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한국 정부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는 취지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상의 투자자-국가분쟁해결(ISDS)을 추진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1일 정부 관계 부처에 따르면, 엘리엇은 지난달 13일 법무부에 한-미 자유무역협정 투자챕터(11조)의 투자자-국가분쟁해결 조항에 근거해 ‘중재의향서’를 제출했다. 정부 관계자는 “미국 투자자인 엘리엇이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해당 조항에 근거해 법무부에 중재의향서를 제출한 것이 맞다”며 “관련 부처들 사이의 내부검토를 거쳐 한-미 자유무역협정문의 중재·제소 투명공개 원칙에 따라 중재의향서 제기 내용을 정부기관 누리집 등에 조만간 공개할 예정으로 안다”고 말했다. 중재의향서는 투자자가 미국 워싱턴에 있는, 세계은행(WB)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상대 정부를 공식 제소하기 전에 중재 의사가 있는지 타진하는 절차다. 투자자-국가분쟁해결은 투자 유치국의 정책·제도가 협정 의무를 위반해 외국기업이나 투자자가 피해를 입을 경우 투자 유치국 정부를 상대로 국제중재에 나서 직접 손해배상을 요구할 수 있는 제도다.
이 중재의향서에는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당시 정부가 국민연금을 통해 합병에 부당하게 개입한 탓에 삼성물산 주주로서 합병에 반대한 자신들이 손해를 봤다는 취지가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2015년 당시 엘리엇은 합병 결정을 하지 못하도록 삼성물산 주주총회 결의를 금지해달라고 국내 법원에 가처분 신청 등을 냈지만 모두 기각된 바 있다. 중재의향서에 ‘우리 정부의 부당한 개입’이 명시돼 있는지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중재의향서는 통상 1~2장짜리로 아주 간략하게 돼 있다. 엘리엇이 향후 전개될 피제소자(정부) 쪽과의 양자 중재 협상을 의식해 구체적인 클레임 내용은 의향서에 의도적으로 밝히지 않은 것으로 안다”며 “아마도 한-미 자유무역협정 해당 챕터의 조항 가운데 내국민대우(NT) 조항(11.3조) 및 최소대우기준(공정공평대우) 조항(11.5조) 위반이라는 내용만을 명시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에는 공식 중재 제소 이전에 중재의향서 제출일로부터 최소 90일 동안 양자가 협의 기간을 갖도록 돼 있다. 90일은 최소 기간인 만큼 앞으로 엘리엇과 우리 정부 사이의 협의가 석달 넘게 진행될 수도 있다. 지난해 10월 한 미국 시민권자가 서울시의 도시재개발사업 제도로 자신의 집이 부당하게 수용됐다면서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근거해 중재의향서를 제기한 사건의 경우 아직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 정식 제소까지 이르지는 않았으며, 당사자와 서울시 사이의 협의가 지금도 진행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