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임원인 ㄱ씨와 두 딸은 공동명의로 상가를 산 뒤 각각 담보대출을 받았다. 두 딸은 건물에서 나오는 임차료로 대출금을 갚았다. 금융기관을 끼고 이뤄진 편법 증여인 셈이다. 국세청은 부동산 거래 관련 세무조사 과정에서 이를 적발하고, ㄱ씨가 자녀에게 몰아준 임차료 지급분에 대해 증여세를 추징했다.
국세청이 12일 발표한 대기업 임원과 공직자, 교육공무원, 대형로펌 변호사 등 고위층 편법 증여 사례를 보면, 부동산 거래를 이용한 변칙증여 행위가 전문가 등의 조력을 받아 갈수록 지능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세청은 지난해 8월 이후 4차례에 걸쳐 서울 강남권 등 부동산 가격급등 지역을 대상으로 기획세무조사를 벌인 바 있다. 조사 대상 1375명 가운데 779명에 대한 조사를 마쳤고, 나머지 596명은 아직 조사가 진행중이다.
국세청이 적발한 사례를 보면, 대형로펌 변호사인 50대 ㄴ씨는 20대인 딸이 서울 송파구 아파트를 취득하고, 강남구 아파트를 빌리는 자금을 증여했지만 세금 신고는 하지 않았다. 자금 일부는 아내에게 먼저 준 뒤, 딸에게 다시 전달하는 방식으로 세무당국의 눈을 피하려 했다. 공직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 60대 공직자는 아들이 음식점을 운영하기 위해 상가 건물을 취득하는 과정에서 자금을 현금으로 지원해 준 뒤 증여세 신고를 하지 않았다. 아들은 사업체에서 나오는 사업소득 매출을 누락해 소득세도 탈루했다. 전직 교육공무원인 50대 여성은 일정한 소득이 없던 아들이 서울 강동구 재건축 아파트를 사고 단기 시세차익을 얻는 과정에서, 아파트를 사기 위해 빌린 금융기관 담보대출을 대신 갚아주며 증여세를 탈루했다.
친척을 동원해 부동산 증여를 위장하기도 했다. 60대 대기업 임원 ㄷ씨는 두 아들이 서초구 아파트를 취득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동생(아들의 숙부)에게 부동산 취득자금을 먼저 건넨 뒤, 두 아들이 숙부에게서 돈을 빌린 것처럼 꾸며 증여세를 피했다. 40대 회계사인 ㄹ씨는 부모, 누나, 매형 등에게 돈을 받아 토지를 공동소유형식으로 사들여 증여세 납부를 누락했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