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빈씨가 97세 할머니로 분장하고 광주 발산마을 할매들과 시간을 보내는 장면. 데블스TV 갈무리
“어려운 거 하는 게 더 멋있지 않아요?”
수익과 직결되는 구독·조회수를 늘리려면 자극적인 소재가 더 좋지 않냐는 질문에 되돌아온 대답이다. 우문현답의 주인공은 유튜브와 페이스북을 합산해 팔로워 29만 명을 보유한 인기 크리에이터 그룹 ‘데블스 티브이(TV)’의 공동대표 신준섭·김영빈(28)씨다. 이들은 이미 ‘아는 사람은 아는’ 유명인사다. 그도 그럴 것이 콘텐츠 부문 공동대표이자 주요 출연자인 영빈씨는 10년 가까이 인터넷에 회자되는 ‘전설의 서현 동창’ 짤의 주인공이다. 이들이 만든 가수 아이유 패러디 뮤직비디오 ‘빨래터’도 150만 이상 조회수를 기록했다. 전라도 사투리를 소재로 한 ‘광주자매’, 일반 시민 대상 몰래카메라 ‘낚시왕 김낚시’ 등도 인기다.
조회수 150만을 기록한 데블스TV의 아이유 패러디 영상 ‘빨래터’. 데블스TV 갈무리
이들에겐 다른 크리에이터들과는 다른 특별함이 있다. 우선 혐오 콘텐츠가 없는 청정한 웃음을 준다. 실제로 영빈씨는 언론 인터뷰나 개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성소수자·여성 등 사회적 약자 혐오 콘텐츠는 만들지 않는다”는 소신을 밝힌 바 있다. ‘관종’이라거나 ‘착한 척으로 돈 버는 것’이라는 내용의 악플도 더러 달리지만, 이들은 묵묵히 일상으로 진정성을 증명한다. 유튜브로 사업 지속성을 만들되, 단순히 수익과 유명세만 좇는 게 아니라 만들어진 영향력, 경제적 기반을 바탕으로 광주 지역 도시재생과 마을만들기에 참여하는 식이다. 데블스 티브이를 아예 마을기업으로 만든 것도 이 때문이다.
2010년 ‘전설의 서현동창’ 으로 유명세를 탄 김영빈씨 인터뷰 장면. 티브이엔 영상 갈무리
“재밌고 멋있는 일을 하고 싶어서요.” 이들이 획일화된 진로나 사업적 성공, 유명세만 좇지 않고 다른 길을 선택한 이유란다. 지난 13일∼15일 사흘간 대구광역시 산격3동 엑스코에서 열린 ‘사회적경제 박람회’에 참여한 이들을 박람회 현장에서 만났다.
데블스TV 프로그램 ‘낚시왕김낚시’에서 할머니 15분 몰래카메라 중 한 장면. 데블스TV 영상 갈무리
발산마을 ‘손주들’된 데블스TV
“할매들이랑 매일 통화해요. 오늘도 조금 전에 통화했거든요, 오늘 왜 안 왔냐고. 내일 밥 먹으러 오라고.” 영빈씨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여기서 ‘할매들’이란 발산마을 주민들을 말한다. 발산마을은 광주시 서구 양3동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다. 도심에서 그리 멀지 않은데도 어르신들만 남아 쇠락하던 마을이, 지금은 식당·게스트하우스·갤러리 등이 만들어지고 청년들이 오가는 활력 넘치는 마을로 탈바꿈했다. 발산마을은 도시재생에서도 손꼽히는 성공사례 중 하나인데, 마을 활동가와 원주민이 잘 어우러졌다는 게 돋보이는 점이다.
‘쇼미더머니’를 패러디한 ‘쇼미더발산’ 장면. 발산마을 할매들이 ‘약간 원썬씨를 모르는 래퍼는 없지?’라는 유행어를 따라하고 있다. 데블스TV 영상 갈무리
낙후된 마을을 개발했더니 주민들이 밀려나거나 원주민과 새로운 입주자, 마을 활동가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는 이야기는 도시재생에선 흔한 소재다. 하지만 발산마을은 달랐다. “할매들이랑 진짜 친해요. 할매들도 우리를 좋아하고, 우리도 할매를 좋아하고. 같이 놀면 재밌어요. 우리 마을이죠.” 이들이 다른 청년들을 몰고 오면 주민들은 밥도 지어주고 파티도 한다. ‘주민과 함께’ 꾸미지 않았는데도, 이들이 만든 영상, 사진, 대화 하나에 주민들과 쌓아온 시간이 고스란히 내려앉았다.
데블스TV 프로그램 ‘낚시왕김낚시’에서 할머니 15분 몰래카메라 중 한 장면. 데블스TV 영상 갈무리
데블스 티브이의 콘텐츠에도 이런 철학이 그대로 드러난다. ‘쇼미더발산’, ‘발산에서 생긴일’, ‘낚시왕 김낚시-할머니 열다섯 분 몰래카메라’, ‘3분 할매’ 등 다양한 콘텐츠에 할매들이 직접 등장한다. 영빈씨가 할머니 분장을 하고 “나는 구십일곱이여, 팔십여섯이면 아직 애기네” 너스레를 떨며 고스톱을 치고 ‘웃음 참기 게임’을 하는 식이다. 가장 인기가 많았던 ‘쇼미더발산’은 인기 방송 프로그램 ‘쇼미더머니’를 패러디했는데, 할머니들이 모자와 선글라스 등으로 치장해 래퍼로 분장하고 “약간 원썬씨를 모르는 래퍼는 없지”와 같은 유행어를 따라 한다. 할매들이 영빈씨 엉덩이를 두드리고, 게임을 함께 하는 장면들, “우리 손주”하며 입을 맞추는 장면이 그대로 나온다. 영상이 나오면 꼭 함께 본다. “너무 좋아하시죠. 또 언제 찍냐고 물어보시기도 해요.”
그럼에도 이들이 선을 긋는 대목이 있다. “우리도 전라도 사람들이지만, 발산마을 출신이 아니니 외지인이죠.” 이들은 끝까지 “마을 주민은 할매들”이라는 철학을 고수한다. 콘텐츠를 만들며 주민들과 친해지고, 마을의 좋은 점을 재미있게 홍보하는 것, 청년들이 오가되 우리끼리 노는 것이 아니라 ‘할매들과 함께’노는 게 철칙이다. 할매들이 시간을 보내는 경로당은 이들 활동의 거점이다. 청년들이 발산마을에 와서 마을체험을 하는 ‘이웃캠프’를 보자. 게임에 이기면 마을 화폐를 받는데, 이 돈으로 할매들이 직접 재배한 채소를 살 수 있는 식이다. 갓 문을 연 게스트하우스 ‘데블스하우스’도 경로당 바로 옆에 자리했다. 외지인들과 할매들이 보다 가깝게 만나도록 하기 위해서다.
발산마을 이웃캠프 참여자들이 게임으로 얻은 마을화폐로 주민들이 기른 쌈채소를 사는 모습. 발산마을 누리집 갈무리
“쉬운 길은 안 멋지잖아요”
데블스TV의 창업멤버인 준섭씨와 영빈씨는 전주예고 동창생이다. 경영부문 대표이사인 준섭씨는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는데, 취업만 중요시하는 대학생활에 회의감을 느꼈단다. 서울에서 극단 활동을 하며 생활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했던 영빈씨도 극단에 녹아든 군대식 문화나 알바노동자의 열악한 처우를 실감하며 사회문제를 고민했다. 사회 참여를 위해 집회에도 나간 적이 있지만, 한 곳에서는 격렬한 시위가 일어나는데도 바로 옆에서 술 마시며 노는 사람들을 보며 단절을 느꼈다.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재미있고 쉽게 알리자.” 두 사람의 의기투합은 이런 생각에서 나왔다.
10대를 함께 보낸 친구들은 20대를 서울·광주에 각각 떨어져 살면서 비슷한 고민을 하고 그 나이 또래들이 겪는 실패와 좌절도 함께 맛봤다. “안 되면 우리끼리 뭔가 해 보자.” 서로를 위로하던 두 사람은 비슷한 시기 10대 시절 약속을 떠올렸다. 두 사람은 광주에 다시 모였고, 맨땅에 헤딩하는 각오로 퍼포먼스 그룹을 만들었다.
지난 13일∼15일 사흘간 대구광역시 산격3동 엑스코에서 열린 ‘사회적경제 박람회’에 참여한 데블스TV를 박람회 현장에서 만났다. 창업 계기와 사업 방향을 설명하고 있는 데블스TV 경영부문 대표이사 신준섭씨.
어려움이 왜 없었을까. 거리공연을 하며 지역 행사 무대에도 열심히 섰지만 손에 쥐는 행사비로는 소품비·인건비를 충당하기에도 부족했다. 지속성을 고민하던 두 사람은 결국 창업을 결심했고 경제적 지속가능성과 좋은 일이라는 두 목표를 동시에 이루기 위해 마을기업을 세우기로 했다. ‘좋은 일을 지속적으로 한다. 단, 재밌고 폼나게!’. 분명한 원칙을 세우고 밑그림부터 그려가며 ‘우리의 일’을 만들었다. 데블스 티브이는 이제 직원 13명을 거느린 어엿한 회사로 성장했다. 올해 정식 마을기업 인증도 앞두고 있다.
“사회적기업은 좋은 일만 해서도 안되고, 기업으로 건실하게 서야죠.” 이들의 계획은 단단하다. 수익이 꾸준히 창출되는 유튜브 영상도 열심히 만들되 ‘이웃캠프’ 등 발산마을 활성화에 꾸준히 참여한다. 게스트하우스는 수익도 올리고 마을 활성화도 이루기 위한 새 사업 모델이다. “쉬운 길은 안 멋지잖아요. 할매들 웃기고, 사람들 웃기면서 같이 폼나게 살 거고요, 광주에서도 젊은 사람들 살아갈 수 있다는 것 보여줄 겁니다.” 이들이 내건 당당한 포부다.
대구/ 글·사진 박선하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 연구원 sona@hani.co.kr
지난 13일∼15일 사흘간 대구광역시 산격3동 엑스코에서 열린 ‘사회적경제 박람회’에 참여한 데블스TV를 박람회 현장에서 만났다. 콘텐츠부문 대표이사 김영빈씨 뒤로 자신이 나온 데블스TV프로그램 ‘낚시왕김낚시’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