내 한복판을 질주하는 택시들 마냥 한 치도 양보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 돼 버린 듯한 한국 노사 현실을 고려할 때, 핀란드에서는 어떻게 위와 같은 합의 문화가 가능할까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세기 핀란드 민주주의와 복지국가의 역사적 발전 과정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핀란드는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등과 더불어 북유럽 국가의 일원이다. 북유럽 국가들은 흔히 세계에서 가장 평등하면서도 우수한 공공정책과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보편적 복지국가 모델로 잘 알려져 있다. 그 바탕에는 비례대표제(proportional representation)와 다당제에 기반을 둔 합의적 민주주의, 그리고 노사정 3자 협의에 기초한 이익 협상 체계를 일컫는 민주적 코포라티즘(democratic corporatism)과 사회적 시장경제 시스템이 자리잡고 있다. 사민주의적 합의 정치, 코포라티즘적 이익 조정 체계, 보편적 복지국가라는 제도적 기둥들이 상호작용하면서 북유럽 모델은 시장근본주의와 국가사회주의를 뛰어넘는 제3의 대안을 제시했다. 이를 통해 북구 국가들은 ‘극단의 시대’였던 20세기에서 살아남은 가장 뛰어난 정치경제 모델을 보여준 것이다. 북유럽 국가들이 경제적 효율성과 사회적 평등을 동시에 성취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나아가 이들은 오늘날 언론의 자유, 청렴성, 시민 참여, 민주주의 만족도, 사회적 신뢰, 행복지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국제 지표들에서 매년 최상위권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1980년대 말과 90년대 초반의 경제 위기와 2008년 세계금융위기 등 주기적인 정치경제의 위기들에도 불구하고 북유럽 모델은 변화에 대한 적응력 혹은 빼어난 회복탄력성을 과시해왔다.

북유럽 국가들 중에서도 핀란드는 한국의 논의에 더 직접적인 영감과 시사점을 제공하는 나라이다. 핀란드는 우리처럼 동과 서 사이에 자리잡은 ‘경계 국가’(border country)로서 20세기에 내전과 전쟁을 겪었고, 전후에는 냉전 질서의 제약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노사 관계에서도 오랫동안 심각한 불신과 대립을 경험한 뒤 1960년대 후반에 들어서야 노사정 대타협에 이를 수 있었다. 이후 매 2년마다 정부의 중재 하에 이루어진 노사 대표 간 협상과 합의를 통해 임금과 노동조건은 물론 기본적 사회정책의 방향을 결정해왔다. 이를 통해 파업과 직장폐쇄가 맞서던 대결적 노사관계로부터 전국적 집단 교섭에 기반한 합의적 노사관계로의 성공적 전환을 이루었다. 어떻게 핀란드는 그와 같은 제도적, 문화적 대전환을 이룰 수 있었을까? 핀란드의 경험으로부터 우리가 배울 점은 무엇일까? 아래에서 함께 그 대답을 찾아보자.

합의적 민주주의와 보편적 복지국가를 향하여: 분열에서 합의로

1809년 전쟁에서 패배한 스웨덴이 러시아에 핀란드를 양도한 뒤, 핀란드는 러시아 황제의 지배를 받는 대공국(Grand Duchy of Finland)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1917년의 러시아 혁명은 일시적인 권력의 공백을 초래했고, 민족주의적 독립 열망으로 고취된 핀란드는 이 틈을 놓치지 않고 독립을 선포했다. 그러나 신생 독립국 핀란드가 걷게 될 새로운 운명의 세기는 절대 순탄하지 않았다. 독립한 지 한 달여 밖에 지나지 않아 내전이 일어났다. 빈곤과 토지문제 등 사회 모순이 심화했지만 부르주아 정당들의 사보타지로 의회에서의 개혁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러시아 혁명에 고무된 급진 좌파세력들이 모험주의적 쿠데타를 추구한 것이다. 우파 애국주의와 좌파 혁명주의의 에너지가 끓어올라 임계점에서 충돌한 핀란드 내전은 헬싱키, 땀뻬레 등 남부 산업도시 지역을 장악한 좌파의 초기 우세에도 불구하고 독일 제국의 지원을 받고 엘리트 장교들을 많이 보유했던 우파(부르주아-중농 연합)의 승리로 귀결됐다.

핀란드 수도 헬싱키의 의사당 광장에 있는 제정러시아 시절 차르 알렉산드르 2세의 동상은 핀란드와 러시아의 ’가깝고도 먼’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헬싱키/ 조일준 기자
핀란드 수도 헬싱키의 의사당 광장에 있는 제정러시아 시절 차르 알렉산드르 2세의 동상은 핀란드와 러시아의 ’가깝고도 먼’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헬싱키/ 조일준 기자
내전의 상처는 컸다. 1918년 1월 23일 시작돼 약 4개월 간 지속한 내전에서 1만여 명이 죽고, 그 뒤 수용소 캠프에서 질병과 굶주림 등으로 다시 3만여 명이 죽었다. 무엇보다 좌우 이념을 중심으로 계급과 계층 간의 분열과 불신의 골이 깊게 팼고, 이는 20세기 후반까지 핀란드 사회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이로 인해 1930년대부터 노사간 대타협을 통해 보편적 복지국가 시스템을 건설했던 스웨덴 등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이행 경로를 핀란드는 밟을 수 없었고, 내전 종식 후 50년이 지난 1968년에 이르러서야 노사정 대타협에 기초한 중앙 교섭과 임금 정책 실현을 제도화할 수 있었다.

1918년 내전 이후부터 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의 시기는 ‘의회 정치의 복원, 그러나 노사관계의 불신 지속’이 특징이다. 핀란드는 1919년 입헌 공화국 헌법을 채택하고 의회 민주주의를 복원했다. 파시즘 운동 등 우파 독재의 테러와 쿠데타 위협을 무릅쓰고 초대 대통령 스톨베리를 비롯한 정치 지도자들은 입헌적 자유와 다원적 민주주의 질서를 지켜냈다. 특히 사민당은 내전 이후 오래지 않아 정치활동이 복권되면서 1920년대 중반부터 정부 운영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이 시기 복지국가를 향한 사회정책과 입법에 일부 중요한 진전이 있었다. 그러나 내전의 기억 때문에 고용주 단체들은 노동운동 진영을 신뢰하지 않았고, 전국 단위의 단체교섭도 허용되지 않았다. 이 시기 핀란드의 노조 조직률도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1940년대 2차 세계대전이 전 유럽과 세계를 강타했을 때 핀란드도 소련과 두 차례의 전쟁(1939-40년 ‘겨울전쟁’, 1941-44년 ‘계속 전쟁’)을 치러야 했다. 대외 전쟁은 역설적으로 내전의 상처를 치유하는 효과를 냈다. 좌파를 비롯한 거의 모든 사회세력이 핀란드 독립을 지키기 위해 함께 싸웠다. 이후 고용주 단체들도 노동조합을 협상 상대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1941년 전시 경제체제 아래에서 전국 단위 첫 노사 협상이 시작됐다. 그러나 아직 노사 대타협에 바탕을 둔 사회적 합의의 틀은 마련되지 않았고, 1956년에도 대규모 총파업이 벌어지는 등 불안정한 노사관계가 지속했다.

1960년대 들어 중요한 변화가 시작됐다. 전후 경제재건과 사회발전을 바탕으로 정책결정자들과 지식인들은 스웨덴 등 다른 북유럽 복지국가들의 발전 경로와 이론적 논쟁에 눈길을 돌렸다. 뻬까 꾸시가 쓴 팜플렛 책자 <60년대의 사회정책>(60-luvun sosiaalipolitiikka)은 이론적, 정책적 가이드를 제시한 핵심 저술로 꼽힌다. 저자는 스웨덴 복지국가 이론과 경험에 관한 검토를 바탕으로 민주주의, 사회적 평등, 경제 성장 사이의 선순환이 가능하다고 역설했다. 1956년 집권한 중도우파 출신 우르호 께꼬넨 대통령도 노사대타협을 통한 사회통합의 필요성을 적극 인식하고 이를 강력한 정치적 의지로서 뒷받침했다. 1966년 선거에서 사민당이 승리하고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좌파 세력의 영향력이 증가했다. 사민당과 공산당 지지 그룹으로 갈려 대립과 반목을 겪던 노동운동 내부의 분열도 사민주의적 방향으로 상당히 정리됐다. 물가급등에 따른 환율 ? 재정위기 속에서 사회적 대타협의 필요성도 높아졌다.

이런 가운데 당시 사민당 총리 라빠엘 빠아시오 내각이 주도해 노사정 대표들로 구성된 3자 협의체를 만든 뒤, 전국적인 임금 인상률과 주요 경제, 사회정책의 방향을 논의했다. 협상은 1968년 마우노 꼬이비스또 총리 시기에 결실을 맺어 역사적인 첫 노사정 합의를 도출했다. 1968년 노사정 합의는 노동시장에서 지위가 약했던 노동자의 위상을 강화해 새로운 권력 균형을 만들어냈다. 1968년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 핀란드는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과 사회정책에 입각해 보편적 복지국가 체계를 완성했다. 사민당과 중앙당은 이 과정에서 중추적 역할을 수행한 정당 정치 세력들로 자주 연정을 이루어 서로 경쟁, 연대하며 복지국가 팽창을 이끌었다. 대도시 노조 기반의 사민당이 포괄적이지만 임금 노동 중심의 사회보험과 복지 서비스를 선호한 반면, 정규적 노동시장 외곽에 존재하는 농민과 산림업종사자, 농촌 주민 등을 지지기반으로 하는 중앙당(구 농민당)은 보편주의적 복지 체계를 선호해 왔다. 보편주의적 사회권 기반 시민권(citizenship) 모델과 임노동 연계 복지(workfare) 모델은 핀란드 복지국가 건설 과정에 녹아들어있는 두 개의 핵심 원칙이다. 주요 정책 실행 및 입법 과정에 두 원칙이 함께 결합돼있다.

노사정 3자 이익 협상 체계의 확립은 핀란드 민주주의의 정치적 안정에도 기여했다. 극단적 다당제에 기반해 가장 파편화된 정당체제를 운영하던 핀란드는 잦은 정국 불안정으로 정부의 임기가 매우 짧은 나라였다. 노사 대타협과 이를 추동한 중앙당-사민당 연합 정치는 정국 안정에도 기여해 1983년 이후 대부분의 정부가 4년 임기를 채우는 변화가 나타났다. 특히 사민당의 깔레비 소르사 총리는 다양한 이익단체 대표들과 정치행위자들이 참여하는 꼬르삐람삐 컨퍼런스를 설립해 공동의 이해 증진을 도모했다. 이러한 변화들과 더불어 합의적 정책결정과 정치문화가 보편화되었다.

1990년대 이후의 변화: 경제 위기와 사회적 코포라티즘의 강한 생명력

1990년대 초반 핀란드에 다시 중대한 경제 위기가 찾아왔다. 80년대 말의 부동산 버블과 은행권의 금융 위기에 이어 1991년의 소련 해체로 인해 심각한 경기침체가 발생한 것이다. 특기할 것은, 1930년대 이래 최대의 경제 위기에도 불구하고 노동시장의 3자 협의 체계는 중단 없이 지속한 것이다. 오히려 대외적 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정부와 노동시장의 주체들은 노사정 3자 합의의 틀을 활용하고자 했다. 핀란드 정부는 이 시기 이후 초다수(super-majority)적 연합을 추구하는 ‘무지개 연정’(rainbow coalition)이 일반화되었고, 전국 단위의 임금 정책 및 주요 사회정책 방향에 관한 노사정 합의는 2년 혹은 3년을 주기로 갱신되면서 지속됐다. 핀란드는 재정 긴축과 일부 복지 수당 및 서비스 축소, 그리고 산업구조의 질적 개혁을 단행하며 전환의 터널을 통과했고, 노키아 주도 지식정보경제로 탈바꿈해 1990년대 중반부터 약 10여 년간 경제 성장과 활황을 경험했다.

2000년부터 12년을 재직한 타르야 할로넨 전 핀란드 대통령(앞줄 오른쪽) 시절, 핀란드는 국가청렴도, 국가경쟁력, 교육경쟁력 1위 국가로 올라섰다. 핀란드의 ’국민엄마’로 불렸던 할로넨 대통령의 2012년 퇴임식 장면. 도서출판 북하우스 제공
2000년부터 12년을 재직한 타르야 할로넨 전 핀란드 대통령(앞줄 오른쪽) 시절, 핀란드는 국가청렴도, 국가경쟁력, 교육경쟁력 1위 국가로 올라섰다. 핀란드의 ’국민엄마’로 불렸던 할로넨 대통령의 2012년 퇴임식 장면. 도서출판 북하우스 제공
2007년에는 산업 부문의 이익과 고용주 단체를 대표하는 에꼬(EK)가 전국 단위 노사정 협상을 중단하고 산별 및 지역 단위 협상만 진행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미 1980년대 스웨덴 고용주 대표 단체가 사회적 코포라티즘의 정책 협의 틀을 거부한 사례가 있었기 때문에 핀란드 또한 스웨덴의 경로를 밟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2011년 보수당과 사민당을 비롯한 6개 정당 연합정권이 새로 들어선 뒤 에꼬(EK)는 다시 노동조합 대표들과 함께 테이블에 앉아 마라톤협상을 벌였고, 포괄적 임금 정책 방안에 대한 합의에 이르렀다. 당시 2008년 유럽재정 위기 이후 핀란드 경제의 어려운 여건과 이를 타개하려는 정부의 강한 압박이 있었다. 노사정 대표들은 2013년에도 새로운 사회협약에 동의했다. 2015년 유하 시삘라 정부가 추진한 ‘생산성 향상을 위한 사회협약’은 좌초 위기를 겪었으나 앞서 살펴본 것처럼 최대 중앙노조 대표의 인내와 주도적 리더십에 힘입어 2016년 여름에 최종 합의, 시행되었다.

2017년 한국의 노사관계, 어떻게 혁신할 것인가?

1987년 민주화 이후 30년,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20년을 맞이한 2017년 한국 사회는 다시 한 번 중대한 변화의 갈림길에 서 있다.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인 주권자의 염원을 배경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헌법과 정치제도 개혁부터 북핵 위기 극복과 한반도 평화·공존 체제 수립까지 어렵고 중차대한 임무들을 부여받고 있다. 그 가운데 공정한 시장경제 질서의 확립, 지속가능한 복지국가의 건설과 더불어 노사간 신뢰와 합의에 기초한 적극적 노동시장정책 및 사회정책 거버넌스의 구축은 매우 본질적이며 중요한 새 정부의 국정과제라고 할 수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극복 과정에서 시작된 노사정위원회 등의 사회적 대화 기제와 이를 통한 사회적 합의 창출 시도들은 제도적, 정책적 기반이 형해화된 형국이다. 지난 9년간의 보수정권 시기를 거치면서 자본 중심의 편향된 합의 종용, 노동계의 반발과 불신 심화, 협약 파기와 장외 투쟁의 패턴이 반복된 결과이다. 국가주의적 권위주의의 유산, 재벌 중심 경제와 부패한 정경유착의 관행, 과잉 이념화된 노동운동, 아이엠에프 위기 이후 급진적으로 시행된 신자유주의적 노동시장 정책 등 안팎의 제약으로 인해 민주화 시대에 걸맞은 사회적 이익 조정 체계를 발전시키지 못한 것이다.

포용적 성장과 노동존중 사회를 약속하며 새로 선출된 문재인 대통령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일자리 만들기, 최저임금 인상 등의 공약 과제와 더불어 새로운 노사정 관계 구축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노?사, 노?정 간의 높은 불신과 대립, 낮은 노조 조직률과 기업별 단체교섭 시스템,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 간의 균열과 편차, 여성·청년·노인 등 노동시장 편입이 어려운 다수 인구 집단의 존재 등 해법을 찾아야 할 과제들이 산적하다. ‘4차 산업혁명’의 도래 등 일과 노동의 형태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기술적, 사회적 변동의 가능성에도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노사관계의 대전환과 실용적, 합의적 정책 접근을 통해 안팎의 도전 과제들에 효과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 배경이자 최근 많은 사람이 북유럽 모델에 관심을 쏟는 이유이다.

특히, 국제관계의 불리한 여건과 심각한 사회적 갈등과 불신을 딛고 20세기 후반 대결적 노사관계로부터 합의적 노사관계로의 대전환을 일구어낸 핀란드의 경험은 한국의 정책결정자들과 시민들에게도 중요한 영감을 제공한다. 대통령과 정부의 적극적 의지와 정치적 뒷받침, 노조를 대화 상대이자 노동시장의 핵심 파트너로 받아들인 고용주 단체, 책임성과 주도적 리더십을 발휘하는 전국 중앙노조와 그 대표들, 연정을 통해 보편적 복지국가 발전을 주도한 정당들과 그 바탕의 비례대표제 기반 다당제 정치체제 등이 모두 어우러져 또 하나의 북유럽 모델, 20세기 핀란드 민주주의와 복지국가의 여정을 밝혀주었다. 극단적 사회 양극화와 불신의 그늘 아래 수많은 시민이 고통받는 2017년 한국의 현실을 타개할 비상한 의지와 정치적 리더십, 그리고 새로운 집합적 노력이 절실히 요청된다.

서현수 핀란드 땀뻬레 대학교 정치학박사, 미래세대정책연구소 객원연구위원 hyeon.su.seo@uta.f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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