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형권 기획재정부 제1차관(윗줄 왼쪽 넷째)이 11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물가관계 차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외식업체들이 최저임금 인상에 편승해 가격을 올리는 행위를 감시하기 위해, 소비자단체를 통해 주요 외식 물품에 대한 원가 분석에 나서기로 했다.
정부는 11일 서울정부청사에서 고형권 기획재정부 1차관 주재로 물가관계 차관회의 및 제14차 최저임금 태스크포스(TF)를 열어,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물가 영향을 점검하고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고 차관은 이날 회의에서 “최저임금 인상을 빌미로 한 인플레 심리 확산 가능성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일부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최저임금 인상을 빌미로 가격을 올릴 경우 전체 자영업에게까지 가격 인상이 번질 것을 우려한 조처다.
정부는 우선 김밥과 치킨, 햄버거, 커피 프랜차이즈 업체 등에 대한 심층 원가 분석을 시민단체인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에 의뢰하기로 했다. 인건비나 원자재 가격 인상과 무관한 가격 인상이 있는지 살펴보겠다는 취지다. 원가 분석에는 통상 2~3개월 정도가 걸리는데, 분석이 완료된 뒤 내용이 공개되고 이를 바탕으로 소비자 공청회도 열린다. 또 공정거래위원회는 생활밀접 분야를 중심으로 가격인상 과정에서 담합 등 불법적인 행위가 있는지 감시를 강화하기로 했다. 행정안전부와 지방자치단체도 이날부터 3월18일까지 물가대책종합상황실을 운영하며 생활물가 인상과 관련한 현장점검과 단속에 나선다.
최저임금 인상 뒤 전반적인 물가 상황을 가늠할 수 있는 1월 물가 지표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정부는 대형 외식업체를 점검한 결과 아직 가격 인상이 외식업계 전반으로 확산되지는 않은 것으로 분석했다. 과거 두자릿수로 최저임금이 올랐던 2000년과 2007년의 경우, 인상 전후 석달간을 비교해보면 외식업이 포함된 개인서비스 물가상승폭은 0.1~0.2%포인트 정도에 그친 바 있다.
국내 주요 민간 연구기관들의 전망도 엇비슷하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올해 경제전망을 내면서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소득증가와 소비심리 개선으로 수요측 물가인상 요인이 있다. 다만 원화 강세와 농축산물 가격 안정으로 공급측 물가상승 압력이 낮아질 전망”이라며 올해 물가상승률을 지난해(1.9%)와 비슷한 2%로 내다봤다. 엘지(LG)경제연구원도 “최저임금 상승 압력이 물가를 높이는 요인이 될 수 있지만 (일자리 안정자금) 3조원의 예산을 투입한 만큼 임금 인상에 따른 가격 인상 효과는 높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한편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한 각 부처 장관들은 “최저임금 인상이 대통령 신년사에 첫번째로 언급될 만큼 매우 중요한 사안”이라며 최저임금 인상 연착륙 방안에 대한 공개토론에 나섰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어느 한 부처의 일이 아닌 경제팀이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라며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내수 활성화를 통해 투자-성장-고용이 선순환하는 구조로 경제 체질이 개선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영록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농촌 분야 종사자의 46%가 최저임금 대상에 해당하는 만큼 (최저임금 인상은) 많은 농민들에게 혜택이 주어질 것”이라고 밝혔고,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인천 서구와 서울 수유·번동 아파트 등에서 최저임금 인상 뒤 경비원 해고 없이 주민들이 자율적으로 급여를 인상한 좋은 사례가 있다”고 언급했다. 또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은 “최저임금 인상이 임금격차 해소와 여성의 재취업 유인을 제고하는 데도 도움을 줄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방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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