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과 내후년에도 최저임금을 15%씩 올리면 각각 9만6천명과 14만4천명의 고용감소를 부를 수 있다는 국책연구기관의 분석 결과가 나왔다. 큰 폭의 최저임금 인상이 이어질 경우 임금 질서를 교란시킬 수 있어, 인상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제안도 뒤따랐다.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끼칠 영향에 대한 국책연구기관의 사실상 첫 분석인데, 분석 방식이 신뢰할만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경수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이 4일 발표한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보면, 올해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고용 감소 규모는 최소 3만6천명, 최대 8만4천명으로 분석됐다. 또 내년과 내후년에도 최저임금이 15.3%씩 오를 경우엔 고용감소 규모가 각각 9만6천명과 14만4천명으로 확대될 것으로 나타났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2020년 최저임금 1만원에 도달하기 위한 인상률을 적용한 분석 결과다. 올해 17% 수준인 최저임금 120% 미만 임금근로자 비중이 내년엔 19%, 2020년에는 28%로 급증하며, 고용감소 규모도 커진다는 것이다. 이번 보고서는 이미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영향 분석이 완료된 미국과 헝가리의 연구결과를 활용해, 우리나라의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고용감소 효과를 추정 분석한 것이다.
다만 최 연구위원은 “(올해 최소 3만6천명 고용감소가 발생할 것으로 추정됐지만) 지난 1월부터 4월까지의 고용동향을 보면 고용감소 효과는 이 정도에 못미칠 것으로 보인다. (확실하진 않지만) 정부가 도입한 일자리안정자금의 효과 때문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저임금이 적용되는 임금근로자의 증가폭이 1월 32만명에서 4월 14만명으로 축소됐는데, 고용증가 둔화가 최저임금의 영향으로 보긴 어렵다는 것이다. 최 연구위원은 “1월 취업자 수가 기저효과 탓에 예외적으로 크게 늘었고, 인구 증가 폭이 지난해보다 둔화됐다. 또 자동차·조선업 등 제조업 구조조정이 잇따른 데다 최저임금을 받는 15~24살, 50대 여성, 고령층의 고용 감소가 두드러지지 않았다”는 점을 그 근거로 들었다.
이어 보고서는 고용감소보다 더 우려되는 점은 최저임금 인상이 계속 큰폭으로 이루어질 경우, 노동시장의 임금질서를 교란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중위임금(임금중간값) 대비 최저임금의 비율이 커질수록 득보다 실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프랑스가 2005년 최저임금이 중위값의 60%에 도달한 이후 추가 인상을 멈춘 이유”이기도 하다고 최 연구위원은 밝혔다. 당시 프랑스에선 서비스업 저임금 일자리가 줄어 단순기능 근로자의 취업이 어려워지는 등의 부작용을 겪었다.
이에 최 연구위원은 “최저임금의 상대적 수준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실질적으로 가장 높은 프랑스 수준에 도달하는 만큼 최저임금 인상 속도를 조절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우리나라의 최저임금은 올해 중위임금의 55%이지만 2019년과 2020년에도 최저임금이 큰폭으로 오르면 각각 61%와 68%까지 오른다는 전제에서 나온 것이다. 최근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이어 국책연구기관에서도 속도조절론이 제기된 셈이다.
하지만 이번 보고서의 신뢰도를 두고선 국책연구기관 내에서도 엇갈린 견해가 나온다. 해외 연구사례를 인용한 분석이어서 적절하지 않다는 논란이 불거진 탓이다. 보고서가 인용한 헝가리 연구사례를 보면, 2000~2004년 최저임금 실질기준이 60% 인상됐고, 그 결과 임금근로자 고용이 2% 감소했다. 홍민기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우리나라 최저임금과 고용 상황이 미국이나 헝가리처럼 된다는 가정 하에 고용 감소 효과를 추정했는데 우리나라가 그렇게 된다는 근거는 없다. 국외 최저임금 논문이 수백 편이 넘는데 한 두개를 가져와 그 수치를 그대로 우리니라 임금근로자에 적용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또 내년부터 최저임금 산입범위가 확대되는 변수도 반영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앞서 홍 연구위원은 올해 1~3월까지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의미있는 고용변동이 보이지 않았다고 분석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이에 비해 또다른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최저임금이 큰 폭으로 오른 전례가 없어서 과거 국내 데이터를 이용하는데 한계가 있어 해외 사례를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며 현실론을 제기했다. 최 연구위원도 “국내 데이터로는 정확한 분석이 어려워 외국 연구를 인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최저임금 수준이 다른 선진국에 견줘 높은 수준이라는 진단에 대한 반론도 나온다. 1~4인 사업체는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않아 통계를 신뢰하기 어렵고, 중위임금의 3분의 2도 받지 못하는 저임금 근로자 비중(23.5%)이 높다는 점을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강신욱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소득보장정책연구실장은 “오이시디는 1인 이상 사업체에 속한 전일제 노동자를 기준으로 비교해 우리나라의 특수한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노동계는 올해 최저임금은 평균임금의 39.4%(5인 이상 사업체 기준)에 그치며, 평균임금의 50%까지 끌어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책연구기관의 ‘속도조절’ 제안에 청와대는 당혹스런 표정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국책연구기관 한 연구자의 분석 결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개별 연구자의 분석일 뿐이라는 태도를 보였다.
정은주 방준호 박기용 기자
ejung@hani.co.kr
◎ Weconomy 홈페이지 바로가기: https://www.hani.co.kr/arti/economy◎ Weconomy 페이스북 바로가기: https://www.facebook.com/econohan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