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철강에 이어 미국시장에 수입되는 외국산 자동차에 대해서도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른 국가안보 영향 조사를 지시하자 우리 정부와 자동차업계는 민관합동 태스크포스를 전격 구성해 대응에 나섰다. 자동차 232조 수입규제 발동을 둘러싼 미국 안팎에서의 반발과 논란이 이어질 것으로 관측되는 가운데 ‘노회한 비즈니스 협상가’ 트럼프 대통령의 자동차 232조가 과연 무엇을 겨냥하고 있는지에 전세계의 이목이 쏠린다. 전세계 어느 나라도 결코 포기할 없는 ‘세계 1위 거대 수입시장’(미국시장)을 통상 압박공세의 무기로 앞세워 무역 상대국을 굴복시키는 ‘재미’를 철강에서 경험한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에 자동차에서도 232조 동원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4일 오후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서 미국 상무부의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른 자동차 수입의 안보 영향 조사 관련 민·관 간담회를 열고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긴급 회의에는 산업부, 현대·기아차, 한국지엠, 르노삼성, 쌍용차 등 완성차 5개사와 모비스 등 부품업계, 한국자동차산업협회 등이 참석했다. 회의에서 정부와 업계는 민관합동 태스크포스를 구성한 뒤 “국내 자동차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점검하고 미국내 관련 동향 모니터링 등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23일(현지시각) 수입산 자동차와 트럭, 부품 등에 대해 무역확장법 232조를 적용해 조사하는 방안을 상무부장관에 지시했다고 밝혔다. 무역협회는 “트럼프 대통령이 수입차에 대해 국가안보 영향을 조사하라는 정식 행정명령 서명문서를 상무부에 아직 내려보내지 않았으나, 상무부가 직권으로 조사 개시에 나설 수도 있는 만큼 조만간 상무부의 조사 개시가 미 연방관보에 게재되면서 본격 조사가 시작될 것같다”고 말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미국이 지난 3월 232조에 근거해 25% 추가 관세를 부과한 철강의 경우, 국가 기간산업으로 방위 측면에서 자국 철강산업을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를 폈는데 자동차에 대해서도 국가안보 영향이라는 논리가 설정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해 보인다”며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러나 세계무역기구(WTO) 등 국제통상규범과는 무관한 미국 자국 통상법인 ‘무역확장법’상 제232조는 국가안보 영향을 따지는 만큼 경제적 측면을 넘어 고도의 정치적 판단이 개입된다. 지난 ‘철강 232조 파동’이 보여줬듯 미국으로서는 자동차에 대해서도 별 어려움 없이 수입규제 정당화 논리를 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1962년에 제정·도입된 ‘무역확장법 제232조’는 2001년 이후 16년만에 부활돼 지난해 ‘철강’ 품목에 발동됐다.
자동차 232조 조사 개시와 이후 조사 결과보고서가 발표될 때까지 미국 안팎에서 반대 목소리가 커지면서 백악관이 고민에 빠져들 게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산업부 관계자는 “같은 무역확장법 232조 동원이라해도 철강과 자동차는 성격이 다르다”며 “미국내 자동차 소비자들 및 자동차 수입업자들의 반대, 미국시장 주요 수출국인 유럽·일본·한국·멕시코·캐나다 등의 강력한 반발, 나아가 미국 자동차 ‘빅3’ 업체들 스스로의 예상치 못한 반대 등 여러 이해당사자들의 거센 저항과 논란에 트럼프 대통령이 직면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외국산 수입규제로 미국내 자동차 판매가격이 오르게 되면 미국 소비자들이 반발하게 될 터이고, 유럽·일본 등이 미국산 수입제품에 대한 맞보복 위협에 나서면서 중국에 이어 유럽·일본에까지 무역갈등이 번져 ‘반미 통상전선‘ 구도가 전세계적으로 확대되는 사태가 초래될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미국내 공장 뿐 아니라 멕시코·캐나다 등지에 많은 해외공장을 거느리고 있는 지엠·포드·크라이슬러 등 미국 빅3조차도 정작 외국산 수입이 규제되면 자신들의 해외 서플라이체인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232조 발동에 반대하고 나설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확장법 232조 발동은 미국시장 수입산 비중을 줄여 자국 산업·공장의 가동률을 높이면서 동시에 미국 바깥에 있는 공장을 미국 내로 옮기라고 압박하기 위한 것인데, 미국 완성차 빅3가 해외공장을 미국으로 다시 이전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얘기다. 하지만 무역협회는 이날 미국 빅3에 미칠 영향에 대해 “나프타 재협상이 타결된 이후 자동차에 대한 232조 조처가 취해질 경우 빅3 해외공장과 연계돼 있는 캐나다·멕시코는 추가관세 면제국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무역협회는 “자동차 232조 조사는 현재 난항을 겪고 있는 나프타 재협상 상대국인 캐나다·멕시코, 그리고 유럽연합(EU)에 대한 압박용 카드이며, 실제 타깃은 무역수지 적자폭이 큰 일본도 포함된 것으로 해석된다”고 밝혔다. 승용차는 미국의 2017년 총 무역수지 적자(7962억달러) 중 1236억달러를 차지하는 최대 적자품목이며, 각 국별로는 일본에 대한 적자폭이 가장 크다. 이어 캐나다·멕시코·독일·한국 순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자동차 232조’ 발언은 유럽·일본·한국 등 개별 국가와의 각종 무역통상 이슈에서 상대국에 ‘자동차 엄포’를 놓아 다른 품목에서 더 많은 것을 얻어내기 위한 노회한 협상전술 차원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상무부로부터 최종 조사 결과보고서를 받아보고나서 수입산 자동차 추가관세율을 확정한 뒤, 철강에서처럼 이를 무기로 개별 국가들과 ‘관세 면제‘ 혹은 ‘수입쿼터 할당’ 등을 협상하면서 미국의 더 많은 이익을 챙기려는 카드로 고려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자동차에 대한 232조 조사가 정식 개시될 경우 실제 수입규제 시행까지 1년 안팎이 걸릴 수도 있으나, 단 몇 개월만에 조사결과 보고서가 백악관에 제출되고 그 후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부과에 곧장 나설 가능성도 있다. 앞서 철강 232조 국가 안보영향 조사과정을 보면, 지난해 4월 트럼프 대통령이 조사 착수를 위한 정식 행정명령에 서명했으며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두달 뒤인 6월까지 결과보고서를 백악관에 제출하라고 상무부에 지시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상무부는 이해관계자 공청회를 여는 등 수입산 철강이 미국 국가안보를 위협하고 있는지에 대한 조사에 즉각 나섰고, 6월 말께 결과보고서와 수입규제 조처 권고안이 백악관에 제출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미국내 철강 수요 기업의 반대와 유럽연합(EU) 등 상대국들의 무역보복 조처 언급, 미국내 씽크탱크와 경제 전문가그룹의 반대 등에 직면해 결과보고서 제출은 한동안 지연됐다. 결국 상무부는 지난 1월 수입산 철강 조사결과보고서를 백악관에 제출했고, 3월 초 트럼프 대통령은 수입산 철강에 대한 25% 관세부과를 결정한 바 있다. 미국 통상법에 따르면, 상무부는 232조 국가안보 영향 조사보고서를 대통령의 조사 착수 행정명령 이후 270일(9개월) 안에 백악관에 제출해야 한다. 철강의 경우 우여곡절을 거치며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 이후 발효까지 약 1년이 걸린 셈인데, 자동차도 1년가량이 소요될 것인지 아니면 향후 3~4개월안에 전격적으로 발효까지 이를 것인지 현재로선 예측불허다. 조계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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