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갤럭시S9’ 출고가를 출시한 지 두달도 지나지 않아 7만7천원이나 내렸다. ‘프리미엄 스마트폰’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고가로 책정했다가 판매가 부진하자 가격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먼저 산 소비자들을 ‘호갱’(호구 고객)으로 만들었다는 불만과 함께 스마트폰 출고가 거품을 걷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9일 삼성전자와 이동통신사 등에 따르면, 갤럭시S9의 세 모델 중 최상급인 갤럭시S9플러스 256GB의 출고가가 지난 5일 115만5000원에서 107만8000원으로 7만7천원 내렸다. 삼성전자는 갤럭시S9을 3월16일 출시했다. 프리미엄 스마트폰 신제품 가격이 출시 두 달도 안된 시점에 내린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판매가 안돼 값을 내린 게 아니다. 지금도 잘 팔리고 있다. 다만 통신사에서 가격 인하 요구가 있었고, 더 잘 팔리도록 우리가 이를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잘 팔리는 제품을 더 잘 팔기 위해 값을 내렸다는 것이다.
이통사 쪽 설명은 다르다. 한 이통사 관계자는 “가장 비싼 갤럭시S9플러스 256GB가 잘 팔리지 않아 재고가 많이 쌓였다. 가격을 내려서라도 재고를 털고 가는 게 필요하다고 봤다”고 말했다. 실제 갤럭시S9 세 모델의 판매 비율은 4 대 4 대 2로 알려졌다. 가장 싼 95만원짜리 갤럭시S9이 전체 판매량의 40%를 차지하고, 중간 모델인 갤럭시S9플러스 64GB(105만원)가 40%, 가장 비싼 갤럭시S9플러스 256GB(115만원)가 20%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세 모델 중 갤럭시S9플러스 256GB의 재고량이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동통신 유통점들은 갤럭시S9플러스 256GB에 불법 추가 보조금까지 주는 등 재고 소진에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갤럭시S9플러스 256GB에 주는 보조금이 갤럭시S9플러스 64GB에 주는 것보다 4만~5만원 가량 많은데, 이렇게 되면 두 제품의 실구매 가격이 역전되는 현상이 벌어진다. 한 유통점 관계자는 “(회사) 정책적으로 갤럭시S9플러스 256GB에 지원금이 많이 나왔다”고 말했다.
갤럭시S9 가격 인하가 새 프리미엄 스마트폰 출시를 앞둔 엘지전자 견제용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엘지전자는 18일 새 프리미엄 스마트폰 ‘G7 싱큐’를 출시한다. 앞서 삼성전자는 지난해 3월 엘지전자가 ‘G6’를 출시할 때도 전년도에 출고한 갤럭시S7의 출고가를 낮춘 바 있다. 업계 관계자는 “갤럭시S9 판매 부진이 가장 큰 이유이고, 겸사겸사 엘지를 견제하기 위한 목적도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갤럭시S9의 가격 인하로 기존 출고가로 제품을 산 소비자만 억울하게 됐다는 불만이 나온다. 회원이 100만명을 넘는 한 스마트폰 온라인 모임에는 “3월 출시한 제품이고, 구입 2주도 안됐는데 가격이 내려갔다. 호갱이 돼 버렸다” 등의 글이 올라왔다.
100만원을 손쉽게 넘는 스마트폰 가격 거품을 걷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갤럭시S9은 3월 출시 때부터 가격 논란이 있었다. 전작인 갤럭시S8과 외형은 크게 달라진 게 없는데 가격이 2만~7만원 높아졌기 때문이다. 지난 2월 말 갤럭시S9을 본 황정환 엘지전자 부사장은 “앞에서 보면 (디자인이 전작과) 똑같다. 아마 (삼성은) 충분한 원가 경쟁력을 갖췄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안병도 아이티(IT) 평론가는 “신제품 가격을 출시 두 달 만에 7만원이나 내리는 게 가능하다면, 애초부터 가격에 거품이 끼어 있었던 것”이라며 “최근 커지는 스마트폰 가격 거품을 걷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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