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국민참여예산 참여 4인
“강원랜드 채용비리를 뉴스로 보면서 인공지능을 활용해 채용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면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시각디자이너인 류재필(35)씨는 인공지능과 메신저 기능을 결합한 챗봇(chatbot)을 활용하면 지원자가 채용 기준과 지원 현황, 질문·답변, 채점 결과 등을 빠르고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챗봇이란 로봇과 채팅의 합성어로 인공지능이 메신저로 대화하는 것이다. 2016년 한 박람회에서 챗봇 기술을 처음 알게 된 류씨는 공공기관 채용비리를 보며 일자리 서비스에 적용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지원자가 스마트폰으로 채팅하듯 질문하면 챗봇이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답변해주는 거죠. 24시간 365일 일자리 상담이 가능하고, 거짓 정보는 챗봇이 필터링해 ‘채용 감시관’ 역할까지 할 수 있잖아요. 인건비도 줄이고 채용심사의 투명성과 공정성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류씨의 아이디어는 올해 ‘국민참여예산’ 시범사업으로 선정돼 정부 예산 14억4500만원이 책정됐다.
정부는 국민이 직접 제안한 국민참여예산 제도를 올해 시범 도입해 6개 사업에 예산 422억원을 집행 중이다. 국민참여예산이란 국민이 직접 예산을 ‘제안’하고 ‘심사’해 ‘결정’하는 제도다. 이 제도는 1989년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리시에서 처음 시작돼, 현재는 유럽의 여러 도시와 캐나다 토론토, 미국 시카고·뉴욕 등으로 퍼졌다. 우리나라에서는 2003년 행정안전부 지침에 따라 지방자치단체가 주민참여형 예산편성제도를 잇달아 도입했고,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때 재정의 민주성과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해 국가예산에도 국민참여를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박지훈 기획재정부 참여예산과장은 “기존에 정부에서 추진하지 않았던 사업 중에서 특정 단체나 지역, 개인을 지원하지 않는 제안들을 국민참여예산 사업으로 선정한다”고 설명했다.
초등학교 6학년과 7살 아이를 키우는 ‘직장맘’ 김묘정(41)씨는 어린이집 등·하원 자동 알림 서비스 사업을 제안했다. “통원 차량에서 어린아이가 잠들고 갇히는 사고가 자주 일어나잖아요. 등·하원을 알려주는 알람 서비스가 있으면 엄마가 어린이집에 전화해 사고를 막을 수 있었을 텐데, 너무 안타깝더라고요.” 김씨는 아이가 어린이집을 오갈 때 부모에게 자동으로 문자를 전송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방법은 아이 가방에 단말기를 달고 어린이집 현관에 센서를 설치하는 것이다. 일부 초등학교에선 이미 운영하는 시스템이다. 정부는 올해부터 모바일 출석부를 활용해 어린이집 등·하원 때 부모에게 알림 서비스를 제공하고 안심보육환경을 조성하는 데 7억원을 쓰기로 했다. 김씨는 “내 아이디어가 정부 정책이 될 수 있다는 걸 경험하니까 실생활에서 더 고칠 게 없을까 자꾸 찾아보게 된다”고 했다.
어린이집 등하원 자동문자 7억
AI챗봇 일자리 상담 14억
중소기업 원격근무 지원 20억도 “평소 생각 몇 자 보냈는데
정부 정책이 되다니… 채택 전화 왔을 땐
보이스피싱인가 싶었다 실생활서 더 고칠 게 없을까
자꾸 찾아보게 돼” 확대도입 결정한 기재부
한달간 쏟아진 1206건 심사중 정보기술(IT)업계에서 10년간 일해온 권아무개(33)씨는 출퇴근 시간 꽉 막힌 도로에서 재택·원격 근무 활성화 방안을 떠올렸다. “급한 문제가 생기면 집에서 회사 전산시스템으로 접속해 일할 때가 있잖아요. 인력을 구하기 힘든 중소기업도 재택·원격 인프라를 잘 구축하면 출퇴근에서 자유롭고 싶은 사람들이 몰려들지 않을까 싶었어요.” 대·중소기업 간 인프라 격차가 문제라고 판단한 권씨는 중소·중견기업에 재택·원격 근무 인프라를 정부가 지원·관리해보자고 제안했다. 정부는 올해 예산 20억원을 투입해 중견·중소기업에 보안시스템, 그룹웨어 개발 등을 지원하고, 원격근무용 책상·의자 등도 마련해주기로 했다. 그는 “기재부가 내 아이디어를 예산으로 반영한다고 전화했을 때 혹시 ‘보이스피싱’이 아닌가 싶었다”며 “평소 생각을 몇 자 적어서 냈는데 정책이 됐다니, 진짜로 소통하는구나 했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참여예산이) 눈먼 돈이 되지 않고 필요한 사람들이 실질적인 혜택을 얻는 정책으로 발전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올해 국민참여예산 가운데 가장 많은 액수가 책정된 ‘여성 안심용 임대주택 지원사업’(356억원)을 제안한 40대 ㄱ씨도 평소 생각을 제안서에 담았다. “중장년층 1인 가구가 늘어나는데 저소득층이 많아요. 특히 여성은 월급이 적어서 주거비 부담이 크잖아요. 새로 짓기는 어려우니까 비어 있는 원룸, 오피스텔을 활용하면 어떨까 싶었죠.” 정부는 역세권 등 교통이 편리한 지역의 원룸과 오피스텔 등을 매입해 저소득 1인 여성가구 전용 임대주택으로 공급하기로 했다. 이 밖에도 농촌 지역 일손부족 해소 사업(24억원), 농어촌 폐형광등 및 폐건전지 수거함(4800만원) 등이 올해 국민참여예산 시범사업에 포함됐다. 박지훈 참여예산과장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참신한 생활밀착형 아이디어가 많았다”며 “국민의 눈높이와 다양한 관점을 들여다볼 수 있어 제안서를 꼼꼼히 검토한다”고 말했다. 기재부는 내년부터 국민참여예산 사업을 확대 도입하기로 결정하고, 지난달 15일부터 한 달간 1206건의 국민 아이디어를 접수했다. 이 제안 사업들은 중앙정부 사업으로 적격성을 갖췄는지 심사(5월)를 거쳐 예산 국민참여단 논의(6~7월)와 사업선호도 조사(7월) 등을 한 뒤 내년 예산안에 포함될지 최종 결정된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AI챗봇 일자리 상담 14억
중소기업 원격근무 지원 20억도 “평소 생각 몇 자 보냈는데
정부 정책이 되다니… 채택 전화 왔을 땐
보이스피싱인가 싶었다 실생활서 더 고칠 게 없을까
자꾸 찾아보게 돼” 확대도입 결정한 기재부
한달간 쏟아진 1206건 심사중 정보기술(IT)업계에서 10년간 일해온 권아무개(33)씨는 출퇴근 시간 꽉 막힌 도로에서 재택·원격 근무 활성화 방안을 떠올렸다. “급한 문제가 생기면 집에서 회사 전산시스템으로 접속해 일할 때가 있잖아요. 인력을 구하기 힘든 중소기업도 재택·원격 인프라를 잘 구축하면 출퇴근에서 자유롭고 싶은 사람들이 몰려들지 않을까 싶었어요.” 대·중소기업 간 인프라 격차가 문제라고 판단한 권씨는 중소·중견기업에 재택·원격 근무 인프라를 정부가 지원·관리해보자고 제안했다. 정부는 올해 예산 20억원을 투입해 중견·중소기업에 보안시스템, 그룹웨어 개발 등을 지원하고, 원격근무용 책상·의자 등도 마련해주기로 했다. 그는 “기재부가 내 아이디어를 예산으로 반영한다고 전화했을 때 혹시 ‘보이스피싱’이 아닌가 싶었다”며 “평소 생각을 몇 자 적어서 냈는데 정책이 됐다니, 진짜로 소통하는구나 했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참여예산이) 눈먼 돈이 되지 않고 필요한 사람들이 실질적인 혜택을 얻는 정책으로 발전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올해 국민참여예산 가운데 가장 많은 액수가 책정된 ‘여성 안심용 임대주택 지원사업’(356억원)을 제안한 40대 ㄱ씨도 평소 생각을 제안서에 담았다. “중장년층 1인 가구가 늘어나는데 저소득층이 많아요. 특히 여성은 월급이 적어서 주거비 부담이 크잖아요. 새로 짓기는 어려우니까 비어 있는 원룸, 오피스텔을 활용하면 어떨까 싶었죠.” 정부는 역세권 등 교통이 편리한 지역의 원룸과 오피스텔 등을 매입해 저소득 1인 여성가구 전용 임대주택으로 공급하기로 했다. 이 밖에도 농촌 지역 일손부족 해소 사업(24억원), 농어촌 폐형광등 및 폐건전지 수거함(4800만원) 등이 올해 국민참여예산 시범사업에 포함됐다. 박지훈 참여예산과장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참신한 생활밀착형 아이디어가 많았다”며 “국민의 눈높이와 다양한 관점을 들여다볼 수 있어 제안서를 꼼꼼히 검토한다”고 말했다. 기재부는 내년부터 국민참여예산 사업을 확대 도입하기로 결정하고, 지난달 15일부터 한 달간 1206건의 국민 아이디어를 접수했다. 이 제안 사업들은 중앙정부 사업으로 적격성을 갖췄는지 심사(5월)를 거쳐 예산 국민참여단 논의(6~7월)와 사업선호도 조사(7월) 등을 한 뒤 내년 예산안에 포함될지 최종 결정된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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