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구본무 전 엘지그룹 회장의 장남인 구광모 엘지전자 상무가 그룹 지주회사인 ㈜엘지의 대표이사 회장으로 선임됐다. 이로써 재계 4위 엘지그룹은 4세 경영시대를 열게 됐다.
엘지는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트윈타워에서 임시주총과 이사회를 잇달아 열어 구광모 상무를 신임 등기이사와 대표이사 회장으로 선임했다. 이로써 엘지그룹은 구인회 창업회장, 2세인 구자경 명예회장, 3세인 구본무 전 회장에 이어 그룹 창업 71년만에 4세 총수 시대가 열렸다. 국내 30대 그룹 중 4세 경영체제가 시작된 것은 재계 13위인 두산에 이어 두번째다.
엘지그룹은 “구 신임 회장이 부친인 구본무 회장의 별세로 공석이 된 주주대표의 자격으로 지주회사의 이사회에 참여하고, 대표이사 회장을 맡아 엘지가 고객과 사회에 가치를 제공하며 계속 발전할 수 있도록 책임경영에 나서게 됐다”고 밝혔다. 구 신임 회장도 이 날 이사회에서 인사말을 통해 “그동안 엘지가 쌓아온 고객가치 창조, 인간존중, 정도경영이라는 자산을 계승·발전시키고, 변화가 필요한 부분은 개선하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성장기반을 구축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엘지는 구본무 회장 때부터 구축된 지주회사 지배구조를 이어가고, 계열사는 전문경영인 책임경영체제를 유지할 전망이다.
구 신임 회장은 40살(1978년생)로 국내 30대 그룹 총수 중에서 최연소다. 그는 구본무 전 회장의 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나, 구 전 회장이 불의의 사고로 외아들을 잃은 뒤 2004년 양자가 됐다. 구 신임 회장은 2006년 엘지전자 재경부문에 대리로 입사한 뒤 엘지전자 미국법인, 홈엔터테인먼트 사업본부, 홈어플라이언스 사업본부를 거쳐 올해부터 정보디스플레이 사업부장을 맡으며 13년간 경영수업을 받아왔다.
하지만 조부인 구자경 명예회장과 부친인 구본무 회장이 각각 20년간 경영수업과 경영참여 경험을 거쳐 45세와 50세에 회장에 선임된 것에 비하면 그룹 총수로서 경영경험과 역량이 충분히 검증됐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이에 따라 앞으로 상당기간은 경영능력 입증이 큰 과제가 될 전망이다. 치열한 글로벌경쟁과 4차산업혁명 흐름 속에서 기존 사업의 경쟁력 유지·강화와 신성장동력 발굴 등 엘지의 과제가 적지 않은 상황이라 귀추가 주목된다. 엘지 유원 부사장은 “2003년 지주회사 체제 전환 이후 대주주 대표는 그룹의 장기적인 사업방향 제시와 전문경영인에 대한 평가·인사를 맡고, 전문경영인은 개별 회사의 경영을 맡는 역할 분담이 자리잡았다”면서 “구 신임 회장은 하현회 부회장 등 엘지 경영진과 그룹 씽크탱크인 엘지경제연구원의 도움을 받고, 계열사의 부회장단 등과 수시로 의견을 나누고 소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구본무 회장의 와병 중에 사실상 그룹을 대표하는 역할을 했던 구본준 부회장은 즉각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엘지그룹은 “구 부회장이 올 연말 임원 인사 때 퇴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는 엘지의 오랜 ‘장자 승계’ 전통에 따라 조카에게 길을 터주기 위한 배려로 해석된다. 구 부회장은 29일부터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제1회 한중 고위급 기업인 대화에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마지막에 박진수 엘지 부회장으로 변경됐다. 구 부회장은 장기적으로는 엘지 계열사 가운데 일부의 경영을 맡아 계열분리를 할 가능성이 높지만, 아직 그 시기와 대상은 정해지지 않았다고 엘지는 밝혔다.
곽정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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