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설립된 에버그린 세탁 협동조합은 클리블랜드 안에서 실업 및 빈곤 문제가 심각한 지역 주민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위키피디아
지난 미국 대통령선거의 승패를 가른 것은 이른바 ‘러스트벨트’(제조업 쇠락지대)의 숨어 있던 표였다. 디트로이트의 자동차공장 등 한때 도시를 먹여 살리던 큰 공장들이 문을 닫은 뒤 실업자가 늘어나고 경제가 쇠퇴한 지역의 숨은 표심이 ‘괴짜’ 도널드 트럼프 후보에게 향했다.
한국에서도 ‘러스트벨트’가 얘기되고 있다. 조선, 자동차 등 주력 산업의 경쟁력이 쇠약해지며 지역 경제가 휘청이는 지역이 늘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 초 주력 산업 쇠퇴로 어려움에 부닥친 전북 군산, 경남 통영, 고성, 거제, 창원 진해구, 울산 동구 등 6개 지역을 고용위기 지역으로 지정했다. 이들 지역엔 3조9천억원의 추가경정예산 중에서 1조원을 떼어 구조조정을 지원하게 된다. 2007년 이 제도(고용개발촉진지역)가 도입된 이래 한꺼번에 2곳 이상이 고용위기 지역으로 지정된 것은 처음이다.
산업 경쟁력은 시간에 따라 부침을 겪게 된다. 동아시아 3국만 놓고 봐도 조선, 전자 등 주요 산업의 경쟁 우위가 대략 20년의 시차를 두고 일본에서 한국을 거쳐 중국으로 옮겨가는 모양새를 보인다. 해당 산업의 중심지였던 지역은 불가피하게 경제적 타격을 입게 되는데, 지역의 노력에 따라서는 고생을 단기에 끝내고 지역 경제와 환경을 새롭게 탈바꿈하는 전기로 삼을 수 있다.
여기서 산업 공동화가 발생한 지역의 접근법과 전략이 중요하다. 보통 산업이 쇠퇴하면 상실감과 불안감이 높아지면서 그에 못지않은 큰 산업 유치에 매달리게 된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단체장 후보들이 대기업 공장 유치 같은 공약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인건비가 싸고 시장 여건이 훨씬 좋은 중국, 동남아가 있는 마당에 국내에 대규모 공장을 지을 수 있는 대기업이나 외국 기업은 한정돼 있다. 설사 투자를 한다 해도 고용이나 세수에 큰 도움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이른바 ‘낙수효과’에 기대는 것이 한계에 이른 셈이다.
그래서 지역의 자생력과 자발성을 통해 지속가능한 성장을 일궈가는 접근법이 부각되고 있다.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 지역 내 ‘앵커’ 조직(대학, 병원, 공공기관)과 협동조합을 연계해 지역 경제를 회복시킨 접근법도 그중 하나다. 클리블랜드 역시 1980~90년대 산업 공동화로 위기를 맞았다. 2005년 클리블랜드재단이 중심이 돼 지역 내 대학, 병원 등 다양한 기관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만들었다. 여기서 주목한 것은 지역 내 대학과 병원, 공공기관 같은 지역 내 ‘앵커’ 조직의 수요가 지역 내 공급자에게 돌아간다면 지역 경제 회생의 실마리가 될 것이란 점이었다. 한 조사에서 이들 조직이 한해 10억달러(약 1조700억원) 이상을 구매하지만 절반 이상은 지역 외부에서 조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기관으로부터 조달 약속을 받고, 세탁서비스 등 3개 영역에서 노동자협동조합 방식으로 회사를 만들었다. 이는 소유권의 변화가 ‘낙수효과’의 실패를 벗어나는 방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009년 설립된 에버그린 세탁협동조합도 그중 하나인데, 이 협동조합은 클리블랜드 안에서 실업 및 빈곤 문제가 심각한 지역 주민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친환경 방식으로 세탁 서비스의 모범을 보이며 에버그린 세탁협동조합이 성공하자 여러 분야의 노동자협동조합 결성으로 이어져 현재는 그 수가 10여개까지 늘어났다. 지역 내 ‘앵커’ 조직이 지역의 사회적 경제 조직과 조달계약을 통해 경제를 살려가는 ‘클리블랜드 모델’은 영국 랭커셔의 주도인 프레스턴에도 적용되는 등 여러 나라로 확산하는 중이다.
전은호 ‘나눔과 미래’ 시민자산화 사업팀장은 “클리블랜드 모델은 기업을 앞에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자원에서 출발하고, 지역 내 여러 행위자가 모여 실행 주체를 만들며, 노동자협동조합 등 (공급 조직의) 소유권 다양화를 추구한 것이 특징”이라며 “지역 자원의 선순환을 이루어내는 구체적인 전략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bh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