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이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 정책에 대해 소득 양극화 때문이라고 지지의 뜻을 밝히면서, 소상공인의 부담을 고려해서 최저임금 인상에만 의존하지 말고 ‘직접적 분배정책’ 강화와 재정지출 확대도 병행할 것을 요청했다.
박용만 회장은 18일 대한상의 하계포럼이 열린 제주 신라호텔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내년도 최저임금 10.9% 인상에 대해 “사용자단체가 빠진 상태에서 결정돼 아쉽다”면서도 “법 절차에 따라 결정된 만큼 더는 언급하지 않겠다”며 수용 의사를 밝혔다. 이는 중소기업중앙회가 최저임금에 대한 이의신청을 제기할 움직임을 보이는 것과 대비된다.
박 회장은 또 “최저임금 인상은 소득의 양극화 심화가 근본 배경”이라며 “가구소득이 중위소득의 절반에 못 미치는 ‘상대적 빈곤층’이 1990년대 7.4%에서 현재 14%로 두배로 높아지고, 저임금 근로자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최하위권”이라고 정부정책 지지 뜻을 밝혔다. 또 “저소득층을 지원하면 다른 계층에 비해 한계소비성향(추가소득 중에서 저축되지 않고 소비되는 비율)이 높아 소비가 늘어난다”며 소득주도성장 정책에도 찬성했다.
박 회장은 그러나 “최저임금 인상에만 의존하면 소상공인이 감내하기 어렵기 때문에 저소득 근로자의 소득지원을 위한 근로장려금(EITC)과 같은 ‘직접적 분배정책’을 보다 과감히 시행하는 등 다양한 정책수단을 동원해야 한다”면서 “재정지출 확대를 통한 경기부양도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문재인 정부가 18일 근로장려금 지원 확대를 담은 하반기 경제정책 운용방안을 발표한 것에도 지지 뜻을 밝힌 셈이다. 박 회장은 고용 유연성을 높여야 한다는 경제계 주장에 대해 “사회안전망 투자가 경제협력기구 36개 회원국 중 34위에 불과한 상황에서는 어렵다”면서 “사회보장 투자가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회장은 문 대통령의 재벌정책이 최근 변화 조짐을 보인다는 지적과 관련해 “지난해 7월 제주포럼 때 정부가 집권 2년차가 되면 경제성적표로 평가받을 수밖에 없고, 경제성적이 좋아지려면 기업의 사기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예상한 게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 총수일가 사익 편취, 하도급 불공정행위 규제에 대해 “대기업의 일탈 행위를 막는 게 기업 경쟁력을 해치거나 시장질서 확립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공감하면서도, “(재벌개혁을 위해) 수술이 필요한지 운동이나 약 처방이 필요한지 구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재벌개혁은) 법과 제도만으로는 안되고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따르는 규범을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최근 인도방문 때 삼성전자 공장 준공식에서 뇌물사건으로 재판 중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나 시민단체로부터 개혁후퇴라는 지적을 받았다.
박 회장은 규제개혁과 관련해 “기업들이 일을 벌이기 좋도록 규제 완화가 시급하다”면서 규제 총량 관리, 고용유발 효과가 큰 서비스산업과 신산업의 규제 완화, 진입장벽이 높은 각종 면허제도 개선 등을 주문했다. 또 “국민은 규제를 없애면 일부 기업의 일탈 행위로 인해 혼란이 초래될 것으로 우려한다”면서 “보다 과감히 규제개혁을 하고, 부작용이 있으면 사후적으로 제재하면 된다”면서 ‘사전규제 완화-사후규제 강화’를 새 규제개혁 전략으로 제시했다. 이어 “공무원 때문에 규제개혁이 안 된다고 비판하지만 현실적으로 공무원이 규제를 완화하면 감사를 받는 등 불이익이 뒤따른다”면서 “규제개혁을 한 공무원에 대한 보호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박 회장은 정부가 규제개혁의 일환으로 추진 중인 인터넷전문은행의 은산분리 완화에 대해 “잘 모르겠다”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빅데이터 산업 육성을 위한 개인정보보호 완화 추진에 대해서는 “과잉입법이 분명하다”면서 “비식별정보까지 이용을 막으면 빅데이터 산업이 형성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또 “개인정보의 과보호는 유출이라는 범죄행위 때문이지만, 빅데이터 관련 국제 협업에서 한국만 제외될 위험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제주/곽정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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