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이 오는 7월 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 지침을 담은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할 때 주주권 행사범위를 ‘경영참여’(경영에 영향력 행사)로 확대하는 것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범위가 확대되면 한진사태처럼 불법비리를 저지른 총수일가의 경영 퇴진 요구 등이 가능해져 재벌의 전횡과 불법비리를 단절하는 중요한 전기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된다.
국민연금의 기금운용위원회(위원장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는 지난달 30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일가의 불법비리와 갑질사태에 대한 우려 표명, 공개서한 발송, 경영진 면담 추진 등의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 방침을 발표했다. 시장에서는 이를 계기로 총수일가 불법·비리→일시적 경영퇴진→경영 복귀→불법·비리 재발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불법·비리 총수일가의 경영퇴진 등을 포함한 보다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경제개혁연구소의 이은정 정책위원은 6일 “재벌 총수일가의 불법·비리로 인한 회사가치 하락과 주주 피해를 막으려면 국민연금이 불법·비리 총수일가의 경영퇴진은 물론 아무런 조처도 취하지 않고 책임을 방기하고 있는 ‘거수기’ 이사회의 전면 개편, 독립적인 사외이사 추천, 임시 주주총회 소집 등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국민연금은 그동안 주주권 행사범위를 주총 의결권 행사, 배당 확대를 위한 면담 등의 ‘단순투자’ 수준으로 국한해 왔다. 기금운용위에서 한진사태에 대한 우려 표명, 공식서한 발송 등을 결정한 것도 처음이다. 국민연금이 추가적으로 불법·비리 총수일가 경영퇴진 등을 요구하려면 자본시장법상 투자목적을 ‘단순투자’에서 ‘경영참여’로 전환할 수 있는 내부 근거규정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 복지부 관계자는 “주주권 행사와 관련된 스튜어드십코드의 ‘원칙4’와 세부규정에 경영참여도 가능하도록 규정하는 것을 기금운용위와 의결권행사전문위에서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복지부와 국민연금이 그동안 주주권 행사범위 확대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힌 적이 없는 것을 고려하면 정부와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의지가 읽힌다. 국민연금 관계자도 “사실상 주주권 행사범위를 경영참여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확인했다.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이다.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가 경영참여로 확대되면 불법·비리 재벌 총수일가의 경영퇴진을 요구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고, 국민연금이 실제 행동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재벌 스스로 조심하는 긍정적인 효과가 기대된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의 송민경 박사는 “선진국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범위는 단순투자와 경영참여 모두 가능하도록 열려 있다”면서 “선진국 연기금이 실제 경영참여 활동을 하는 경우는 많지 않지만,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를 두려워해 기업 스스로 사전적으로 조심하는 억제 효과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계는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확대에 대해 경영권 침해와 정부 입김 작용의 위험성 등을 이유로 반대한다.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은 이에 대해 “국민연금의 경영참여는 서한 발송과 경영진 면담 등을 통한 해결방안 요청이 거절됐을 경우 마지막 수단으로 하는 것”이라면서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에 반대하는 것은 한진그룹과 같은 총수일가의 전횡과 불법행위를 그대로 방치하자는 얘기와 다름 없다”고 지적했다. 채 의원은 이어 “국민연금의 의사결정 투명성과 기금운용의 독립성 제고 등 국민연금의 지배구조 개선 노력도 함께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곽정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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