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 일가 회사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 등으로 줄곧 비판받아온 태광그룹이 계열사 간 합병으로 이를 개선할 계획이다. 다른 계열사로부터 주로 매출을 올려온 회사를 그룹 내 계열사와 합병시켜 일감 몰아주기나 내부거래 시비를 없애는 식이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재벌의 자체 개혁 시한으로 정한 연말을 앞두고 개선안을 내놓은 것으로 보인다.
태광그룹은 26일 정보통신(IT)·부동산 서비스 계열사인 티시스를 사업회사와 투자회사로 인적분할하고, 상품권업체인 한국도서보급이 티시스(투자회사)와 데이터 방송채널사용사업 계열사인 쇼핑엔티를 흡수합병한다고 밝혔다. 합병 예정일은 내년 4월1일이다. 또 남게 되는 티시스(사업회사)에 대한 이호진 전 회장 지분(약 1천억원)은 내년 상반기에 무상증여할 계획이다. 태광그룹 쪽은 “누구한테 증여할 것인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며 “다만 현준씨에게 증여하는 건 상속을 둘러싼 또 다른 사회적 논란이 빚어질 수 있어 총수 일가에 증여하는 건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말했다.
태광그룹은 일감 몰아주기뿐만 아니라 편법 승계로도 비판을 받았다. 이 전 회장의 아들 현준(27)씨는 초등학교 6학년인 2006년 그룹 내 비상장 계열사(당시 태광시스템즈·티알엠 등)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2대 주주로 등극한 바 있다. 티시스 역시 이호진(55) 전 회장 일가가 지분 97.4%를 보유한 기업으로, 지난해 매출 2157억원 가운데 1836억원(85.1%)을 다른 계열사로부터 올리는 등 줄곧 매출 대부분을 다른 계열사에 의존해왔다.
앞서 태광그룹은 지난해 12월 염색업체 세광패션 지분을 태광산업에 매각하고, 지난 7월 와인유통업체 메르벵 지분 전체를 태광관광개발에 무상증여하고 디자인업체 에스티임을 티시스에 매각했다. 이번 합병까지 끝나면 이 전 회장 일가가 소유한 회사는 세광패션·메르벵·에스티임·동림건설·서한물산·티시스·한국도서보급 등 7개에서 한국도서보급 단 1개로 줄어든다. 총수 일가 회사들을 하나둘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티시스를 쪼갠 뒤 사업회사의 총수 일가 지분을 증여해 시비를 해소하는 식이다.
태광그룹도 이번 합병이 내부거래와 일감 몰아주기 논란 해소 차원이라고 밝혔다. 태광산업 관계자는 “이 전 회장의 무상증여 등 후속 조처가 완료되면 내부거래와 일감 몰아주기 논란과 가능성이 원천적으로 차단될 것”이라며 “공정거래위원회의 자발적 지배구조 개혁 요구를 적극적으로 실행에 옮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태광그룹은 태광산업을 주축으로 섬유·석유화학, 흥국생명·흥국화재 등의 금융, 티브로드·티캐스트의 미디어, 티시스·태광CC·한국도서보급 등 인프라·레저사업을 영위하는 대규모 기업집단이다. 그동안 이 전 회장 일가가 대주주로 있는 7개 계열사 사이 많은 내부거래로 총수 일가를 위한 일감 몰아주기 의혹을 받으며 공정위와 시민단체로부터 지배구조 개혁 요구를 받아왔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태광그룹의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지적에 대해 “공정거래법으로 규율할 수 있을지 등을 검토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더욱이 이호진 전 회장이 횡령·배임 혐의로 병보석 상태에서 7년 가까이 재판을 받는 것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총희 경제개혁연대 연구위원은 “뒤늦게나마 지배구조를 개선한 것은 다행이지만, 애초 편법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많은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에서 늦은 감이 있다”고 말했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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