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 대한항공 회장 일가의 불법·비리 및 ‘갑질’ 사태를 계기로 총수 일가의 ‘불가역적 경영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사회적 비난을 모면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물러났다가 여론의 관심이 멀어지면 슬그머니 경영에 복귀해 다시 불법·비리를 저지르는 악순환을 단절해야 한다는 취지다. 조 회장 일가가 지배하는 주식 지분이 30%를 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경영퇴진은 불가능하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그러나 조 회장의 등기이사 임기가 내년 3월 끝나는 상황에서 대한항공 직원들과 국민연금, 정부의 상법 개정 움직임 등이 맞물릴 경우 현실화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11일 재계와 시민단체 전문가들의 말을 들어보면, 우선 조 회장은 대한항공 등기이사 임기가 내년 3월 만료돼 재선임을 받아야 한다. 조 회장을 임기 중에 강제로 등기이사에서 해임하려면 주총 참석주주 3분의 2의 동의가 필요하다. 대한항공의 지분구조는, 조 회장 일가와 계열사, 한진그룹 산하 3개 공익법인 등의 우호 지분이 33.34%에 달한다. 일반적인 주총의 주주 참석률이 80% 정도임을 감안하면, 해임에 필요한 3분의 2의 지지를 얻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재선임 저지’는 참석주주 50%의 지지만 확보하면 가능하다. 경제개혁연구소의 이은정 정책위원은 “조 회장 이사 해임안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재선임 저지는 현실적으로 가능해 치열한 표대결이 이뤄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둘째, 대한항공 직원들이 총수일가 퇴진을 주총에서 실현하기 위해 법적 준비에 나섰다는 점이다. ‘땅콩 회항’ 사건의 피해자인 박창진 전 사무장은 “대한항공 직원들이 힘을 합쳐 상법에서 보장한 소액주주 권리를 이용해 총수퇴진을 추진하기로 했다”면서 “조종사 노조, 우리사주조합은 물론 일반 소액주주와 연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셋째,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범위 확대 추진이다. 국민연금은 7월 중 문재인 정부의 대선공약인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에 맞춰 투자목적을 ‘단순투자’에서 ‘경영참여’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주주권 행사범위가 확대되면, 총수일가 이사 해임과 새 사외이사 추천이 모두 가능해진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최근 공개적으로 한진그룹 총수일가의 일탈행위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실질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대한항공 경영진이 제대로 된 해법을 내놓지 못한다면, 국민연금이 직접 조 회장의 퇴진을 요구하거나 내년 3월 주총에서 이사 재선임 반대에 동조할 가능성이 있다. 국민연금은 대한항공의 지분 12.45%를 가진 2대주주여서 외국인 주주(16.65%), 국내 기관투자자와 소액주주(이상 34%)의 표심에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
넷째, 재벌의 ‘황제경영’을 견제하기 위한 상법 개정 추진에 탄력이 붙고 있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의 ‘공정경제’ 공약을 총괄하는 김상조 공정위원장은 연내 상법 개정 성사를 위해 적극 노력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적극적인 태도는 그동안 법 개정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법무부의 주무부서(상사법무과) 과장에 검사 출신인 민간 전문가를 임명하기로 한 것에서도 확인된다. 이와 함께 공정위는 재벌 소속 공익법인에 대한 규제 강화를 검토중이다. 공정위 기업집단국 관계자는 “공익법인의 규제 강화 방안 중에는 의결권 행사 제한도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일우재단·정석인하학원·정석물류학술재단 등 한진그룹 산하 3개 공익재단은 대한항공 지분 3.35%를 보유하고 있어, 공익법인의 의결권 제한이 이뤄지면 총수일가의 지배 지분은 33,34%에서 29.99%로 낮아진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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