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국민경제자문회의 주최로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국제 컨퍼런스에 참석한 국내외 석학들.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제공.
“저소득층에 대한 교육과 투자가 부족한 탓에 ‘사회적 엘리베이터’가 붕괴해버렸다.”(로미나 보아리니 OECD 사무총장 선임자문관)
대통령 직속 자문기관인 국민경제자문회의 주최로 28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2018 국민경제 국제 컨퍼런스’에 참석한 국내외 석학들은 한국은 눈부신 경제성장을 달성했지만 사람에 대한 투자가 뒤처져 있다며, 공공지출을 확대해 인적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날 컨퍼런스는 ‘사람중심경제로의 경제패러다임 대전환’을 주제로 열렸다.
2008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이날 기조연설에서 “한국은 유례없는 성장을 달성하고 성장 모델의 대표적인 국가가 됐지만 한국인의 삶의 만족도는 그렇지 못하다”며 “경제적 부보다 ’인간 진보’가 뒤처졌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어느 정도 성장을 이룬 뒤에는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람인데 사람들이 자신이 사회에서 소외됐다고 느끼고 우울감에 빠지는 등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뉴질랜드와 한국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비슷한 수준이지만, 삶의 만족도는 뉴질랜드가 훨씬 높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포용’이 필요하다는 게 크루그먼 교수의 견해다. 그는 “경제는 사람에 관한 것이고, 경제의 목적은 경제를 구성하는 사람들을 돕기 위한 것”이라며 “사람들이 사회의 일원이라고 충분히 느끼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제공.
로미나 보아리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무총장 선임자문관은 시간이 지날수록 계층 간 기술 격차와 불평등은 심화하기에 정부가 인적 투자에 앞장서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저소득층 가구는 자신의 역량을 투자할 기회가 적어 교육 수준이 낮고 좋은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결국 생산성이 낮은 하위 기업에 역량이 없는 노동자가 몰리면서 상·하위 기업 간, 노동자 간 격차가 더 벌어진다. 보아리니 자문관은 “특히 4차산업 혁명과 더불어 일자리가 소멸함에 따라 뒤처진 노동자들은 노동시장 밖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일자리 양극화는 사회계층 간 이동에도 걸림돌이 된다.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고용정책국장은 “소득 수준이 낮은 가구는 자녀에 대한 교육이 소홀해져 다시 계층 간 불평등이 심화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최근 오이시디가 펴낸 보고서(‘사회적 엘리베이터는 붕괴했는가? 사회이동을 촉진하는 법’)를 보면, 한국의 소득 하위 10% 가구에 속한 자녀가 중산층에 도달하기까지는 5세대가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세대를 30년으로 계산했을 때 150년이 필요한 셈이다. 오이시디 평균은 4.5세대였다.
불평등 심화의 악순환을 끊는 방법은 정부가 인적 투자를 대폭 늘리는 것이다. 이상헌 국장은 “기술에 대한 투자만큼 중요한 게 평생교육”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공공지출을 확대해 노동자들을 재교육하고 평생교육에 적극 참여하는 기업과 노동자에 인센티브를 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아리니 자문관도 “교육을 받기 힘든 저소득층에 초점을 맞춰 교육에 집중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콘퍼런스는 국민경제자문회의가 주최하고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주관했다. 크루그먼 교수를 포함해 국내외 석학과 국제기구 담당자 등 10여명이 주제 발표와 토론을 진행했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