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현지시각) 유럽연합(EU)이 한국을 조세회피처 블랙리스트에 포함시키자, 정부가 ‘조세주권 침해’와 ‘국제기준 위반’을 언급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그러나 유럽연합의 움직임에 우리 정부가 너무 안이하게 대응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6일 기획재정부는 유럽연합이 한국을 17개 비협조적 지역(조세회피처) 명단에 포함한 사실과 관련해 보도자료를 내어, “유럽연합의 결정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지 않고 국제적 합의에도 위배된다”고 비판했다. 이어 “2018년까지 유럽연합과 제도의 유해성 여부를 분석하고 합의하에 제도개선을 검토하자고 제안했으나, 유럽연합은 2018년 말까지 관련 제도의 개정이나 폐지를 약속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명단에 포함시켰다”며 “회원국이 아닌 국가에 유럽연합 자체 기준을 강요하는 것은 조세주권 침해 행위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전날 유럽연합은 28개 회원국 재무장관이 참석한 재정경제이사회에서 한국을 파나마, 튀니지, 바베이도스 등과 함께 조세회피처 블랙리스트인 ‘비협조적 지역’에 포함시켰다. 경제자유구역 등에 입주하는 기업에 대해 법인세와 소득세를 5~7년간 감면해주는 조세특례제한법이 ‘유해조세제도’라는 이유에서다. 유해조세제도란 외국인 거래에 대한 차별적인 세제 혜택을 법적으로 명시한 것을 말한다.
정부는 유럽연합의 이번 조처는 국제적 기준에 어긋난다고 주장한다. 오이시디와 주요 20개국(G20)이 조세회피 방지를 위해 시행 중인 프로젝트(BEPS·국가 간 세법 차이를 이용한 조세회피 방지)를 진행했는데, 지난 9월 우리나라의 외국인 투자 지원제도는 유해조세제도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조세회피행위 적용 대상을 금융·서비스업 등 이동성 높은 분야로 한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올해 초부터 유럽연합이 조세회피처 블랙리스트에 한국을 포함할 뜻을 밝혔음에도 우리 정부가 안이하게 대응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실제로 스위스와 터키, 홍콩 등은 유럽연합과 협상 과정에서 조세제도를 바꾸기로 약속하고 명단에서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우리나라를 제외하곤 경제 규모가 작거나 자치령 섬지역 등만 17개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기재부 관계자는 “억울한 측면이 있지만 오이시디 국가 가운데 외국인 투자에 명시적으로 차등적인 세제 혜택을 제시하는 나라는 한국이 거의 유일한 것도 사실”이라며 “이번 일을 계기로 국내 산업분야 이익과 국제기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외국인 세제지원에 대해 논의해 보겠다”고 말했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 Weconomy 홈페이지 바로가기: https://www.hani.co.kr/arti/economy◎ Weconomy 페이스북 바로가기: https://www.facebook.com/econohan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