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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한반도 넘어 동북아 경제지도 바꾼다

등록 2018-06-08 09:00수정 2018-06-08 10:30

H자형 경제벨트, 북 10개년 개발계획 접점 많아
중·러·일 포괄하는 환동해경제권 허브 기대감 커

15일 경기도 파주시 서부전선 비무장지대(DMZ) 남방한계선에서 철책으로 가로막힌 경의선 철로. 본격적인 경제협력 단계에 들어서면 경의선 연결이 최우선적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연합뉴스
15일 경기도 파주시 서부전선 비무장지대(DMZ) 남방한계선에서 철책으로 가로막힌 경의선 철로. 본격적인 경제협력 단계에 들어서면 경의선 연결이 최우선적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연합뉴스

전문과 3조, 13항으로 구성된 판문점 선언에서 남북 경제협력을 명시한 문구는 없다. 10·4 선언 합의 사항들을 적극 추진하며, 남북 간 철도·도로 연결과 현대화를 우선 추진한다는 게 경제 분야 합의로 볼 수 있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명한 10·4 선언은 경제협력 사업을 가장 포괄적이면서도 구체적으로 강조한 남북 정상의 합의다. 10·4 선언 5항을 보면 “남과 북은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공동 번영을 위해 경제협력 사업을 공리공영과 유무상통의 원칙에서 적극 활성화하고 지속적으로 확대 발전시켜나가기로 한다”고 돼 있다. 합의한 구체 사업도 다양하다. 북의 광물자원 공동개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 개성공업지구 2단계 개발 착수, 안변·남포 조선협력단지 건설, 백두산~서울 직항로 개설과 백두산 관광사업 실시 등이다.

10·4 선언의 경제협력 합의는 한반도 경제공동체 건설을 넘어선다. 동북아시아 전체의 평화와 번영을 추구하는 거대 프로젝트의 하나다. 당시 참여정부는 북한과의 경제협력을 ‘북한 위험’을 관리하는 차원으로 접근한 게 아니다. 한국 경제의 새로운 대안 발전모델을 모색하는 계기로 삼겠다는 의도로 10·4 선언을 추진했다. 하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10·4 선언은 사실상 사문화됐다. 이번 남북 정상회담으로 다시 살아날 기회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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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선언에서 신경제지도로

문재인 정부는 출범 전부터 10·4 선언 계승과 이행을 염두에 둔 새로운 남북 경제협력 전략을 구상해왔다. 바로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이다. 문 대통령은 판문점 회담 때 이 구상이 담긴 이동식저장장치(USB)를 김정일 국무위원장에게 전달했다. 한반도 신경제지도는 문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대표로 있던 2015년 8월 국회 연설에서 처음 제안한 것이다. “한반도의 새로운 경제지도를 그려야 합니다. 우리 경제활동 영역을 북한과 대륙으로 확장해야 합니다. 북한을 고립시켜서는 대륙과의 연결이 불가능합니다. 북한과 협력할 수 있다면 동북아 공동번영의 꿈은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문 대통령은 2017년 7월 독일 방문 때 쾨르버재단 초청연설에서 ‘베를린 구상’을 밝히면서도 한반도 신경제지도를 강조한 바 있다. “남북한이 함께 번영하는 경제협력은 한반도 평화 정착의 중요한 토대입니다. 나는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북핵 문제가 진전되고 적절한 여건이 조성되면 한반도의 경제지도를 새롭게 그려나가겠습니다. 군사분계선으로 단절된 남북을 경제벨트로 새롭게 잇고 남북이 함께 번영하는 경제공동체를 이룰 것입니다.”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에서 핵심 개념은 ’연결’과 ‘개방’이다. 서로 단절된 남한 경제, 북한 경제, 동북아 경제의 연관성을 높임으로써 큰 틀에서 새롭게 형성되는 경제공동체의 한 형태다. 이 공동체는 남북한을 연결고리로 삼아 중국 산둥성과 동북3성, 러시아 극동, 일본 환동해 지역까지 포괄한다. 판문점 선언에서 남북 간 도로·철도 연결을 우선 과제로 제시한 목적은 경제영토를 북방 대륙까지 넓히자는 데 있다. 남북 물류망이 연결되면, 사실상 섬나라인 남한이 대륙 경제국가로 도약할 수 있는 토대가 구축된다.

경제영토는 단순히 지리적 연결만으로 넓혀지는 게 아니다. 인적·물적 자원과 상품이 조직되고 거래되는 방식이 서로 충돌하지 않아야 한다. 다행히 북한은 김정은 체제에서 대외 경제협력을 통한 시장화를 서두르고 있다.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된 한반도 경제권은 막연한 상상 속 지도가 아니다. 개성공단이라는 맹아적인 형태도 존재한다. 개성공단 같은 경제특구 개발에 한반도 주변 나라와 기업이 함께 참여해 성과를 내고 시장을 넓혀나가는 것이 한반도 신경제지도가 구체화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 그래픽을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정부는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 실행 방안도 마련해놓았다. 2017년 7월 대통령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서 통일 분야 국정과제로 제시했다. 한반도의 동과 서, 그리고 동서를 각각 연결해 한반도 전체를 ‘H자형 경제벨트’로 조성한다는 방안이다. 한반도를 환동해권, 환황해(서해)권, 비무장지대(DMZ) 등 3개 경제·평화벨트로 개발하고 이를 북방 경제와 연계해 동북아 경제의 허브로 발전시킨다는 것이다.

에너지와 자원 중심의 환동해 경제벨트는 금강산~원산~단천~청진~나선을 남북이 공동 개발한 뒤 부산과 동해안, 러시아, 일본까지 연결하는 동방전략이다. 구체적인 프로젝트로 △금강산 관광 재개와 국제관광 협력벨트 조성 △나진·하산 복합물류사업 △두만강(나선) 지역 남·북·중·러 공동 개발 △남·북·러 에너지 협력과 해양자원 공동 이용, 동북아 에너지망 구축 등이 있다.

산업과 물류 중심의 환황해 경제벨트는 수도권과 개성공단~평양~남포~신의주를 연결해 개발하고 이를 중국 상하이와 동북아 지역까지 연결하는 서방전략이다. 여기에는 △수도권~개성공단~평양·남포~신의주를 연결하는 서해안 경제협력벨트 건설 △경의선 확장과 현대화 △서해 평화수역 조성 △환황해 복합물류 네트워크 추진 등이 세부 사업안으로 담겨 있다. 비무장지대 일대를 연결하는 환경·관광벨트는 생태·평화·안보 관광지구로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비무장지대와 접경지역을 평화·번영의 실험 현장과 교육 공간으로 바꾸겠다는 내용으로 △설악산~금강산~원산~백두산을 잇는 관광벨트 구축 △남북 접경지역(철원∼금강산∼설악산) 생태·환경·관광의 3각 협력 △북한의 ‘원산~금강산 국제관광지대’ 개발 참여 등을 추진한다. 남북 접경지역을 통일경제특구로 지정·운영해 남북이 공동으로 관리하는 방안도 들어 있다.

3개 경제·평화벨트 조성은 북한의 경제개발 전략에도 부합한다. 북한은 2020년까지 교통망을 비롯한 사회간접자본(SOC) 시설과 에너지 개발 등에 모두 1천억달러를 투자한다는 ‘국가경제개발 10개년 전략계획’을 2010년에 세웠다. 신의주~평양~남포로 이어지는 서남권과 나선~청진~김책의 동북 방면을 양대 축으로 한 개발 계획이다. 지리적으로 볼 때, 두 축은 남쪽이 구상하는 환동해·환황해 경제벨트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막대한 투자비와 기술을 투입하려면 남쪽 기업과 자본의 참여가 절실하다. 남쪽의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과 북쪽의 국가개발 전략 사이에는 찾을 수 있는 접점이 많다. 초기 경제협력 사업은 이 접점에 집중해 진행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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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이 ‘경협 선봉대’

남북 당국이 가장 먼저 풀어야 할 경제협력 사업은 개성공단 재가동이다. 2016년 2월 폐쇄된 개성공단에는 군사·외교적 변수에 따른 남북경협의 그늘이 고스란히 드리워져 있다. 120여 개성공단 입주기업은 대부분 판문점 선언 이후 남북경협이 획기적으로 달라질 것으로 예상한다. 항구적 평화체제가 정착돼 다시는 외생변수에 불안해하지 않을 사업 여건이 조성될 것으로 기대한다. 개성공단기업협회가 2018년 3~4월 입주기업에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96%가 재입주할 의사를 밝힌 것도 이런 기대에서 비롯했다. 협회 관계자는 “개성공단이 2년 넘게 폐쇄돼 입주기업 절반 정도가 심각한 경영위기에 몰렸다”며 “재기할 힘조차 없을 텐데 요즘 기업인 얼굴을 보면 모두 개성공단으로 다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에 부풀어 화기가 돈다”고 전했다.

국내 중소기업계는 개성공단 재가동을 넘어 한반도 신경제지도 추진에서도 주도적 참여를 기대한다. 개성공단뿐 아니라 북한이 추진하는 다양한 경제개발구역이 남쪽 중소기업에는 새롭게 열리는 땅이다. 김상훈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중소제조업은 가동률이 떨어지고 규모가 더욱 영세해지는 등 사업환경이 지속적으로 약화되는 만큼,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 추진은 중소기업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며 “중소 규모로 진행될 초기 단계 사업에서부터 많은 중소기업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중소기업 주도 경제협력의 다양한 방식과 추진 체계를 지금부터 논의하고 안정적 사업 참여를 위해 남북 당국이 각자 법과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반도 경제공동체 추진은 북한 내부의 경제개혁을 촉진하는 동시에, 우리 경제의 새로온 성장동력을 확보하고 일자리 창출 기반을 넓힐 수 있는 기회다. 조봉현 IBK경제연구소 부소장은 “남북 상품 교역과 인적·물적 자원 이동을 제약하는 요소를 점진적으로 제거하는 것만으로도 우리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남북 경제통합의 거시경제적 파급효과는 대부분 국내외 연구기관도 긍정적으로 예상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F)은 2015년에 낸 ‘남북한의 통일편익 추정’ 보고서에서 통일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이 8조7천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2015년 기준 남북한 전체 경제 규모 추정치의 6.3배다. 앞으로 40년 동안 단계적으로 경제통일을 이루는 시나리오에 따른 추산이다.

40년 동안 국내총생산 6.3배 증가는 연평균 4.7%의 경제성장을 이어간다는 것을 뜻한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잠재성장률이 3% 선으로 내려앉은 우리 경제가 북한과 통합했을 때 기대할 수 있는 효과다. 평화체제 구축 이후 가능해질 한반도 경제공동체의 형성은 동북아 평화를 촉진하게 된다. 남북이 경제적 이익을 주고받으며 서로 분업적 의존관계를 다지면 한반도 경제공동체가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마침내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 시대가 열리는 셈이다.

박순빈 선임기자 sb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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