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친절한 기자들]
흡연·커피타임, 거래처 회식, 워크숍 등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 있는지가 핵심
‘자유롭지 못한 휴식’은 노동시간에 해당
출장시간은 ‘간주근로시간제’ 활용 가능
흡연·커피타임, 거래처 회식, 워크숍 등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 있는지가 핵심
‘자유롭지 못한 휴식’은 노동시간에 해당
출장시간은 ‘간주근로시간제’ 활용 가능
‘담배 피우러 가는 것도 노동시간에 포함되나요?’ ‘거래처 술자리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내달 1일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의 노동시간이 주 52시간으로 정해지면서 기업들이 ‘혼란에 빠졌다’고 합니다. 일부 언론들은 상황이 이렇게 심각한데, 정부가 명확한 지침을 내놓지 않아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합니다. 정부가(사실, 법은 국회가 여야 합의로 만들었죠) 준비 기간도 제대로 주지 않고, 52시간 근로제 시행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원성도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런 시간이 노동시간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혼란’은 사실 기존 근로기준법에 규정돼 있는 각종 제도를 활용하거나, 기존에 정립된 판례·행정해석 등을 조금만 살펴보면 해소될 수 있는 ‘혼란’입니다. 기업에서, 특히 300인 이상 되는 규모 있는 사업장에서 이런 시간이 노동시간인지 아닌지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는 소리가 나온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일터에서 노동시간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사실 노동시간의 범위가 어디까지인가는 주당 노동시간 상한이 68시간이냐 52시간이냐와는 전혀 관련 없습니다. 68시간일 때는 ‘근무시간’이었던 것이 52시간 됐다고 ‘휴식시간’으로 돌변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될 일이죠.
그래서 <한겨레>는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판례와 고용노동부의 ‘질의회시’를 바탕으로 최근 제기된 몇가지 ‘헷갈리는’ 노동시간의 법적 기준에 대해 소개하고자 합니다. 사업장의 근무형태, 근무장소, 노동력의 제공방식 등에 따라 일률적으로 모든 경우에 칼로 무 자르듯 적용하긴 힘들겠지만, 최소한 ‘혼란’이라고 주장하는 내용에 대해선 해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 담배 피우는 시간, 커피 사러 가는 시간
노동시간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근로기준법 50조3항에 나오는 “노동시간을 산정함에 있어 작업을 위하여 노동자가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에 있는 대기시간 등은 근로시간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대법원 판례는 이를 더욱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작업시간 도중에 휴게시간으로서 노동자에게 자유로운 이용이 보장된 것이 아니고, 실질적으로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 놓여 있는 시간이라면 노동시간에 포함된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르자면,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잠깐 흡연장소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잠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러 가는 시간, 또는 화장실을 가는 시간은 노동시간에 포함된다고 봐야 맞을 것입니다. 팀장이 메신저든 전화로든 찾으면 언제든지 업무에 복귀 ‘해야’ 하고, 또 그렇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노동자에게 자유로운 이용이 보장된 것’이라고 볼 수 없는, ‘실질적으로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 놓여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죠.
지난해 12월 대법원은 아파트 경비노동자들이 야간 휴게시간(4시간) 동안 가수면을 취한다 하더라도 노동시간에 해당한다는 취지로 판결한 바 있습니다. 입주자 대표회의가 급한 일이 발생하면 즉시 반응하도록 지시했기 때문입니다. 경비노동자의 ‘가수면 시간’도 노동시간에 해당하는데, 사무직 노동자가 근무 중에 잠깐 자리를 뜨는 것을 ‘휴게시간’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입니다.
■ 업무 준비시간, 거래처 저녁식사, 출장
업무 준비를 위해 근무시간 30분 전에 출근하는 것은 ‘매너’라는 인식이 강한데요. 사실 판례는 일관되게 업무에 부수적으로 소요되는 시간은 ‘노동시간’에 포함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옷 갈아입는 시간, 작업 도구 점검·정비·교체 시간, 작업 전 회의 등등은 모두 노동시간에 포함됩니다.
아직도 직원들 눈치 보지 않고 주말에 워크숍을 간다거나 ‘직무능력 강화’나 ‘자기계발’ 등을 명목으로 근무시간 이외에 교육을 하는 회사들도 더러 있습니다.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이런 것들이 사용자의 지시·명령에 의해 이뤄지느냐입니다. “만약 노동자가 이를 거부할 수 없는 것이라면 노동시간에 해당하고, 그렇지 않다면 노동시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고용부의 ‘질의회시’들은 설명합니다.
업무상 필요에 의한 거래처와의 점심·저녁식사 역시 사용자의 지휘·감독하에 이뤄지는 것이라면 노동시간에 포함되는 것이 타당해 보입니다. 특히 식사에서 법인카드를 사용하고 미팅에 관한 사후보고를 한다면 업무 관련성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나겠네요.
장거리 출장에서의 이동시간도 노동시간에 포함되느냐 이런 의문들도 있는데요. 여기서도 비슷한 원칙이 적용됩니다. 야외에서의 방송녹화를 위해 ‘장기 출장업무 수행 중 업무 종료 후 지정된 현지 숙소로 이동하는 시간’이 노동시간에 해당하는지에 대해 2004년 고용부는 “지정된 숙소로의 이동 방법·시간 등에 대해 구속을 받고, 이동 중에 사용자의 지휘·명령이 있을 경우 언제든지 이행해야 할 의무가 있다면 노동시간에 해당하지만, 전체적인 출장업무 진행에 차질이 없는 범위에서 자유로운 이용이 보장돼있다면 노동시간으로 볼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2001년 질의회시에서는 “출장에 필요한 시간을 산정할 경우 이동에 필요한 시간은 노동시간에 포함하는 것이 원칙이나, 출퇴근에 갈음해 출장지로 출근하고 출장지에서 퇴근할 경우 제외할 수 있다”면서도 “장거리 출장의 경우 이동시간은 노동시간에 포함시키는 것이 타당하다”고 적었습니다.
뭔가 굉장히 복잡하고 따질 게 많아 보이지만, 거래처 미팅이나 출장의 경우엔 노사 합의 하에 관련 규정을 취업규칙·단체협약에 만들어 두면 될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근로기준법 58조1항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사업장 밖 간주 근로시간제’에 관한 규정인데요. 이 조항을 보면 출장이나 그 밖의 사유로 노동시간의 전부 또는 일부를 사업장 밖에서 일해 노동시간을 산정하기 어려운 경우엔 소정근로시간을 일한 것으로 보고, 소정근로시간보다 더 일한 경우(연장근로가 발생한 경우)엔 ‘근로자대표’와의 서면 합의를 통해 정한 시간을 근무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게 했습니다. 노사 합의를 바탕으로 소요거리·시간·업무 내용 등을 고려해 사전에 연장근로시간을 정해두고 이를 취업규칙이나 단체협약에 반영하면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 임원과 임원 수행기사
주 52시간 때문에 ‘논쟁적’이라고 불리는 사안 가운데는 임원 관련 내용도 많이 있습니다. 사실 임원의 숫자가 그리 많지도 않을 텐데 왜 자주 언급되는지 모를 일입니다. 주 52시간 도입에 민감한 이들이 임원들이라 그런 것일까요?
하여튼, 임원도 주 52시간 제한을 받느냐에 대한 대답은 근로기준법에 이미 답이 일부 나와 있습니다. 근로기준법 63조를 보면, 근로기준법의 노동시간·휴게·휴일에 관한 규정을 적용하지 않아도 되는 노동자들이 나오는데요. 여기(4항과 시행령)에 “사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관리·감독 업무 또는 기밀을 취급하는 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도 포함됩니다. ‘관리 감독 업무 종사자’라고 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노동조건의 결정, 노무관리에 있어서 경영자의 입장에서 활동하거나 사업주를 위해 행위하는 사람 등을 지칭하는 것으로 대법원 판례는 말합니다. 기업 임원들이 여기에 해당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 임원을 수행하는 차량 운전기사들은 통상 대기시간이 길고 업무가 간헐적으로 이뤄지는 ‘단속적 노동자’로 분류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단속적 노동자 역시 노동시간·휴게·휴일에 관한 규정을 적용받지 않는데요. 임원 차량 운전이라고 해서 모두 ‘단속적 노동’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고, 사전에 사용자가 고용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근로기준법 63조3항) 이 경우엔 노동시간이 52시간이 넘어도 문제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실제 노동시간이 대기시간의 반 정도 이하인 업무로 8시간 이내인 경우, 대기시간에 노동자가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는 수면 또는 휴게시설이 확보된 경우만 단속적 근로 승인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근로기준법 63조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대폭적으로 제한하는 내용이어서 지적을 많이 받았던 문제가 있는 조항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를 적용하는 데는 신중을 기해야 할 것입니다.
■ 중요한 것은 노사간 합의와 ‘노동시간 단축’ 취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한국의 노동시간 단축이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든 동의하는 내용입니다. 노동시간 상한을 52시간으로 해야 한다는 법 개정 논의는 2013년부터 있었고, 여야(그 당시 여야 포함)간 이견도 없었습니다. 다만 시행 시점을 언제로 할 것인가, 연장근로에 포함되는 휴일근로의 할증수당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만 논란이 돼 법안이 통과되는데 5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상황에서 ‘노동시간이 어디까지인지 몰라’ 혼란스럽다는 말은 다소 엄살이 섞인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미 근로기준법에 현재의 ‘혼란’ 상황에 사용할 만한 제도가 있고, 이에 대한 해석인 판례가 쌓여있고, 또 이를 300인 이상의 ‘대기업’들이 모를 리 없기 때문이죠. 물론 법정 노동시간을 지키지 않을 경우 사용자의 처벌을 예비하고 있어 명확한 기준이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업종·근무형태 등에 따라 천차만별인데 일괄적인 지침을 세우기는 매우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시간을 단축하겠다는 노사의 의지입니다. 노동시간 단축은 ‘기업의 시간’을 ‘시민의 시간’으로 되돌려주는 것이라고들 말합니다. 노동자가 삶의 대부분을 회사에 얽매여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의 일원으로서, 또 사회의 일원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데 근본적인 취지가 있습니다. 장시간 노동에서 벗어나 과로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의 건강을 되찾고, 일찍 퇴근해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워라밸)를 실현하겠다는 것, 충분히 쉴 기회를 보장해 업무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노동시간 단축의 본래 취지입니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현재 근로기준법이 정하고 있는 제도, 또 판례들을 바탕으로 노동시간의 범위와 보상방법에 대해 근로기준법에 하회하지 않는 수준에서 노사간 협의와 합의를 거쳐, 취업규칙과 단체협약에 반영하면 ‘혼란’도 사라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 근로기준법 4조가 “노동조건은 노동자와 사용자가 동등한 지위에서 자유의사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고 규정하는 만큼, 기준을 정하는데 있어서는 노동자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법이 정한 절차를 지켜야 합니다.
훌륭한 기업은 법적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기업, 즉 일하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기업입니다. 어떻게 하면 52시간 규제를 피해 조금이라도 일을 더 시킬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밤 늦게까지 술자리에서 거래처 비위 맞춰준 직원, 장거리 출장을 갔다 와 고생한 직원들을 충분히 쉬게 해 업무에 복귀할 수 있도록 할 방법을 고민하는 기업이 훌륭한 기업일 것입니다. 노동자들 역시 이에 부응해 불필요한 낭비 시간을 줄이고 업무 효율과 생산성을 높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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