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못지않게 과로사회로 유명한 일본에서도 근로시간 단축이 추진되고 있다. 비정규직 차별 문제 등과 포함한 종합적인 정책이 추진되고 있는 데다, 한국처럼 반대를 위한 반대도 적어 비교된다. 사진은 집배노동자 장시간 노동 철폐를 주장하는 행위극 모습. <한겨레> 자료 사진.
국내에서 이달부터 주 52시간 초과근로 금지가 시행된 가운데, 일본에서도 최근 강력한 노동시간단축법이 제정됐다. 비정규직 처우 개선과 다양한 근무제 도입 등이 함께 패키지 형태로 추진되고 있는 데다, 보수진영의 일방적 반대가 없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한국은행은 15일 내놓은 해외경제포커스에서 지난달 29일 일본 참의원을 통과해 내년 4월 시행될 예정인 ‘일하는 방식의 개혁을 추진하기 위한 관련 법률의 정비에 관한 법률’(일하는 방식 개혁법)을 소개했다. 일본은 최근 고용상황이 호조를 보이는데도, 연간 근로시간(2017년 기준)은 1710시간으로 한국(2024시간)보다는 짧지만 독일(1356시간)이나 프랑스(1514시간) 등에 견주면 길다. 주 49시간 이상 장시간 노동자 비중(2016년 기준)도 20.1%로 한국(32%)보다는 적지만, 독일(9.3%)이나 이탈리아(9.9%), 프랑스(10.5%)보다는 두배가량 많다. 비정규직 비중은 2005년 32.6%에서 지난해 37.3%로 높아지는 추세인데,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임금이 59.4%로 프랑스(86.6%)나 독일(72.1%), 영국(71.8%)에 견주면 훨씬 낮다.
이런 배경 아래 “일본 정부는 근로시간 단축, 비정규직의 불합리한 대우 시정 등을 포괄하는 ‘일하는 방식의 개혁’을 추진하고 나섰다”고 한은은 취지를 설명했다. 우선 장시간 노동 해소를 위해 기존에는 권고안에 불과했던 시간 외 근무시간 한도를 ‘월 45시간, 연 360시간까지’로 법제화하고 처벌조항을 마련했다. 월 단위로 환산하면 초과근무 한도가 52시간인 우리나라보다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 셈이다.
시행은 대기업은 2019년 4월부터, 중소기업은 1년 늦은 2020년 4월부터다. 다만 연구개발 업무는 적용대상에서 제외되고, 운송·건설·의사 등 업무는 5년 유예기간을 두도록 했다. 통상 예측하기 힘든 대폭의 업무량 증가 때도 초과근무 시간은 월 100시간, 2~6개월 평균 80시간, 연 720시간을 넘지 못하도록 했다. 2023년 4월부터는 월 60시간 이상 시간외 노동에 대한 임금 할증(50%)을 중소기업에도 적용키로 했다.
일본에서는 2015년 말 광고회사 덴쓰의 신입사원 다카하시 마쓰리(사망 당시 24살)가 월 105시간 초과근무 등 과로에 시달리다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나 사회적으로 큰 파문이 일었다. 회사 쪽의 교묘한 근무지시 등이 폭로되면서 수사로 이어졌고, 관련 논의는 전반적인 근무시간 단축으로도 이어졌다.
일하는 방식 개혁법은 특히 근무시간 단축 이외의 문제들도 포괄하고 있다. 출퇴근 시간을 근로자가 자유롭게 운용하는 플렉스타임제를 확대하고, 시간 외 근무 관련 규제 적용을 받지 않는 고도전문직(고소득 금융 딜러·애널리스트 등) 제도를 도입하는 등 근무형태를 다양화했다.
또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위해,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 사이의 불합리한 대우 격차도 금지돼 대기업은 2020년 4월부터, 중소기업은 2021년 4월부터 적용된다. 이를 위해 일본 정부는 고용형태와 관계없이 업무 내용에 따라 임금을 결정하도록 하고, 기본급과 각종 수당 지급, 복리후생 등에서 대우 격차를 금지한 ‘동일노동 동일임금 가이드라인’을 곧 발표할 예정이다.
한은은 “(법안이 시행될 경우) 업무 효율성 제고로 노동생산성이 향상될 뿐만 아니라 여가 증가에 따른 소비지출 확대, 일과 가정의 양립에 의한 여성 경제활동 참여증가 등도 기대된다”면서도 “시간 외 근무 감소가 근로자의 임금감소로 이어질 소지가 있고, 노동생산성 향상이 충분치 않을 경우 인력부족 심화 우려 등의 문제도 제기된다”고 전했다.
이순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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