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5일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FTA 개정 1차협상. 산업부 제공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협상에서 양국이 합의한 타결 내용을 둘러싸고 우리가 ‘관세 25% 면제’ 대신에 받은 ‘철강 쿼터’가 애초의 관세 부과 방식에 견줘 득실에서 과연 유리한지 등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일부 통상 전문가들은 △화물자동차(픽업트럭) 관세철폐 기간 연장에 따른 금전적 피해 규모 △농축산물시장 추가개방 저지 및 투자자-국가분쟁해결(ISDS) 개선을 자동차분야 양보에 견줘볼 때 어느 정도나 우리의 ‘성과’로 볼 것인지 △철강에 아직 남은 분쟁 불씨 등을 거론하며, “우리 쪽 실리 확보”라는 협상당국의 평가에 의문을 제기하고 나섰다.
27일 한국국제통상학회(회장 허윤 서강대 교수) 주최로 서울 프레스센터 18층 외신기자클럽에서 열린 ‘한-미 자유무역협정 개정협상 결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긴급 간담회에 패널로 참여한 김영한 성균관대 교수(경제학)는 “우리가 얻어낸 ‘철강 쿼터 70%’는 미국 상무부가 지난 2월 협박용 목표로 이미 설정했던 쿼터(63%)와 큰 차이가 나지 않아 미국이 충분히 만족하는 물량 수준”이라며 “모든 국가가 25% 관세를 물거나 한국과 유사한 수준의 쿼터가 설정될 경우를 가정할 때, 한국산 철강의 품질경쟁력을 고려하면 25% 관세가 부과된다해도 오히려 대미 수출량이 기존에 비해 70% 수준까지 줄어들지 않을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고 말했다. ‘철강 쿼터 방식’ 확보를 위해 자동차분야에서 미국에 큰 폭의 양보를 내줬는데 정작 할당받은 쿼터는 최근 3년간 연평균 대미 수출물량의 70% 수준이며, 감축된 30%는 애초 방식인 ‘관세 25% 납부’에 따른 우리 업계의 타격을 상쇄하는 정도라서 우리가 얻어낸 쿼터 방식이 사실은 별로 효과가 없을 것이란 얘기다. 물론 이는 미국 철강시장에서 가격변화에 따른 수요의 탄력성 값을 계산해 따져봐야 보다 정확히 비교·판단할 수 있다. 나아가 미국 철강시장에서 경쟁하는 모든 수입산에 25%의 관세가 부과되지 않고 한국처럼 일부 국가가 관세 면제를 받거나 쿼터를 받는 상황으로 전개되면 쿼터방식이 물량과 금액 둘 다 더 유리할 수 있다. 김 교수는 “하지만 미국이 쿼터 70% 타결에 매우 만족했으며, 그래서 철강 타결에 더 이상 시간을 끌 이유가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패널로 참가한 정인교 교수(인하대)는 “(관세 25% 부과가 아니라)쿼터로 수출물량이 아예 70%로 제한됐는데, 미국 이외 다른 대체시장을 찾기 쉽지 않은 우리 철강산업으로선 적응하기 어려워졌다”며 “관세가 부과되는 다른 외국산 철강으로 인해 미국내 철강 수입가격이 오를 것이고, 비록 수출물량은 감축돼도 가격인상 효과를 고려하면 수출금액은 더 늘어날 수도 있는데, 이 역시 기대와 가정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박천일 한국무역협회 단장(통상지원단)은 “쿼터물량이 268만톤으로 제한된데다 세이프가드와 달리 쿼터 부과 종료 시한이 명시되지 않아 불확실성이 지속된다는 점은 업계에 부담”이라고 말했다. 미국 상무부는 ‘25% 관세부과’ 기간을 따로 명시하지 않고 있는데, 한국이 이번에 받은 쿼터 기간이 ‘관세부과 종료시까지’로 명확히 정해지지 않아 도중에 관세 부과로 바뀔 가능성도 남아 있다.
물론 이번 232조 철강 국면에서 우리 철강업계 스스로 관세보다는 쿼터 방식을 선호한 것으로 알려진다. 또 앞으로 쿼터 외에 ‘철강 품목별 관세면제’를 추가로 받아낸다면 쿼터에 따른 수출제한에서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일 여지도 있다. 그러나 최병일 교수(이화여대)는 “철강 쿼터물량을 (감소폭이 큰)70%로 합의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그 대가로 한국산 철강에 대해 미국이 이미 부과중인 20여개 반덤핑·상계관세 부과를 중단·축소하라고 요구해 받아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산 픽업트럭(화물자동차)의 미국시장 수입관세 철폐 기간을 10년에서 20년으로 연장해준데 따른 우리 업계의 피해 규모도 논란이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26일 가진 ‘한-미 에프티에이 협상결과’ 브리핑에서 “픽업트럭은 한국이 미국에 수출하는 물량이 아직 없어(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 자동차업계로서는 수익성 높은 잠재적 수출기회를 놓치게 돼 막대한 금전적 피해를 협상 기회비용으로 지불하게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천일 단장은 “픽업트럭은 미국 전체 자동차 판매량의 15%를 차지할만큼 비중이 크고, 일반 승용차에 비해 수익성이 높다. 미국 회사들의 시장점유율이 높아 우리 자동차업계가 관세철폐(2019년부터 3년간 현행 25% 관세 완전철폐) 시기에 맞춰 시장진입을 준비해왔는데 철폐시기가 20년 뒤로 미뤄지면서 신규시장 진입기회를 놓치게 됐다”고 말했다. 정인교 교수도 “관세가 철폐되는 2021년을 목표로 우리 업체가 픽업트럭 기술개발에 나서 막바지 단계에 와 있었는데 아쉽다”고 말했다. 최병일 교수는 “우리가 10년 전 한-미 에프티에이를 체결할 때 일본·유럽차에 비해 미국시장 픽업트럭 진출을 선점하기 위해 ‘10년 후 관세 완전철폐’를 얻어냈는데 이것을 차버린 격”이라며 “10년 더 연장해주는 대신에 우리가 미국시장 픽업트럭 쿼터를 받아내거나 아니면 단계적 관세율 인하라도 얻어냈어야 했다”고 말했다.
농축산물시장 추가개방 저지나 투자자-국가분쟁해결(ISDS)제도 개선을 미국으로부터 힘겹게 얻어낸 ‘성과’로 볼 수 있는지를 둘러싼 의문도 제기됐다. 최병일 교수는 이날 간담회에서 “협상당국이 농축산물시장 추가개방을 막아냈다고 하는데 미국은 협상 과정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자동차협상을 원한 것같다. 과연 미국이 한국 농축산물 시장개방을 강력하게 요구했던 것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투자가-국가분쟁해결제도 역시 미국 협상팀이 과연 어느 정도나 자국 관심사항으로 여기고 현행 협정문의 관련 조항을 그대로 유지하고 지키려했는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이어 “이번 개정 협상결과를 보면, 철강관세 시한에 쫓기면서 차선보다는 ‘차악’을 선택한 것같다”며 “협상당국이 협상 내용을 외부에 거의 공개하지 않은 채 그동안 깜깜이 속에 협상이 이뤄진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정인교 교수는 “며칠 전에 트럼프 대통령이 ‘원더풀 국가(한국)와 원더풀 딜을 거의 끝내가고 있다’고 취임 이후 한국에 대해 사실상 처음으로 원더풀이란 표현까지 써가며 대만족을 표시했다”며 “반면에 우리 통상당국의 26일 발표내용을 보면 양국 협상이 뭔가 싱겁게 끝났다는 느낌이 드는데, 이런 차이가 단순히 양국의 손익계산방법이 다른 데서 비롯된 것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발표된 협상 내용 이외에 디테일한 여러 내용이 아직 공개되지 않고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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