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을 하루 앞둔 7일 낮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에서 노인들이 원각사에서 무료로 봉사하는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서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핵심 국정과제로 앞세우고 있는데도 올해 1분기 저소득가구의 가계소득이 급감한 것으로 나타나, 소득주도성장을 둘러싼 논쟁이 다시 가열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공적연금이 충분하지 않은 가운데 은퇴 뒤 빈곤층으로 전락하기 쉬운 노인가구가 늘고 있는 데다, 경기변동 등에 따른 영향을 많이 받는 임시·일용직, 영세 자영업자의 소득이 부진하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정부가 저임금을 끌어올리기 위해 최저임금 인상에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면서 임금 불평등이 어느 정도 완화될 조짐인데 견줘, 취약가구에 대한 복지확대는 미진한 상태여서 전반적인 소득 불평등 완화로 이어지기엔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 소득 1분위 내 비중 커지는 빈곤노인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에 소득하위 20% 계층인 1분위 가구의 한달 소득(128만6700원·명목 기준)이 1년 전보다 8%나 줄었다. 특히 이들 가구의 근로소득(47만2900원)과 사업소득(18만7800원)이 각각 13.3%와 26% 급감했다. 이는 2003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가장 큰 감소폭이다. 사실 물가 상승률을 고려한 소득 1분위 가구의 실질소득은 2016년부터 뒷걸음질쳐왔다. 지난해 4분기(10.2%)에 일시 반등했지만, 추석 연휴가 포함된데다 정부의 추가경정예산 집행 효과였다.
소득 1분위는 가구주의 나이가 많고 여성·저학력자 비중이 커서 임시·일용직이나 영세 자영업자인 경우가 많다. 특히 올해 1분기의 경우, 소득 1분위의 가구주 평균 나이는 63.4살로 한 해 전보다 2살이나 상승했다. 1분위 가구주의 평균 나이는 점점 높아지는 추세였지만, 이번 상승폭은 지난해 4분기(0.6살)보다 훨씬 크다. 최근 2~3년간 30%대였던 70대 가구주의 비중은 43.2%로 치솟았다. 소득 1분위 가구주 가운데 65살 이상 노인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빈곤가구가 많이 포진해있을 것이란 추정으로 이어진다. 우리나라의 노인 상대빈곤율은 2016년 기준 46.7%에 이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3배가 넘는다. 정부는 소득 하위 70% 노인에게 주는 기초연금을 월 20만6천원에서 25만원으로 인상하기로 했지만 지급 시기는 오는 9월부터다. 하위 70% 노인이 포함된 가구에 대한 부양의무자 기준도 2022년에 폐지할 계획이다. 아직 관련 정책이 본격화하지 못한 셈이다.
강신욱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소득보장정책연구실장은 “소득 1분위 가구주는 임금근로자 비중이 적어 최저임금을 올려도 큰 영향을 못받을 수 있다”며 “일자리가 없는 노인들은 빈곤층으로 전락할 우려가 높기 때문에 소득재분배를 강화할 방안을 보다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2021년 기초연금을 30만원까지 인상하더라도 노인빈곤율은 39%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 임시직·일용직·자영업자 수도 급감
소득 1분위 가구주(2015년 기준)의 임시·일용직 비율은 42.6%에 달한다. 2분위(26.3%)와 3분위(16.7%), 4분위(14.3%), 5분위(9.2%)를 압도하는 수준이다. 문제는 2016년부터 임시·일용직 일자리가 크게 줄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의 고용불안이 소득 1분위 가구의 가계소득 기반을 흔들고 있는 것이다.
임시·일용직 일자리는 2016년과 지난해에 한해 7만8천개, 10만1천개 각각 감소했고, 올해 1분기에는 18만1천개나 줄어들었다. 2016년 사드 갈등 이후 중국 관광객이 급감하면서 도소매·숙박 및 음식점 업종 불황이 이어지고 있다는 게 정부 쪽 설명이다. 홍민기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2년간 임시·일용직 고용이 줄어왔는데, 그 타격을 고스란히 최하위 계층이 받고 있다”고 말했다.
소득 1분위 가운데 가구주가 노동자가 아닌 가구의 소득은 80만6200원으로 한 해 전보다 12만8600원(13.8%) 하락했다. 사업소득이 22.4%나 추락하면서 타격을 입었다. 가구주가 노동자인 가구의 소득(198만1400원)이 한 해 전보다 4200원(0.2%) 늘어난 것과 대조적이다. 영세 자영업자의 퇴출 또는 매출감소가 저소득가구의 소득 감소폭을 키운 이유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2015년 1분기부터 감소해온 자영업자의 수는 2016년 3분기에 증가세로 돌아섰다가 올해 1분기에 다시 줄었다. 직원이 없는 영세 자영업자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8만9천명이나 감소했다. 홍민기 선임연구위원은 “사업 경쟁력이 취약한데다 과당경쟁이라는 구조적 요인까지 겹쳐 있어 고령층 영세 자영업은 경기 상황과 상관없이 계속 나빠질 것”이라며 “각종 관련데이터를 분석해보면 올해 임금 불평등은 완화될 전망인데, 가구소득 불평등이 계속 악화되는 추세가 이어진다면 그 원인을 제대로 파악해서 대응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급증한 표본가구, 통계에 영향 미쳤나
올해 가계동향조사부터 표본가구가 많이 늘어난 점이 통계에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도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가계동향조사는 고소득층 소득이 누락될 수 있다는 등 지적이 나오면서 올해부터 없애기로 했다가, 분기별 소득통계는 필요하다는 국회 요청에 따라 되살아났다. 이 과정에서 통계청은 올해 표본가구를 5500가구에서 8천가구로 늘렸다. 김낙년 동국대 교수(경제학)는 “가계동향조사는 개편 과정에 있어 결과를 (시계열로 단순) 비교하는 게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통계청은 “가구원 수 분포 등으로 사후 조정했기에 값이 틀어졌다고 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소득주도성장의 방향이 바람직하지만 좀더 적극적인 정부 정책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는 주문을 내놓고 있다. 참여정부에서 초대 청와대 정책실장을 맡았던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경제학)는 “소득주도성장 (방향)은 맞다고 보지만 정도와 범위가 부족해서 효과가 안 나타나는 것 아닌가 싶다”며 “‘분배’가 제일 먼저 개선돼야 ‘’성장’이 오고 ‘고용’이 따라온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25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현행의 5~10배 수준이 되는 증세가 필요하다”고 전제하며, 복지 증세와 재벌개혁, 비정규직 문제, 최저임금 문제 등을 개별적으로 합의하기보다는 한꺼번에 논의하고 일괄 타결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최근 몇년간 보편복지가 강조되면서 아동수당 등 중간계층 이상이 혜택을 입는 복지는 빠르게 늘었지만 취약계층을 위한 복지는 주변화되는 ‘불균등 발전’ 경향이 짙었다”며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생계급여는 제자리걸음이고 기초생활수급 노인은 ‘줬다 뺏는 기초연금’으로 아무런 혜택을 받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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