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지(LG)그룹이 구본무(73) 회장의 건강 악화를 이유로 4세 경영을 본격화했다.
엘지그룹 지주사인 ㈜엘지는 17일 오전 이사회를 열어 구광모(40) 엘지전자 비투비(B2B)사업본부 사업부장(상무)을 등기이사로 추천하기로 했다. 구 상무는 엘지그룹 3세 경영자인 구본무 회장의 아들이다. 엘지는 다음달 29일 임시 주주총회를 열어 구 상무를 등기이사로 최종 선임할 예정이다.
엘지는 구 상무의 등기이사 선임 배경에 대해 “후계 구도를 확실히 하는 작업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그룹의 ‘장자 승계’ 전통에 따라 경영권이 구본무 회장한테서 동생인 구본준 엘지 부회장을 거치지 않고 아들인 구 상무에게로 바로 넘어간다는 의미다. 엘지 관계자는 “구 상무가 등기이사로 선임된 것은 구 상무 중심의 경영 체제를 만들어 나간다는 의미”라며 “구본준 부회장은 시간이 좀 필요하겠지만 전통대로 따로 독립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구 상무는 올해 40살로, 숙부인 구 부회장이 잠시 경영권을 맡았다가 구 상무에게 넘길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다. 한 재계 관계자는 “엘지 경영권을 두고 말들이 많았는데, 이번 발표로 이런 불확실성이 사라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엘지가의 4세 승계가 급물살을 탄 것은 구 회장의 건강 악화 때문이다. 엘지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구본무 회장이 와병으로 이사회에서 역할을 수행하는 데 제약이 있었다”며 “이사회에서 오너 주주 대표가 참여하는 게 필요하다는 요구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룹 경영상 후계자가 필요했다는 뜻이다. 구 회장은 지난해 4월 뇌수술을 받았고, 올해 1월에도 한차례 입원했다. 지난달에는 상태가 나아져 대외활동을 계획하기도 했으나, 다시 급격히 나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구 상무가 경영권을 넘겨받더라도 그룹의 지배구조 등은 크게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엘지그룹은 2003년 일찌감치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는 등 지배구조를 비교적 깔끔하게 정리해 유지해왔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엘지그룹은 지주회사 체제여서 크게 바뀔 부분이 없다. 구 상무가 부친의 지주사 지분을 상속받을 경우 상속세만 잘 내면 된다”고 말했다. 현재 엘지그룹은 지주사인 엘지를 선두로 전자·화학·통신·서비스 분야의 자회사 수십곳을 거느리고 있다. 구 상무는 ㈜엘지의 3대 주주로 6.24%의 지분을 갖고 있고, 부친인 구 회장과 숙부인 구본준 부회장이 각각 11.28%와 7.72%를 보유한 1·2대 주주다.
구 상무가 지주사 등기이사로 선임된 뒤 어떤 직책을 맡게 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엘지그룹은 다음달 29일 임시 주주총회를 열어 구 상무를 등기이사로 확정하고 다시 이사회를 열어 그의 직책 등을 결정할 예정이다.
구 상무가 아직 경영 역량을 본격적으로 보여준 적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2006년 엘지전자 대리로 입사한 구 상무는 올해 초 엘지전자 비투비사업본부 상무로 승진했다. 2015년부터 지주사 상무를 맡은 적도 있지만 역시 두드러진 성과는 없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구 상무가 마흔살로 어리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한 약점은 성과를 보여준 적이 없다는 것”이라며 “당분간 경영 전면에 나서지 않고 수련 기간을 꽤 거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엘지 쪽은 “지주사에서 구 상무의 직책 등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며 “현재 6명의 부회장이 있는 등 전문경영인 체제가 잘 짜여 있어, 큰 문제 없이 그룹을 이끌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구 상무는 구 회장의 친아들이 아니라 그의 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아들이다. 아들이 없는 구 회장이 2004년 구 상무를 양자로 들였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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