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 2월22일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 기자실에서 공정거래법 법 집행 체계 개선 논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5월 새 정부 출범 뒤 첫번째 경제장관급 인사로 ‘재벌개혁 전도사’로 불리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을 지명했다. 역대 정부의 경제민주화 개혁 실패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로 해석됐다. 김 위원장은 ‘갑질 근절’을 경제민주화의 본령이라며 최우선 정책과제로 추진했다. “우리 경제 곳곳에 스며 있는 경제적 강자(갑)의 약자(을)에 대한 불공정행위를 바로잡는 노력을 통해 국민이 경제민주화가 내 생활과 직접 관련된 것이라고 느끼도록 해야 한다.” 공정위의 대표적인 갑질 근절 노력은 하도급·가맹·유통·대리점 등 4개 분야의 불공정거래 개선 종합대책이 꼽힌다. 주진형 전 더불어민주당 총선정책공약단 부단장은 이를 두고 “전략적으로 잘한 일”이라고 긍정 평가했다.
문재인 정부는 재벌개혁과 관련해 총수의 전횡 방지를 위한 소유지배 구조 개선과 총수일가 사익편취 및 부당내부거래 근절 등을 중점 추진했다. 하지만 갑질 근절에 비해 평가 점수는 상대적으로 박한 편이다.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는 “재벌개혁 속도가 너무 늦다”고 아쉬워했다. 참여연대·경제개혁연대 등 개혁적 시민단체도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는 재벌개혁이 우선순위에서 밀린 탓도 있지만, 정책 책임자인 김상조 위원장 특유의 ‘우보천리’(소걸음으로 천리를 간다)식 개혁 전략의 영향이 커 보인다. “취임 초기 ‘팔 비틀기 식’ 개혁은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실패한다. 임기 3년간 지속가능하고 예측가능한 방법으로, 세상을 조금씩 후퇴하지 않게 누적적으로 변화시키고 싶다.” 김 위원장은 이런 전략 아래 재벌의 자발적인 소유지배구조 개선을 촉구하는 이른바 ‘포지티브 캠페인’을 추진했다.
올해 들어서는 재벌개혁의 큰 틀을 유지하면서도 당근(포지티브 캠페인)과 채찍(조사와 제재)을 병행하는 전술적 변화를 보인다. 연초 이후 4개월 동안 재벌 총수 일가 사익편취 또는 부당지원 조사는 금호아시아나, 한진 등 모두 5건으로, 지난해 7개월간 실적(2건)을 뛰어넘었다. 순환출자와 일감 몰아주기 해소 등 소유지배구조 개선안을 내놓은 재벌은 현대차를 포함해 12개로 늘었다. 다만 재계 1위 삼성은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다. 그동안 재벌개혁이 지지부진하다는 지적을 받아온 금융당국의 발걸음도 빨라졌다. 금융위원회는 금융 비중이 큰 삼성·현대차·한화 등 7개 그룹을 대상으로 ‘금융그룹 통합감독 모범규준’(초안)을 내놓았다. 재벌 계열사간 출자와 내부거래로 인해 비금융 계열사의 위험이 금융 계열사로 전이되는 것을 막기 위한 제도로 핵심은 삼성이다. 삼성생명을 통해 삼성전자를 지배하는 구조를 바꾸라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정부는 총수 일가 사익편취 규제 강화 등이 포함된 공정거래법 개정과, 독립적 사외이사 선임 등 지배구조 개혁을 위한 상법 개정을 중점과제로 추진 중이다. 하지만 경제개혁연대의 위평량 연구위원은 “지난 1년간 재벌개혁 관련 핵심 법안의 제·개정은 거의 성과가 없다”고 지적했다. 자유한국당 등 야당의 반대가 큰 걸림돌이다. 문재인 정부는 개혁이 탄력을 받고 앞으로 치고 나갈지, 아니면 표류할지 갈림길에 선 셈이다. 박상인 서울대 교수는 “지방선거 이후 연말까지가 개혁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말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경제민주화가 이뤄져야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이 대기업에 정당한 대가를 요구할 수 있고, 성장 과실이 위에서 아래로 더 많이 내려올 수 있기 때문에, 경제민주화가 곧 성장 전략이라는 생각을 확고히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곽정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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