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일 PSIA 대표이사(맨오른쪽)가 28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상대원동 본사 테스트실에서 조립을 마친 원자현미경 XE-100을 최종시험해보며 직원들과 의견을 나누고 있다. 성남/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원자현미경 첫 개발·상용화 실리콘밸리 ‘주름’
귀국해서도 교과서 경영…대기업등 밉보이기도
“정직이 성장 밑천” 외부감사·정보공개 적극적
강소기업이 뛴다/④ PSIA 지난해 산업자원부가 선정한 ‘2004년 대한민국 10대 신기술’ 수상기업을 살펴보면, 삼성전자와 엘지전자, 현대자동차 등 쟁쟁한 대기업 틈에 생소한 이름이 비쭉 고개를 내밀고 있다. 원자현미경 제조업체인 ‘피에스아이에이(PSIA)’다. 원자현미경은 1세대 광학현미경, 2세대 전자현미경을 잇는 3세대 현미경이다. 배율이 수천만배에 이르러 1나노(10억분의 1 미터)의 세상을 관찰할 수 있기 때문에, 나노 기술 발전의 핵심 인프라로 꼽힌다. 피에스아이에이의 박상일(48) 사장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원자현미경 전문가다. 미국 스탠퍼드대학 연구원 시절에 이미 세계 최초로 원자현미경을 발명한 그는 88년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원자현미경 상용화를 통해 부와 명예를 거머쥐었다. 97년 한국에 돌아와 피에스아이에이를 세운 뒤, 박 사장은 기존 원자현미경의 단점으로 지적됐던 일그러진 상과 오랜 측정 시간, 불편한 사용법 등을 개선한 제품을 2002년 선보였다. 한국에서 또다시 ‘신화창조’에 나선 것이다. 잘나가는 벤처기업이지만, 사실 피에스아이에이는 업계에서 ‘교과서 기업’으로 더 유명하다. 우직할 정도로 경영 원칙을 지켜가기 때문이다. 미국에서의 사업을 접고 귀국을 결심했을 때, 미국인 친구와 한국인 친구의 반응은 상반됐다. 미국인 친구들은 “실리콘밸리에서 ‘벤처’(모험)한 경험을 한국에도 알려야한다”고 독려했지만, 한국 사람들은 “한국에서는 정석대로 해서 되는 건 하나도 없다”며 말렸다. 이후 그는 한국사회의 ‘보이지 않는 손’에 절망해야 했다고 털어놓는다. “한번은 주주총회 뒤 사업 결산을 하고 세무서에 보고했는데 과태료가 나왔어요. 이유를 물어보니, 주주총회 2주 안에 신고해야 하는데 그 기한이 늦었서라더군요. 우리가 주주총회를 빨리 하는 편이라서 다른 곳보다 세금도 일찍 낸 편이었는데 말이에요.” 주위에서는 “세무서에 ‘인사’를 안해서 그렇다”며 혀를 찼다. 직원들은 “오히려 비용이 더 든다”고 아우성이었다. 과태료, 벌금을 모두 내면서 꼿꼿이 버텨나갔다. 한번은 한 대기업과의 거래 때문에 담당자를 찾아간 일이 있었다. “나는 거래의 주체로서 대등한 관계라고 생각했는데, 구매 담당자가 ‘박 사장, 고개가 뻣뻣하시네’하면서 빈정대더군요.” 박 사장은 “중소업체 사장은 ‘알아서 긴다’는 게 그쪽 관행이었다”며 “정말 한심하고 서글펐다”고 털어놨다. 박 사장은 리더십은 정직과 성실에서 나온다고 설명한다. 정직하고 성실하면 직원과 주위의 신뢰와 존경심을 얻고 자연스레 리더십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피에스아이에이는 매달 경영성과와 분기별 경영실적을 월례회의 때 전체 직원에 공개한다. 회사 정보를 공유하면, 마음의 부담도 훨씬 줄어든다는게 박 사장의 설명이다. 비상장기업으로서는 드물게 외부 회계법인의 감사도 꼬박꼬박 받는다. 비용은 1천만~2천만원 정도 들지만, 외부감사와 내부 정보공개를 통해 임직원의 믿음이 쌓이고 유대가 강화되는 것은 돈으로 계산하기 어렵다. 또 이사회에는 박 사장을 뺀 나머지 4명이 모두 교수와 창업투자사 대표, 사외이사다. “주주총회는 1년에 1번밖에 열리지 않기 때문에, 이사회가 주주의 권리를 위임받아 회사의 주요사항을 결정합니다. 이사회의 의무는 주주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죠. 이사회는 반드시 사외이사로 구성되어야 한다는 게 제가 생각하는 정답입니다.” 뛰어난 기술력과 곧은 경영 방침 덕에 회사는 나날이 성장하고 있다. 한대에 1억원이 넘는 비싼 제품이지만 2002년 첫 제품을 내놓은 이후 매출은 연 40% 이상 급성장하고 있다. 2002년 32억원에서 2003년 46억원, 지난해에는 65억원으로 늘었다. 올해는 90억원을 바라본다. 매출의 60%는 해외시장이다. 미국 우주항공국(NASA)를 비롯해 영국과 스위스, 일본, 중국 등 세계 곳곳으로 진출하고 있다. “원칙을 지키면 단기적인 이득은 없어도 멀리봤을 때는 분명히 큰 이득으로 돌아옵니다. 기술력도 있으면서 모범이 되는 기업으로 만들고 싶어요.” 박 사장의 다짐이다.
성남/최혜정 기자 id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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