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이 26일 서울 남대문 상의회관에서 열린 남북경협 콘퍼런스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대한상의 제공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이 남북 경제협력을 위해 남·북한의 당국과 경제계 등 4자가 함께 참여하는 ‘남북 민관협의체’를 구성해 남·북한 간 이질적인 경제 기반을 통일하는 작업을 먼저 추진하자고 제안했다.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 경협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경제단체가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제안한 것은 처음이다.
박용만 회장은 26일 서울 남대문로 상의회관에서 열린 ‘남북 경협 콘퍼런스’에서 인사말을 통해 “대북 제재 해제 전까지 차분하고 질서있는 경협 추진 여건의 조성이 필요하다”며 “남북 민관협의체를 통해 표준과 프로토콜, 기업제도 등 이질적인 경제 기반을 통일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대한상의는 이에 대해 남북 민관협의체는 남한과 북한의 당국과 경제계 등 4자가 함께 논의하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박 회장은 남북 민관협의체 제안 취지와 관련해 “남북 경협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되면서 일부에서 다소 성급하게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 충분한 정보와 판단 없이 경쟁적으로 플레이하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한상의는 이에 대해 “향후 남북 경협은 개성공단 같은 부분적인 협력과는 차원이 다르다. 기업이나 단체가 개별적으로 북한과 접촉해 사업을 추진하면 불필요한 혼란과 혼선을 초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 회장은 “남북 민관협의체가 남·북한에 모두 도움을 주는 ‘윈윈’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과거 개혁·개방에 나선 국가들의 경험을 종합해보면, 초기에 극심한 물가 불안과 중간 관료층의 시장경제에 대한 이해 부족 등 두가지로 큰 어려움을 겪었다”며 “남북 민관협의체를 통해 남한의 경험과 노하우를 전수하면 북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게 박 회장의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박 회장은 이와 관련해 “남한은 북한의 개혁·개방 과정에서 미국·중국·일본과 경쟁해야 하는데, 중국은 상품과 기술, 일본은 자본에서 각각 우위를 보일 가능성이 큰 만큼 남한은 같은 언어와 민족이라는 강점을 살려야 한다”며 “남북 민관협의체를 통해 경제 표준, 기업제도 등과 같은 이질적인 경제 기반 통일 작업을 수행한다면 북한의 개혁·개방에 도움이 되면서 남한 기업에도 자연스럽게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콘퍼런스 토론자로 나선 김석진 통일연구원 연구위원도 “일부 기업은 북한의 내수시장 진출도 바로 가능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이를 위해서는 과세, 행정 허가, 부동산 점유 등 관련 제도를 마련하고 행정 프로세스가 정착되기까지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른 전문가들도 남북 경협의 여건이 개선되고 있는 것은 맞지만 섣부른 접근은 조심해야 한다며 철저한 사전준비를 당부했다. 김석진 연구위원은 “기업들은 북한 내 경협 여건 마련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며 “유엔 제재가 풀리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가 앞서 전향적 조처를 취하면 국제적 합의를 깨는 것이 된다”고 지적했다. 양문수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북한의 개방이 시작되면 중국·일본·미국 등 국제사회의 대북 진출 러시가 나타날 것”이라며 “우리가 경협 파트너로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박용만 회장은 행사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청와대가 대통령 직속의 민관 합동 남북경제협력위원회의 민간위원장으로 임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일부 언론의 보도에 대해 “처음 듣는 얘기”라고 밝혔다. 곽정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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