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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성·직급 차별의 은행 유니폼을 벗어 버리자”

등록 2018-06-12 08:59

이코노미 인사이트 _ Economy insight
은행원들, 유니폼 놓고 난상토론 번개모임 유니폼, 성차별에 이어 직급 차별로 이어져
남성한테도 은근히 강제하는 드레스코드
“은행권이 함께 유니폼 문제 풀어나가야”

5 월 11 일 저녁 7 시 30분, 서울 을지로 한 카페에서 은행 직원 4 명이 ‘ 번개 ’ 모임을 열었다 . 여성 3 명 ( 김선아 부지점장 , 장세현 과장 , 박희선 대리 ) 과 남성 1 명 ( 정영식 차장 ) 이 모였다 . 각자 다른 은행에서 다른 직책으로 일하고 있다 . 자기 생각을 잘 드러내지 않는 은행원이지만, 이날만큼은 ‘ 드레스코드 ’ 를 두고 마음속 얘기를 허심탄회하게 꺼내놓았다 . 신분 보호를 위해 이름은 가명으로 했다.

은행원 번개 모임에서는 유니폼을 놓고 이런저런 얘기가 쏟아져나왔다. 유니폼이 성차별, 직급 차별이라는 문제제기가 있었고, 유니폼에 맞춰 전신에 적용되는 엄격한 규정에도 불만의 목소리가 컸다. 은행원을 억누르는 드레스코드는 남성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됐다. 드레스코드는 직원을 통제하는 데 활용되기도 한다. 은행원들은 불만만 쏟아내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대안도 내놓았다.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유니폼 에피소드로 대화를 시작했다.

박희선 대리가 운을 뗐다. “점심시간에 서점에 들러 책을 둘러보는데, 한 아저씨가 메모지를 들고 저한테 다가오는 거예요. 그러더니 ‘아가씨! 이 책 어디 있는지 찾아줘!’라고 말했어요. 주위를 둘러보니 저밖에 없었어요. ‘모르는 사람이 왜 나한테 이런 말을 하는 거지’라고 생각했어요. 그분이 제 유니폼을 빤히 보는 거예요. ‘저 여기 직원 아닌데요’라고 했죠. 그랬더니 그분이 제가 유니폼을 입고 있어서 ‘서점 직원인줄 알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다음부터 유니폼 입고 서점 가기가 참 망설여져요.”

장세현 과장도 꺼내놓았다. “2005~2006년 여름에 두 달 동안 모든 지점에서 하와이안 유니폼을 입었죠. 남자는 하늘색, 여자는 핑크색이었어요. 지점장을 포함해 모든 직원이 입었어요. 하지만 영업직은 입지 않았죠. 유니폼을 입은 사람은 전문성이 떨어진다고 고객 분들이 생각하셔서요. 점심식사 때 직원 6명이 그 유니폼을 입고 냉면을 먹으러 갔는데요. 식당 손님들이 우리한테 ‘냉면이 왜 안 나오냐’며 몇 번씩이나 얘기하는 거 있죠. 유니폼을 입고 있어 식당 직원이라고 생각한 거였죠.”

서울시내 한 은행 고객창구에서 직원들이 유니폼을 입은 채 일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시내 한 은행 고객창구에서 직원들이 유니폼을 입은 채 일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니폼, 성차별에 이어 직급 차별로

모두 깔깔 웃었다. 하지만 은행원 유니폼에는 이런 에피소드만 있는 게 아니었다. 성차별, 직급 차별이 묻어 나왔다.

장세현 과장이 말했다. “저는 1996년 외국계 은행에 입행했는데요. 행장이 미국인이었어요. 여직원은 영업을 하지 않는 본점에서도 유니폼을 입어야 했어요. 고객 응대를 위해 유니폼을 입는 게 아니었죠. 단지 남성 직원과 여성 직원의 차별을 두기 위한 거였어요.”

김선아 부지점장이 이어나갔다. “2000년대 이전까지 유니폼은 여성만 입는 것으로 비쳐졌죠. 지금은 직급 차별의 상징이 돼버렸어요. 어떻게 보면 더 심각해진 거죠. 여성 계장과 대리는 입지만, 과장부터는 안 입어요. 그게 차별인 거죠. 창구 일은 똑같이 하는데 직급에 따라 안 입는 거예요. 성차별에서 직급 차별로 이어지고 있는 거죠. 유니폼이 편해 입고 싶더라도 과장은 입지 못해요. 반면에 유니폼이 불편한 직원은 유니폼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박희선 대리가 말하다. “유니폼을 입고 싶으면 입고, 사복을 입고 싶으면 입을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어요. 직무에 따라 유연하게 선택할 수 있도록 했으면 해요.”

김선아 부지점장이 얘기를 받았다. “유니폼에는 선입견이 있죠. 고객 분들이 유니폼을 입은 사람을 하위 직급으로 보는 거예요. 유니폼을 입으면 30대, 40대인데도 ‘야’ ‘어이’ 같은 말을 쓰며 사람을 낮춰 보는 경우가 많아요. 유니폼을 입지 않은 직원들을 그렇게 부르지 않거든요. 게다가 젊은 여성은 꾸밀 나이에요. 항상 유니폼을 입고 있으니 개성을 발산할 수 없어요.”

개성이라는 말에 장세현 과장이 맞장구를 쳤다. “맞아요, 유니폼은 개인을 제대로 보여줄 수 없어요. 은행 창구에서 유니폼을 입고 있으면 고객이 직원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어요. 많은 고객 분이 ‘왼쪽 끝에 앉은 언니’ ‘마른 언니’ ‘안경 끼고 키 큰 언니’처럼 말씀하세요. 장세현 개인은 사라져버리는 거예요. 외모로만 기억될 뿐이죠. 유니폼이 개성을 가려버려요. 모두 같은 옷을 입고 있으니 그럴 거예요. 한 여자 직원이 헬스장에서 몇 번이나 고객과 마주쳤는데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신다고 해요. 유니폼을 입었을 때와 너무 달랐기 때문이었죠.”

유니폼에 맞춘 엄격한 드레스코드에 불만의 목소리도 컸다. 유니폼에 머리부터 손, 다리, 발, 모든 것을 맞춰야 했기 때문이다.

김선아 부지점장 얘기다. “네일 아트가 여성들에게 인기죠. 하지만 은행권은 네일 아트에 엄격한 규정을 가해요. 봄 기분에 핑크색으로 바꾸고 싶지만 그렇지 못합니다. 살구색만 허용돼요. 연두색을 바르고 싶어도 못합니다. 큐빅도 넣고 싶은데, 못합니다. 입술 역시 감성 터치하고 싶지만, 못합니다. 연한 립스틱만 가능해요. 이렇게 회사는 아주 타이트하게 규정해놓죠. 염색은 7G로 해야만 해요. 머리카락이 유전적으로 밝은색이라면 검은색으로 염색해야 할 정도죠. 모든 직원의 머리카락이 어두워지는 거죠. 그렇게 되면 고객한테도 좋지 않죠.”

박희선 대리가 말을 이었다. “복장 규정에 앞트임 샌들을 신을 것인지, 뒤트임 샌들을 신을 것인지도 규정해요. 구두는 검정색과 피부톤 계열만 신을 수 있어요. 회색은 안 돼요. 머리끈은 검은색만 돼요. 노란색 고무줄은 안 돼요. 큐빅 머리핀도 안 돼요. 그래서 평소에 검은색 머리끈만 사요. 그 외엔 회사에서 쓸 수 없으니까요.”

장세현 과장도 거들었다. “은행 창구에 앉아 있으면 신발은 보이지도 안는데, 신발 트임과 색까지 강제하는 거예요. 큐빅 머리핀은 예뻐서 고객에게도 좋을 텐데, 못하게 하는 건 이해가 안 가요. 정말.”

한 은행에서 유니폼을 입은 은행원들이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하며 인사연습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한 은행에서 유니폼을 입은 은행원들이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하며 인사연습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남성한테도 강제하는 드레스코드

은행원을 억누르는 드레스코드는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남성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김선아 부지점장은 말한다. “드레스코드를 강력하게 적용하는 건 남성도 마찬가지죠. 남성도 진한 색 셔츠를 입지 말아야 해요. 주로 하늘색 같은 미색 와이셔츠만 입어야 해요. 체크무늬가 들어가도 안 돼요. 튀는 색상도 안 돼요.”

장세현 과장도 이어 말했다. “한 신입 직원이 약간 미색의 보라색 타이를 매고 왔어요. 지점장이 곧바로 지적하더라고요. 복장을 획일화해야 한다는 건 옛날 사고방식인 것 같아요.”

남성인 정영식 차장도 거들었다. “팀장급 간부 직원이 복장으로 군기를 잡더라고요. 한 직원이 옷깃 없는 셔츠를 입었는데 ‘왜 그런 옷차림으로 회사에 왔냐’며 쪼았죠. 그렇게 입고 온 직원이 외주 직원인데도 은행 직원답지 않다며 걸고 넘어진 거예요. 드레스코드를 통제하는 데 활용하는 거죠.”

장세현 과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업무로 평가받아야 하는데, 튀는 셔츠 입고 왔다고 지적당하는 걸 보니 참 이해 안 되네요.”

유니폼 디자인과 질을 놓고도 문제가 이어졌다. 유니폼을 입고 일하는 직원 관점에서 만들기보다 단정하게만 만들려다 보니 불만이 터져나온 것이다.

박희선 대리 얘기다. “이전 하복 중에 초록색 블라우스가 있었어요. 항공사 직원처럼 옷깃에 리본이 있었어요. 그러다보니 옷깃이 자주 쭈글쭈글 해졌죠. 다림질이 너무 힘들었어요. 리본을 목에 메고 있는 것 같아 불편했어요.”

김선아 부지점장도 말했다. “은행원 유니폼이 마른 체형에 맞게 제작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다보니 블라우스나 스커트가 팽팽해 일하기 불편하죠. 체형을 커버하는 조끼나 카디건을 좀더 고급 소재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세탁을 하면 물이 자주 빠지는 경우도 흔했죠.”

박희선 대리가 말을 이었다. “유니폼은 엄청나게 비싸요. 유니폼이 해지거나 잃어버렸을 땐 개인이 직접 사야 해요. 스웨터 하나가 7만~8만원 해요. 너무 비싸죠. 은행에서 일하다보면 스웨터 무릎이 해져 구멍 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럴 때마다 꿰매 입어요. 유니폼을 입고 오래 앉아 있다보니 엉덩이 부분이 반들반들해지기도 하죠. 고등학교 때 공부하느라 오래 앉아 있으면 교복 치마가 반들반들해지는 것처럼요. 호호.”

장세현 과장 말이다. “은행들이 유니폼 품평회에 직원을 포함하기도 하는데, 일부인 것 같아요. 품평회에 영업점 직원들이 많이 참가해요.”

유니폼을 보는 남녀 시선에서 약간 차이가 보였다. 정영식 차장은 이렇게 말했다. “저는 지금 정보기술(IT) 파트에서 일해요. 은행이지만 주로 캐주얼 복장을 입는데요, 은행원답지 않은 것 같기도 해요. 남자 고객 입장으로 봤을 때 유니폼이 통일감을 주고 정갈해 보일 때가 있거든요.”

김선아 부지점장 생각은 달랐다. “물론 유니폼을 통일해 입으면 정갈한 느낌을 줄 수는 있어요. 저도 한때 그랬어요. 하지만 외국에서 살다보니 생각이 달라졌어요. 외국 은행 직원이나 비행기 승무원은 우리처럼 강압적이지 않아요. 이런 사람에겐 이런 옷이 어울리고, 저런 사람에겐 저런 옷이 어울리니까요. 그런 어울림을 유니폼이 막아버리는 거죠.”

은행권이 함께 유니폼 문제를 풀어나가자”

수다 토크는 대안을 찾아 나갔다. 박희선 대리가 말하다. “유니폼을 직무에 따라 유연하게 선택하는 게 좋겠어요. 은행권은 너무 경직돼 있어요. 조금씩 바꿔나가야 해요. 자율적으로 선택권을 줘야 해요.”

김선아 부지점장 얘기다. “네, 지금 유니폼은 하위직 여성만 입는 것이 됐어요. 은행 고객만족팀에선 유니폼을 안 입게 하면 일부 직원이 너무 튀는 옷을 입고 올 거라고 우려해요. 하지만 은행 직원 특성상 대부분 그렇지 않을 거라고 봐요.”

장세현 과장이 말했다. “제가 다니는 외국계 은행에서는 유니폼을 직무별로 입어요. 창구 업무만 하는 직원은 유니폼을 입고, 영업을 하는 직원은 유니폼을 입지 않아요. 유니폼을 입은 직원이 전문성이 떨어져 보인다는 선입견이 있기 때문이에요. 다양한 금융상품을 권유하기 힘들다는 현장 목소리를 반영해 고쳐나간 거죠.”

장세현 과장이 말을 이었다. “지점에서 창구를 담당하는 직원에게 선택권을 줬어요. 입고 싶은 직원은 입고, 그렇지 않는 직원은 안 입을 수 있게 한 거죠. 고참 직원이 편하다는 이유로 유니폼 입고, 젊은 직원이 개성을 살려 사복을 입는 경우도 있어요. 유니폼이 자율화된 뒤 한두 달은 혼란스러웠어요. 어떻게 입어야 은행 드레스코드에서 벗어나지 않을지 고민했어요. 하지만 석 달 정도 지나니 모두 잘 적응했죠. 대부분 개성에 맞게 찾아 입더라고요.”

정영식 차장이 의견을 냈다. “한 은행에게만 유니폼을 입지 말라고 얘기하기는 힘들 것 같아요. 일부 은행만 그렇게 하면 상대적으로 피해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유니폼을 입지 않는 은행은 어수선해 보인다는 비판이 걱정될 수 있죠. 통일감과 정갈함이 없어 보인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을 거예요. 그래서 전체 은행권 모두가 함께 풀어나가야 할 것 같아요.”

김선아 부지점장도 맞장구를 쳤다. “맞아요, 어느 한 은행부터 시작하면 부담이 될 수 있어요. 금융노조 차원에서 전 은행권이 함께 이 문제를 풀어나가야 해요. 주 5일제 근무 도입 때처럼 말이죠.”

김선아 부지점장 말이다. “최근 MBC에서 임현주 아나운서가 안경 쓰고 뉴스를 진행해 화제를 모았죠. 그동안 안경 쓴 아나운서를 못 봤는데, 참 신선했어요. 우리 사회에는 알게 모르게 깨기 힘든 이런 금기가 있어요. 하지만 미투운동에서 보듯, 사회 전체가 함께하면 문제를 풀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금융권의 암묵적인 드레스코드를 깨야 해요.”

장세현 과장도 덧붙였다. “은행들은 글로벌 스탠더드를 자주 말하잖아요. 글로벌 스탠더드에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도 포함되죠. 그런데 유니폼은 그 반대예요. 글로벌 기업은 피부색이 까맣든지 노랗든지 하얗든지, 하나의 기준을 두지 않죠. 인종, 성별, 성적 취향 등을 하나의 기준으로 차별을 두지 않는 거죠. 다양성을 존중하는 회사,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로 가야 해요.”

☞ 이코노미 인사이트 6월호 더보기 www.economyinsight.co.kr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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