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계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해 한국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지난달 13일 우리 정부를 상대로 투자자-국가분쟁해결(ISDS) 전 단계인 중재의향서를 법무부에 제출했다. 이에 따라 지난 3월28일 한·미 양국이 원칙적 협상타결을 본 한-미 FTA 개정 협정문에 ISDS 관련 조항이 어떤 문구로 어떻게 개선돼 반영될 것인지 관심을 끈다. 통상교섭본부는 이번 협정 개정 협상에서 우리 쪽이 얻어낸 주요 성과로 ‘ISDS 제도 개선’을 줄곧 꼽아왔다.
한·미 통상당국은 지난 3월말부터 ISDS를 비롯한 협상타결 내용을 담은 개정 협정문의 각종 문구를 둘러싼 협의에 들어갔으며, 최근 개정 문구 협의를 최종 마무리짓고 마지막 절차로 문안별 내부 법률 검토작업을 벌이고 있다. ISDS 개선과 관련해 지난 3월28일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의 개정협상 타결 공동선언문은 “개정된 합의는 투자 관련 이슈를 다루고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투자자 분쟁과 관련된 ISDS 조항의 수정·개선이 포함돼 있다는 뜻이다. ISDS는 한-미 자유무역협정문 제11장 투자챕터 안에 약 30쪽에 걸쳐 담겨져 있다.
앞서 3월26일 김현종 본부장은 협정 타결을 브리핑하는 자리에서 “우리 쪽 관심사항으로 ISDS 관련 투자자 소송 남용 방지 및 정부의 정당한 정책권한 관련 요소를 협정문 개정을 통해 반영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국에 투자한 미국 투자자·자본이 이 제도를 남용해 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차단하고, 이 제도로 인해 한국 정부의 정당한 정책·주권 권한이 침해받지 않도록 하는 내용을 협정문에 반영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개선 내용은 아직 알려진 바 없다. 다만 ISDS 개선은 미국 국내법의 변경을 요구하지 않는 선에서 수정·개선하는 쪽으로 관련 조항 개정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진다. 통상 당국자는 지난 1~3차 한-미 자유무역협정 개정협상 과정에서 “미국 국내법의 변경을 요구하지 않는 사안은 무역촉진권한(TPA·오는 6월30일 만료 예정)이 없이도 개정할 수 있으며, ISDS도 미국 국내법을 변경하지 않으면서도 개정할 수 있는 것이 상당히 많다”고 말했다. TPA는 미국 의회가 행정부에 무역협정 체결·수정 권한을 한시적으로 위임하는 제도로, 한-미 FTA 개정 협상은 트럼프 행정부가 TPA 절차없이 진행했다.
특히 이 당국자는 “한국 정부를 상대로 한 ISDS 제소가 지난 10여년간 3건이 이뤄졌고, 전세계적으로 투자기업의 정부 제소 건수가 증가하는 흐름이 있기 때문에 이번 개정협상에서 ISDS 개선을 우리 쪽 관심사항으로 요구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한국 수입차 시장을 미국에 어느 정도 내어주고 그 대가로 우리가 ISDS 개선을 얻어내는 협상구도가 된다하더라도 금전적 이해득실에서 우리가 손해보는 딜은 아니라는 얘기를 내비치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지난 개정협상 과정에서 미국 쪽은 기존 한-미FTA 협정문 상의 ISDS 관련 조항을 그대로 유지·방어하겠다는 태도가 아니라 오히려 ISDS 의제에는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으며, 우리 쪽의 수정·개정 요구를 강하게 반대하지도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엘리엇의 이번 ISDS 추진에서 쟁점은 한-미FTA 협정문상의 내국인 대우(제11.3조)와 대우의 최소기준(11.5조) 위반 여부가 될 공산이 크다. 내국인 대우 조항은 “각 당사국은 자국 영역내 투자의 설립·인수·확장·경영·영업·운영과 매각 또는 그밖의 처분에 대하여 동종의 상황에서 자국 투자자에게 부여하는 것보다 불리하지 아니한 대우를 다른 당사국의 투자자에게 부여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자국 투자자(삼성)와 엘리엇 사이에 한국 정부가 차별적 대우를 했느냐 여부를 다투게 될 것이란 얘기다. 대우의 최소기준 조항은 “각 당사국은 공정하고 공평한 대우와 충분한 보호 및 안전을 포함하여, 국제관습법에 따른 대우를 적용 대상 투자에 부여한다”면서, 대우의 최소기준은 “외국인의 대우에 대한 국제관습법상 최소기준”이라고 정하고 있다. 또 해당 부속서에서 “국제관습법은 ‘일반적이고 일관된 국가관행으로부터 결과된 것’“이며 “최소기준은 ‘외국인의 경제적 권리와 이익을 보호하는 모든 국제관습법상 원칙’을 지칭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 정부의 부당한 개입이 엘리엇의 경제적 권리·이익 관련 국제관습법상의 최소기준 원칙을 지켰는지 여부를 놓고 엘리엇과 우리 정부가 서로 법적 공방을 벌이게 될 공산이 크다.
엘리엇의 중재의향서는 법무부 등 관계부처가 조만간 공개할 것으로 보인다. 한-미FTA 협정문의 ‘중재절차의 투명성’(제 11.21조) 조항은 “피청구국은 중재의향서를 수령받은 후 신속하게 비분쟁당사국에 송부하고 대중에게 이용가능하게 한다”고 정하고 있다. 여기서 비분쟁당사국은 투자분쟁의 당사자(엘리엇)가 아닌 당사국(미국)이 된다. 중재의향서에는 위반되었다고 주장되는 한-미FTA 협정문 규정, 청구의 법적·사실적 근거, 구하는 구제조처와 청구하는 손해의 대략적 금액을 명시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재계에서는 엘리엇의 손해배상 요구액이 수천억원에 달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 지분 약 7%를 보유한 주요 주주였는데, 당시 합병비율은 삼성물산 1주당 제일모직 0.35주로 제시됐으나 의결권 자문사인 ISS는 적정 합병비율을 1(제일모직)대 0.95(삼성물산)라고 평가했다. 이를 토대로 계산한 엘리엇의 손해액은 최대 3천억원대에 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 주주 입장에서 합병비율이 불공정하다며 반대 의사를 공식 표명하고 법정 안팎에서 공방을 벌인 바 있다.
한-미FTA 협정문은 공식 ISDS 제소 이전에 중재의향서를 제출한 날로부터 최소 90일 동안 양자가 협의 기간을 갖도록 하고 있다. 90일은 최소 기간인 만큼 엘리엇과 우리 정부 사이의 협의가 석달 넘게 진행될 수도 있다. 지난해 10월 한 미국 시민권자가 서울시의 도시재개발사업 제도로 자신의 집이 부당하게 수용됐다며 한-미FTA에 근거해 중재의향서를 제기한 사건의 경우, 아직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 정식 제소까지 이르지는 않았고, 당사자와 서울시 사이의 협의가 지금도 진행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정부는 2012년 3월 한-미FTA 협정 발효 이후 외환은행 매각 관련 사모펀드 론스타,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네덜란드 자회사 하노칼, 이란 엔텍합그룹의 대주주 다야니 등으로부터 총 3건의 정식 ISDS 제기를 당한 바 있다. 미국 시민권자의 주택 수용 관련 중재의향서까지 포함하면 총 4건이다. 엘리엇이 정식 ISDS 절차에 나설 경우 우리 정부가 5번째로 대응에 나서야 하는 ISDS 사례가 된다. 손해배상 청구액이 5조원대 규모에 달했던 론스타 ISDS는 2016년 최종변론을 끝내고 중재판정만 남겨놓고 있다. 하노칼은 2016년 청구를 취하했으며, 다야니 사건은 진행 중이다.
조계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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