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엘지(LG)그룹 총수가 된 구광모(40) 회장의 첫 포석은 권영수(61) 엘지유플러스(LGU+) 부회장을 그룹 지주회사 ㈜엘지의 최고운영책임자(COO) 부회장에 앉히는 것이었다. 전자·화학·통신 등 엘지그룹 핵심 사업을 두루 경험한 권 부회장을 본인과 가장 가까운 자리로 옮겨, 함께 그룹 현안을 조율하고 신성장동력을 찾을 구상을 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구 회장은 지난 2일 엘지화학 최고인사책임자(CHO)인 이명관 부사장을 엘지 인사팀장에 선임하는 등 ’새 판 짜기’에 집중하고 있다. 벌써 올 연말께 그룹 차원의 대규모 인사가 있을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엘지는 16일 오전 이사회를 열어 권영수 엘지유플러스 부회장을 지주사의 최고운영책임자 부회장으로 선임했다. 공식 취임은 주주총회를 거쳐야 한다. 엘지유플러스도 이날 오후 이사회를 열어 하현회 엘지 부회장을 엘지유플러스 부회장으로 선임했다. 결과적으로 권 부회장과 하 부회장이 자리를 맞바꾸게 됐다.
구 회장의 첫 주요 결정인 이번 인사를 통해 ‘구광모호’의 향후 행보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엘지 안팎에서는 구 회장이 권 부회장의 넓은 경험과 특유의 추진력을 높이 산 것으로 본다.
1957년생인 권 부회장은 12년 전인 49살 때 엘지전자 재경부문 사장을 시작으로, 엘지필립스엘시디(LCD) 사장(2007년), 엘지디스플레이 대표이사 사장(2008년), 엘지화학 전지사업본부장(사장)(2012년), 엘지유플러스 대표이사 부회장(2015년 12월)을 거쳤다. 엘지그룹의 핵심 사업이라 손꼽을 수 있는 전자·화학·통신 등을 모두 거친 셈이다. 성과도 좋았다. 엘지유플러스 부회장으로 있으면서 2016년 7400억원, 2017년 8200억원 등 최대 영업이익을 냈고, 엘지디스플레이 사장 때는 4년 연속 영업이익 1조원을 달성했다. 엘지화학 사장 때도 2차전지 분야 세계 1위의 성과를 지켰다. 대언론 관계도 적극적이어서, 엘지디스플레이 사장 시절 사업실적을 공시한 뒤 기자간담회를 갖는 등 다른 최고경영자들과 다른 태도를 보였다.
이번 인사를 두고 구 회장이 부친인 고 구본무 전 회장과 숙부인 구본준 부회장과 선긋기를 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2015년부터 엘지 대표이사를 맡아온 하현회 부회장을 엘지유플러스로 보내고, 지주사 근무 경험이 없는 권 부회장을 불러온 것은 과거를 뛰어넘으려는 의지가 반영됐다는 것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구광모 체제를 맞아 새로운 출발의 의미가 담긴 인사로 보인다”고 말했다.
권 부회장은 구 회장을 도와 엘지가 당면한 여러 과제를 챙기고, 향후 청사진을 짤 것으로 보인다. 당장 3년 넘게 적자상태인 엘지전자 스마트폰 사업을 되살려야 하고, 올 1분기 적자를 낸 엘지디스플레이도 전환책이 필요하다. 더불어 로봇과 전장 등 그룹의 신성장동력 사업을 키우거나 새로 발굴해야 한다. 엘지 한 관계자는 “구광모 회장이 예상보다 빠르게 인사를 통해 자신만의 포석을 하고 있다”며 “안정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적극적으로 새 판 짜기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최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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