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성장·복지 담론인 포용적 성장과 포용적 복지의 의미와 과제를 짚어보는 세미나가 18일 오후 국회도서관 강당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김미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원장, 성경륭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이한주 가천대 글로벌경제학과 교수, 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김윤태 고려대 공공사회·통일외교학부 교수, 주상영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제공
“저출산·고령화의 근본 원인은 고용과 분배 문제다. (높은) 노동생산성과 (낮은) 실질임금의 괴리만큼 비정규직, 임시직이 임금 약탈에 희생당하고 있다. 이걸 해결하느냐 못하느냐에 한국의 미래가 달려 있다. 혁신 성장, 지속가능 성장, 포용적 성장이 필요한 이유다.”(성경륭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복지 지출은 경제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가계소비가 국민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수출이나 투자보다 크다. 소득-소비-투자-일자리가 차례로 늘어나는 포용적 성장과 포용적 복지의 선순환 구조가 정착돼야 한다.”(김미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원장)
문재인 정부의 성장·복지 담론인 ‘포용적 성장’과 ‘포용적 복지’의 의미와 과제를 공개적으로 짚어보는 자리가 18일 오후 국회도서관 강당에서 처음 열렸다. 양승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과 보건복지부가 주최한 ‘포용적 성장과 포용적 복지 세미나’에서 성경륭 교수를 비롯한 참석자들은 저출산·고령화가 심화하고, 빈곤과 불평등이 심각해지는 상황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특히 발제를 맡은 성 교수와 김미곤 부원장은 포용적 성장과 포용적 복지가 그 방법론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사회정책·경제학 등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된 토론자들은 정부가 출범한 지 일곱달이 지났는데도 포용적 성장과 포용적 복지의 개념이 모호해 정치적 수사에 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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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용적 성장과 소득주도 성장
포용적 성장과 포용적 복지의 연원인 ‘포용국가론’을 설파하고 있는 성 교수는 “고용과 분배의 악화가 가속화하고 불평등이 심해져 사회경제적 고통이 확대되는 상황을 타개할 방안은 포용적 성장과 혁신적 성장, 지속가능 성장의 통합 모델”이라고 말했다. △고용과 임금, 복지를 늘려 수요를 확대하는 포용적 성장 △연구개발 투자 확대와 기술 혁신, 인적 자본 확충 등을 통해 공급을 확대하는 혁신적 성장 △에너지 전환 등을 통해 기후·환경·자원 위기에 대응하는 지속가능 성장이 맞물려 추진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 포용적 성장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세계은행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통화기금(IMF) 등에서 강조하는 것으로, “소득분배 개선, 인적 자본 투자 증진, 일자리 창출, 사회보장 확충 등이 주요 내용이며 임금주도 성장, 소득주도 성장과 관련된 개념”이라고 성 교수는 설명했다. 유럽연합 15개국의 사례를 볼 때 임금이 1% 늘면 성장률이 0.3% 증가했다며,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 축소, 사회보장 강화 등을 통해 소득주도 성장을 추진하는 ‘실증적 근거’도 제시했다. 또 복지와 고용, 노동·경제·기술·교육의 통합적 국가조정 체계를 구축해 사회의 혁신 역량을 극대화하고, 사회적 대화를 통해 임금과 함께 국가경쟁력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세미나 참석자들은 성 교수의 문제의식과 정부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지만, 포용적 성장과 소득주도 성장은 개념적·이념적으로 상충된다고 지적했다. 김윤태 고려대 공공사회·통일외교학부 교수는 “포용적 성장은 유럽에서 신자유주의 개혁 이후 실업률이 증가하고 이민자가 늘어나 사회갈등이 커지자 (교육을 통해) 실업자를 노동시장에 참여시키고 이민자를 사회통합시키려 등장한 개념”이라며 “빈곤, 불평등 대신 사회적 배제라는 단어로 대체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어, 빈곤과 불평등 문제를 의도적으로 무시하거나 외면하는 의미로 사용될 수 있다. 좀 더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홍식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포용적 성장은 세계화와 기술 변화에 취약한 계층의 인적 자본을 강화해 포용하겠다는 것으로, 신자유주의적 성장의 새로운 판본이다. 반면 소득주도 성장은 강력한 노동조합, 정부의 적극적인 시장 규제 등을 바탕으로 한 평등한 성장 전략이자 신자유주의 구조 자체를 바꾸자는 것”이라며 “서로 다른 두 개념이 포용적 복지국가와 어떤 관계인지 해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성 교수는 “‘포용’에는 타인을 끌어안고 보호하고 수용한다는 철학적 의미가 있고, 영어 표현으로 ‘인클루딩’(including)은 고용이나 분배, 불평등도 등을 볼 때 사회 구성원들을 어느 정도나 인클루딩할 거냐의 개념으로 두 의미가 잘 맞는다”며 “링컨 대통령이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를 얘기했는데 이는 각각 국민주권과 참여, 복지를 설명하는 것으로, 이 세 가지의 수준을 끊임없이 높여가는 게 포용국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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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용적 복지와 보편적 복지
포용적 복지 분야 발제를 맡은 김미곤 부원장은 “포용적 복지에는 경제·사회 정책의 패러다임을 전환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며 “어느 계층도 소외됨이 없이 경제성장의 과실과 복지 서비스를 골고루 누리고, 개개인이 인간으로서 가치를 존중받는 포용적 복지국가를 지향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일자리가 줄고, 플랫폼 노동을 비롯한 불안정·비정규직·저임금 노동자가 늘어나면 노동자의 임금 격차가 벌어지고, 이는 곧 복지 격차로 이어진다. 한국의 복지 제도가 내는 사람만 돌려받는 사회보험 중심으로 설계돼 있는 탓이다. 이 때문에 김 부원장은 “노동시장에서 비정규직을 양산해놓고 복지정책으로 이를 돌보는 건 불가능하다”며 “교육·철학·경제·노동·복지를 한 묶음으로 보고 이를 관통하는 패러다임을 설정해야 한다. 정부는 부를 고르게 분배하는 기제를 모색할 필요가 있으며 그 대안 가운데 하나가 기본소득”이라고 주장했다. 또 참여정부 말기에 제시된 ‘황금 삼각형 모델’ 즉 경제-일자리-복지의 선순환 구조에 교육을 더해 ‘황금 사각형 모델’을 구축하는 한편 사회·경제 시스템을 저비용 사회로 개편하고, 불평등 연계 조세제도 도입을 검토하자고 제안했다. 이렇게 되면 ‘복지지출 증가 → 불평등과 빈곤 감소 → 사회통합’이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윤홍식 교수는 소득 증가가 곧바로 내수 진작과 경제 성장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고 반박했다.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소득이 올라도 소비는 줄었다. 증가한 소득으로 부동산이나 주택 관련 부채를 상환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윤 교수는 “소득주도 성장이 성공하려면 미래의 불안을 잠재울 보편적 복지체제를 갖춰야 한다. 보편적 수당 제도 등 보편적 복지 원칙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지원이 더 필요한 집단의 가처분 소득을 높일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비극의 출발은 주거, 의료, 고용, 소득, 돌봄 등 기본적 사회권이 시장에 방치되거나, 정부가 손을 대도 그 영향이 미흡한 것”이라며 “빈곤 사각지대 해소만이 아니라 중산층의 욕구까지 공적 시스템 안에서 소화하는, 보다 진보적인 의미의 보편주의가 필요하다. 그런 내용이 포용적 복지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 명료해져야 한다”고 꼬집었다. 구 교수는 또 “포용적 성장·복지 담론에서 성차별 문제제기가 전혀 없다는 게 놀랍다. 노동 배제와 함께 우리 사회를 (차별적인 상태로) 지탱해온 또 하나의 축이 여성 배제이므로, 새로운 정책 패러다임을 만드는 데는 성평등이 반드시 반영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본격적인 증세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최영준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새 정부가 출범한 지 7개월이 지났으니 구체적인 쟁점을 갖고 논의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는데 그렇지 않아 아쉽다”며 “특히 증세 논의는 피할 수 없을 것인데, 예산이 뒷받침되지 않은 상태에서 있는 돈으로 포용적 복지를 하면 된다고 할까 크게 우려된다”고 말했다.
조혜정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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