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시민들이 일본수산물 수입 반대와 단체급식에 대한 방사능 기준치를 새로 만들것을 요구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 사진
한국이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금지 관련 세계무역기구(WTO) 분쟁에서 일본에 패소한 가운데, 2015년 우리나라 ‘일본방사능 안전관리 민간전문가위원회’가 후쿠시마 수산물 방사능 위험보고서 작성이라는 최종 절차를 끝내지 않은 채 활동을 중단한 사실을 이번 패소 근거 중 하나로 지목됐다. 이에 따라 당시 민간전문가위원회가 활동을 중단한 이유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세계무역기구 분쟁해결패널(DSB)은 22일(현지시각) 2015년 5월 일본 정부가 제소한 ‘한국의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금지’ 분쟁사건을 심리한 결과, 한국 정부가 2011년 3월과 2013년 9월 두 차례에 걸쳐 후쿠시마 인근 8개현 수산물에 대해 포괄적으로 수입을 금지한 첫 임시특별조치는 정당했지만 그 뒤에도 지속적으로 수입금지를 유지한 것은 “세계무역기구 ‘위생 및 식물위생조치의 적용에 관한 협정’(SPS 협정)상의 제5.7조 위배”라며 패소 판정했다. 협정 제5.7조는 수입제한을 취할 과학적 증거가 불충분한 경우 임시특별조처로 일단 수입을 금지할 수 있지만, 조처를 취한 당사국은 그 이후에 수입규제조처를 지속해야 할 추가 정보·근거를 제시하고 소비자 안전위험을 재평가하는 충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의무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총 200여 쪽에 이르는 이번 패널판결 보고서 중 일부(105~107쪽)를 보면, 분쟁패널은 한국의 ‘일본 방사능 안전관리 민간전문가위원회’가 후쿠시마 수산물 방사능 위험보고서 작성이라는 최종절차를 끝내지 않은 점을 언급하며 “(패널심리 과정에서)한국정부는 왜 최종절차를 중단했는지 그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2014년 말 식품의약안전처가 이 위원회를 구성하고 일본 현지 조사 등에 나섰는데, 이듬해 일본이 제소하자 즉각 후속활동을 중단하고 아무런 최종 결론도 내지 않은 건 ‘안전 위험성에 대한 지속적인 재평가 노력’(5.7조)을 충분히 기울이지 않은 근거 중 하나라고 패널이 지목한 셈이다.
이번 패널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정부는 “민간전문가위원회는 한국정부를 대표하지 않으며, 법적으로 설립된 위원회도 아니고 한국정부는 그 활동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통상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국제통상위원장)는 “한국 정부는 그동안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금지는 세계무역기구 위생협정 제 5.7조에 근거해 취한 조처’라고 주장해왔다. 그렇다면 이 조항에 따라 민간전문가위원회가 방사능 누출에 따른 소비자안전·위험에 관한 추가 정보를 수집하고 평가하는 활동을 지속해야 했는데, 석연찮게도 거꾸로 갑자기 활동을 중단해버린 것이 이번 패소의 1차적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우리 정부는 지난 2015년 6월 5일 “일본의 세계무역기구 제소라는 상황 변화에 따라 위원회는 활동을 잠정 중단한다”고 밝힌 바 있다. 송 변호사는 “일본의 제소가 활동중단 사유라고 한 당시의 해명을 납득할 수 없다. 5.7조에 근거한 우리 정부의 일본산 수산물 수입금지조처가 정당성을 계속 확보하기 위해서는 전문가위원회 등을 통한 위험성 재평가 노력을 우리가 지속적으로 벌여나가야 한다는 점을 우리 당국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인데, 왜 활동중단이라는 무책임한 의사결정을 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당시 우리 정부가, 일본·미국이 주도하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뒤늦게 가입하려고 시도하던 때였던 만큼 가입 동의를 일본에 요청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며, 일본의 제소에 따른 전문가위원회 갑작스런 활동 중단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을 제기한다.
조계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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