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미안을 사랑하는 모임’ 대표인 이경택 전 삼성물산 개발사업본부장. 김경호 선임기자 jijae2hani.co.kr
“삼성래미안을 삼성물산에서 분사해서, 종업원이 주주인 사회적 기업으로 탈바꿈시켜야 합니다.”
삼성물산 주택부문에서 근무했거나 근무 중인 전현직 임직원들이 10일 ‘래미안을 사랑하는 모임’(래사모)을 출범시켰다. 래사모의 대표로 선임된 이경택 전 삼성물산 개발사업본부장은 11알 “삼성물산 건설분야의 주택·건축·토목·플랜트 중에서 주택만 별도회사로 분리해서 종업원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것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분사된 삼성레미안(가칭)은 자본금이 2천억원 규모로, 임직원이 지분 20%로 최대주주로 나서고, 나머지는 삼성과 외부투자자가 참여하는 방안을 구상 중이다. 이 대표는 “800여명 직원이 1인당 5천만원씩 출자하면 지분 확보는 충분하다”고 말했다.
전현직 임직원들의 반응은 호의적이다. 이 대표는 “사내 여론을 알아보니 임직원 800여명 중에서 대다수가 긍정적”이라며 “퇴직한 임직원도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주고 있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래사모에는 건설사 대표나 임원을 맡고 있는 퇴직 인사들이 상당수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삼성물산은 1998년 외환위기 때 주택부문에서 2개사를 분사한 전력이 있다. 그 가운데 삼성홈이엔씨는 지금도 건재하다.
이 대표는 “삼성물산 주택부문은 2013년 과천과 서울 반포 아파트 재건축사업을 끝으로 신규 수주가 사실상 중단되면서 남은 공사물량이 30조원에서 9조원으로 크게 줄었다”면서 “잔여 공사 마무리 기간 4년, 이후 아파트 애프터서비스 의무기간 3년을 합쳐서 7년 뒤에는 사실상 주택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주택사업 임직원도 1300명에서 800명으로 크게 줄었고, 핵심인력의 이탈이 심각하다고 덧붙였다.
삼성물산 주택부문은 그동안 매각설이 끊이지 않으면서 구체적인 인수후보 기업들의 이름이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최근 사무실을 서울 강동구 상일동의 삼성엔지니어링 사옥으로 옮기면서 매각이 실패할 경우 합병을 추진한 뒤 사업을 정리·축소하려는 포석이라는 분석이 많아 내부 불안이 높아지고 있다. 래미안이 삼성에서 ‘찬밥’이 된 것은 건설업계의 고질적인 부패 관행과 민원에 대한 부담이 크고, 매출은 수조원대에 달하지만 이익은 1천억~2천억원에 그치는 등 여러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래사모는 국가고객만족도(
NCSI) 아파트부문에서 20년 연속 1위를 차지한 래미안 브랜드의 저력을 자신하고 있다. 이 대표는 “래미안 아파트는 애니콜 휴대폰과 함께 완성품에서 삼성을 대표하는 브랜드”라면서 “래미안은 1999년 국내 처음으로 아파트 단지에 광케이블을 깔아 초고속인터넷 시대를 열고, 2005년에는 처음으로 홈 오토메이션을 구현하는 등 5천년 온돌문화에 전자통신(IT)을 입힌 혁신 브랜드”라고 강한 애착을 보였다. 국내 첫 아파트 품질보증서 도입, 애프터서비스 제도 실시, 주택용 빌트인 가전 채택 등도 래미안의 ‘혁신 유전자(DNA)’ 성과로 꼽힌다.
래사모는 분사가 이뤄지면 주택시장의 품질·기술 경쟁을 선도한다는 계획이다. 이 대표는 “다른 건설사처럼 아파트 수주를 위해 높은 분양가와 거액의 이주비를 내거는 대신 품질과 기술로 승부하는 정도경영으로 주택시장 정상화를 선도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구체적인 예로 “인공지능(AI)과 음성인식 등 4차산업혁명 관련 기술, 블록체인을 활용한 보안시스템, 고령화 추세에 맞는 친환경 소재를 적극 도입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래사모는 단순히 이윤만을 추구하는 대신 사회 기여를 중시하는 사회적 기업을 추구할 계획이다. 이 대표는 “우리나라의 임대주택 비중은 20% 이하로 경제협력개발기구의 35%보다 훨씬 낮다”면서 “정부의 주택시장 안정화 노력이 성공하려면 임대주택을 늘려야 하는데, 래미안이 품질 좋은 임대주택 공급에 앞장서 20~30대 은층이 ‘집이 없어서 결혼을 못한다’는 말이 안나오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또 “회사의 시공 이익률을 기존 건설사보다 훨씬 적은 5% 수준으로 낮추고, 이익금의 3분의 2는 직원과 협력업체의 신기술 연구개발에 투입해 주택시장 혁신을 선도하겠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올해 여름을 넘기기 전에 분사가 이뤄지기를 기대한다”며 적극적인 모습이다. 또 “회사가 자립할 때까지 삼성이 지분 참여 뿐만 아니라 적극적인 협력을 하는게 중요하다”면서 “남은 시공물량은 소비자들이 삼성을 보고 사업자로 선정한 것이기 때문에 분사 이후에도 삼성과의 협력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래미안의 분사는 본사, 협력업체 700여개, 20여개 현장의 노동자를 모두 합친 2만여개의 일자리를 유지·확대할 수 있는 방안”이라며 “최근 삼성이 어려움을 겪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인데, 래미안이 국민기업으로 거듭나 사회의 박수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삼성물산은 이에 대해 “주택사업을 외부에 매각하거나 축소할 계획은 없다”고 사업구조 개편을 부인했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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