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수출액 50만달러 이상인 1천여개 수출기업 셋 중 하나꼴로 ‘자사 제품경쟁력 상실’ 및 ‘자사 제품 선호도 감소’를 올해 수출 부진의 주요 요인으로 꼽았다. 4월 수출 증가율(-1.5%)이 17개월 만에 꺾이자 정부는 자동차·조선업 구조조정과 불황 탓이라고 분석하지만, 특정 업종이나 일시적·경기적 요인을 넘어 제조업 전반의 수출제품 자체에 ‘구조적 경고등’이 들어왔다는 사실을 현장의 수출기업 스스로 고백한 셈이다. 보호무역·통상마찰 등 외부적 요인뿐 아니라 수출기업 ‘제품 경쟁력’ 자체의 이상 징후에 대한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다.
한국무역협회가 3일 발표한 ‘2018년 수출기업 해외시장 경기전망조사’를 보면, 주요 수출기업들은 올해 해외시장 수출 부진을 전망하는 요인으로 ‘보호무역주의 등 통상압박 심화’(39.0%)에 이어 ‘자사 제품경쟁력 상실’(21.1%), ‘자사 제품 선호도 감소’(10.5%)를 꼽았다. 수출제품 자체의 문제가 31.6%에 이른 셈이다. 이번 조사는 2017년 수출실적 50만달러 이상인 수출기업 총 944곳(대기업 6.9%, 중견기업 20.2%, 중소기업 72.9%)을 대상으로 지난 4월5~16일에 전자우편 온라인 설문으로 이뤄졌다. 내부 애로사항으로는 ‘신제품 부족’(18.4%), ‘기술력 부족’(11.5%), ‘현지시장 정보 부족’(17.8%), ‘자금 부족’(16.7%)을 꼽았다. 수출에서 자체 경쟁력(신제품·기술력)에 애로가 있다는 응답이 29.9%에 이른 셈이다. 특히 반도체·자동차·전기전자·무선통신기기·화학·가전 등 주력 수출품목 모두 수출 애로 요인으로 현지시장·자금·마케팅·환율리스크보다 ‘신제품 부족’(19~26%)을 더 많이 꼽았다.
수출제품 경쟁력에서의 ‘고장 신호’는 무역협회가 수출기업 2천여곳을 대상으로 조사하는 수출산업경기전망지수(EBSI)에서도 잘 나타난다. 이 지수는 수출 여건이 직전 분기에 견줘 개선(악화)될 것으로 기대하면 100 이상(이하)의 값을 갖는다. 올 2분기 조사(3월5~15일)를 보면, 총 10개의 수출전망지수 항목 가운데 해외 수입상의 수입 문의를 나타내는 ‘수출 상담’(111.2)과 ‘수출 단가’(100.6)에서만 100을 넘었을 뿐 수출 계약(95.7), 수출 채산성(80.3), 설비가동률(86.5), 수출상품 제조원가(92.2) 등은 모두 100을 밑돌았다. 해외시장 경기 호전을 반영하는 두 지표(수출 상담, 수출 단가)를 빼고 나머지는 모두 ‘악화’를 예상한 것이다.
수출 채산성은 작년 3분기부터 100 이하(94.9~98.3)를 맴돌더니 올 2분기에는 급기야 80.3으로 급락했다. 수출 채산성 결정요인에는 환율·원재료 가격 등 외부 변수뿐 아니라 제품 기술력을 반영하는 생산효율·원가 같은 내부 경쟁력도 포함된다. 설비가동률 및 수출계약 전망은 작년 2분기부터 4분기 연속 100을 웃돌며 ‘호전’을 예상했으나 올 2분기에 갑작스럽게 86.5(설비가동률), 95.7(수출계약)로 내려앉았다. 수출기업 스스로 경고등을 체감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종합 수출전망지수는 작년 3분기(116.6)에 정점을 찍은 뒤 4분기(100.3)에 다시 크게 내려앉았다. 이어 올 1분기(100.8)와 2분기(102.8)까지, 비록 악화는 면했으나 둔화 조짐이 확연하다.
세계 물가 상승을 반영한 수출제품단가(명목 수출)를 제외하고 수출물량(실질 수출) 증감률만 보면 작년 4분기 -0.8%, 올 2월 -2.6%, 3월 -9.6%를 기록했다. 오랜 상승세가 꺾이면서 예사롭지 않은 지난 4월 수출도 이런 구조적 변화상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반도체 활황만 빼고 나면 구조조정과 깊은 업황 부진에 빠져 있는 자동차·선박뿐 아니라 디스플레이 수출도 작년 12월부터 올 4월까지 매달 -7.6~-22.4%(전년 동월 대비)를 기록중이다. 스마트폰 등 무선통신기기 수출도 작년 10월부터 4월까지 달마다 -10.1~-40.7%씩 대폭 감소하며 고전중이고, 같은 기간 가전 역시 -8.9~-41.8%로 월별로 마이너스 수출 추세가 뚜렷하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수출경기가 반도체 등 일부 품목에 집중되는 경향이고, 수출물량보다는 수출단가 상승에 의존하는 측면도 커 불안 요인”이라고 진단했다.
통상당국은 올 초에 연간 수출증가율 목표치를 ‘4% 이상’으로 잡으면서 “보호무역 확산, 해외생산 확대 등을 감안할 때 매우 도전적인 수치”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번 무역협회 조사에서 수출 대기업의 절반 이상(57.5%), 중소·중견기업까지 합친 전체 수출기업의 40%가 올해 수출증가율을 ‘3% 이하’로 내다봤다. 수출경기를 버팀목 삼은 경기 회복·확장국면이 약 1년간의 짧은 상승기를 끝내고 올 하반기부터 수축·하강국면에 진입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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