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의 상표권(브랜드) 사용료 수입이 연간 1조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상표권 사용료를 받는 회사의 대부분이 총수일가 지분이 높고, 열 중 아홉꼴로 세부내역을 제대로 공시하지 않는 불투명한 거래를 해 총수일가 ‘사익편취’ 위험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거래위원회는 30일 자산 5조원 이상 재벌을 상대로 상표권 사용료 현황을 실태점검한 결과, 삼성·에스케이(SK)·엘지(LG) 등 20개 재벌 지주(대표)사가 277개 계열사로부터 2016년 기준 9314억원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재벌의 상표권 사용료는 상표권을 보유한 지주사가 계열사들로부터 상표를 쓴 대가를 받는 것으로, 2014년 8654억원, 2015년 9225억원 등으로 매년 증가세를 보인다.
재벌의 상표권 사용료는 총수일가 사익편취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논란이 지속적으로 제기됐고, 재벌 전체 실태가 공개되기는 처음이다. 공정위는 재벌 지주사가 배당보다는 상표권 사용료와 컨설팅 수입에 의존하면서, 자회사 지분확대 유인이 사라지는 등 재벌의 소유지배구조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상표권 사용료를 받는 20개 회사 가운데 13개가 총수일가 지분율이 상장사 30%, 비상장사 20% 이상일 정도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룹별로는 부영의 총수일가 지분이 95.4%로 가장 높고, 다음은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 73.9%, 미래에셋자산운용 62.9%, 아모레퍼시픽그룹 54.2%, 한진중공업홀딩스 49.3%, 코오롱 45.4%, 지에스 42%의 순서였다. 또 상표권 사용료가 수취회사의 매출액이나 당기순이익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높았다. 매출액 대비 비중은 씨제이가 66.6%로 가장 높고, 다음은 한솔홀딩스 53%,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 53%, 코오롱 51.7%, 한진칼 51.2%, 엘지 40%의 순서였다. 당기순이익 대비 비중은 코오롱이 285%로 가장 높고, 다음은 씨제이 145%,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 107%, 한화 76%, 엘지 72.3%가 뒤를 이었다.
그룹별 상표권 사용료는 엘지가 2458억원으로 가장 많고, 에스케이 2035억원, 씨제이 828억원, 한화 807억원, 지에스 681억원 등의 순서였다. 재계 1위인 삼성은 89억원으로 상대적으로 적었다. 현대차그룹은 2016년말부터 상표권 사용료를 받기 시작해 조사대상에 빠졌다. 공정위는 재벌별로 상표권 사용료 수입규모가 다른 이유에 대해 “지급회사 수, 사용료 산정기준 금액(매출액), 사용료 산정기준 비율(사용료율)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상표권 사용료를 지급하는 계열회사 수는 에스케이가 58개로 가장 많았고, 씨제이 32개, 지에스 25개, 엘지 19개, 한화 18개, 코오롱 17개 등의 순서였다. 산정방식은 매출액(또는 매출액에서 광고선전비를 제외한 금액)에 일정비율(사용료율)을 곱하는 방식이 주로 사용했다.
상표권 사용료를 지급하는 227개 계열사 가운데 67%(186개사)는 관련 내용을 전혀 공시하지 않았고, 나머지 공시 회사들도 내용이 허술했다. 사용료 산정방식 등 세부내역을 제대로 공시한 회사는 11.9%(33개사)에 불과했다. 신봉삼 기업집단국장은 “재벌 계열사의 상표권 사용료 거래의 상세내역을 매년 의무적으로 공시하도록 공시규정 개정안을 행정예고했다”면서 “앞으로 공시 실태 및 수취 현황을 매년 공개하고 총수일가 사익편취 혐의가 드러나면 엄정하게 법적용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곽정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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