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무역협정(FTA) 파트너이고, 삼성·엘지(LG)가 미국에 세탁기 공장을 지었는데도 트럼프 대통령이 세이프가드를 발동했다.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카드를 꺼냈지만 이겨도 미국이 판정 결과를 안 따르면 그만이다.”
22일 미국이 한국산 세탁기·태양광 패널에 세이프가드를 발동한 데 대해 여러 언론매체와 통상분야 전문가들로부터 즉각 나오는 반응이다. 강성천 통상교섭본부 차관보도 세이프가드 발동이 임박한 지난 15일 기자간담회에서 “삼성·엘지의 미국 현지공장 투자로 트럼프는 목적을 이미 달성했는데도…”라며 볼멘소리를 했다. 울분을 토할 수밖에 없지만, 냉혹한 국제통상 질서는 어쩔 수 없이 ‘비대칭적 힘의 관계’가 지배한다.
세계무역기구의 위상은 개별 국가 사이에 벌어진 통상갈등을 해결하는 데 근본적 한계를 안고 있다. 통상 당국자는 최근 <한겨레>와 만나 “승소하더라도 부당한 반덤핑·세이프가드를 중단하라는 의미일 뿐 통상 3~4년에 걸리는 소송기간 동안 우리 기업이 입는 피해는 보상을 요구하기도 받아내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또 “힘의 열세에 있는 우리가 미국에 보상하라고 얘기하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미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야 하는데, 미국은 이에 맞서 또다른 한국산 수입제품을 건드리며 새로운 보복조처를 들고나올 가능성이 크다. 보상 요구를 우리 스스로 포기하도록 압박하는 것이다. 경제적 이해가 걸린 통상협상 판도는 강자와 약자 간 ‘위계 논리’가 불문율처럼 관철되는 세상이다.
양국 간 무역 보복 및 응수 행동에 세계무역기구가 개입해도 국제규범 위반 여부를 판정할 수는 있지만, 해당 국가가 판정 결과를 이행하도록 하거나 피해 배상을 강제하기 어렵다. 개별 주권국가의 통상정책에 대한 침해가 되기 때문이다. 미국이 2013년부터 시작된 ‘한-미 세탁기 반덤핑분쟁’에서 2016년 6월 최종 패배했는데도 아직도 반덤핑관세 부과를 풀지 않고 있다. 결국 승소한 쪽이 부당한 것으로 판정된 세이프가드·반덤핑 관세 부과를 중단하도록 패소국에 보복조처를 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미국산 농산물·의류 등 다른 제품에 보복 관세를 부과하는 것인데, 이마저도 세계무역기구로부터 또 승인을 얻어야 한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처럼 보복하기도 쉽지 않다. 우리 무역위원회는 현재 10여건의 반덤핑 사건을 조사 중이다. 이 가운데 미국산 수입제품은 화학제품 관련 2건으로, 무역위 쪽은 “둘 다 수입규모가 미미하다”고 말했다. 이를 고리로 트럼프를 압박하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통상 당국자는 “국제 통상질서에서 반덤핑 관세를 두드려 맞아도, 단지 재발을 막기 위해 나서는 것일 뿐 마땅한 대응 방법이 사실상 없는 형편”이라고 탄식했다. 미국이 세이프가드 행동에 돌입하기 전에 수시로 백악관이나 미 의회를 찾아가 백방으로 설득하는 이른바 ‘아웃리치’만이 통상당국의 ‘최선의 대응’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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