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보면 자식이 보인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집행유예 석방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는 가운데, 이 부회장의 향후 행보에 관심이 모인다. 이 부회장은 집행유예로 풀려난 지 나흘째인 8일에도 잠행을 이어갔다.
재계에서는 비자금 사건으로 경영에서 물러났다 복귀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행보를 보면, 아들 이 부회장의 향후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회장은 2008년 4월 삼성특검에 의해 배임 및 조세포탈 혐의 등으로 기소되자,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이재용 부회장과 달리 구속은 면했지만 1~3심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판결을 받았다. 이후 2009년 12월 평창 동계올림픽을 유치해야 한다는 이유로 홀로 사면을 받았고, 이듬해 3월 ‘회장직’을 다시 맡았다. 복귀에 꼬박 2년이 걸렸다.
“지금이 진짜 위기다. 삼성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이 회장은 2010년 3월 ‘위기론’을 내걸고 복귀했다. 삼성그룹 사장단이 이 회장의 복귀를 요청하는 형식이었다. 곧이어 적극적인 투자 계획을 쏟아냈다.
2010년 5월10일 이 회장은 자동차용전지·바이오·태양광·의료기기·엘이디(LED) 등 5대 신수종 사업에 23조원 투자 계획을, 17일에는 반도체 부문 11조원 등 총 26조원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석달 뒤인 8월에는 1조원 협력사 지원 펀드 등 상생경영 방안을 발표했고, 이후에도 해외 대형 합작 사업 계약 등을 이어갔다. 5대 신수종 사업 가운데 태양광·의료기기 등은 아직 진척이 없다.
이재용 부회장은 어떤 행보를 할까? 한 증권사 분석가는 “복귀 시점이나 주어진 과제 등 부자의 상황이 다르긴 하지만, 큰 틀에서는 아버지와 비슷한 행보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있을 3심 재판에서 유리한 분위기를 만들고 부정적인 여론을 돌려놓기 위해 삼성이 대형 투자나 일자리 창출에 나선다는 것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내가 참모라면 향후 재판이나 여론 형성에 유리하도록 일자리 창출 등 사회적 기여에 신경을 쓸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삼성전자는 이 부회장이 집행유예로 석방된 뒤 이틀 만에 기다렸다는 듯 ‘반도체 라인 신설 투자’를 결정했다. 수개월 전부터 논의되던 투자가 그의 복귀 시점에 맞춰 결정된 것이다. 이건희 회장이 회장직에 복귀한 뒤 수십조원 투자를 발표한 모습과 유사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5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법에서 열린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 받은 뒤 법정을 나서서 호송차에 오르며 미소짓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하지만 이 부회장이 과거 이건희 회장처럼 경영 전면에 나서는 것은 당분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아버지와 처지가 다른 탓이다. 이 부회장은 3심 재판을 받아야 하고, 그의 집행유예 판결에 사회적 여론도 곱지 않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당장 경영 전면에 나설 경우 여론의 반발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삼성 관계자도 “당분간 대외 활동은 자제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경영 참여 시점이 꽤 늦어질 수도 있다. 이건희 회장은 경영 실적이나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눈에 보이는 과제를 떠안았고, 이 과제들에 대해 각각 ‘150조원 매출 달성’과 ’올림픽 유치’라는 성과를 내놓았다. 그러나 이 부회장은 경영에 앞장설 경우 반도체 호황이 끝날 수 있다는 우려와 스마트폰 시장에서 점유율 추락 등 어려운 시장 상황에서 실적 개선이란 과제를 떠안아야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배구조 개편, 이건희 회장 차명재산의 사회 환원 등도 해결해야 한다. 능력을 입증하기는 쉽지 않고, 해결은 쉽지 않지만 모두가 주목하는 과제들이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