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그룹 계열사인 두산인프라코어가 납품단가 인하 요구에 응하지 않는 중소 납품업체의 기술자료를 다른 업체로 빼돌리고 결국 거래도 끊는 ‘갑질’을 하다가 공정거래위원회에 적발돼 과징금 부과와 검찰 고발의 제재를 받았다. 이번 제재는 공정위가 지난 9월 대기업에 의한 중소기업 기술유용 근절대책을 발표한 뒤 실시한 직권조사의 첫번째 성과다. 공정위는 연내에 2건의 기술유용 사건을 추가로 처리할 계획이어서, 대기업의 기술유용에 대한 공정위의 엄정한 법집행이 본격화하는 모양새다.
공정위(위원장 김상조)는 23일 하도급업체의 기술자료를 유용한 두산인프라코어(사장 손동연)에 대해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3억7900만원을 부과하고, 법인 및 회사 임직원 5명을 검찰에 고발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두산그룹 계열사인 두산인프라코어는 굴삭기 등 건설기계 제조업체로, 지난해 매출은 2조6500억원을 기록했다.
공정위 조사 결과 두산인프라코어는 2015년말 에어콤프레셔 납품업체인 이노코퍼레이션이 납품가격 18% 인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자, 2016년 2~3월 기술자료를 추가로 요구한 뒤 2016년~2017년 5차례에 걸쳐 새로운 공급처 후보업체에 기술자료를 전달해 부품을 개발하도록 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2016년 7월부터 새 납품업체로부터 단가를 최대 10% 낮춰 에어콤프레셔를 납품받기 시작했고, 2017년 8월부터는 이노코퍼레이션과의 거래를 완전히 끊었다. 공정위 최무진 기업거래정책국장은 “두산인프라코어가 유용한 이노코퍼레이션의 도면 31장은 에어컴프레셔의 모델별 제작도면으로 핵심부품인 에어탱크 제작에 필요한 용접·도장 방법, 부품간 결합위치 등에 관한 상세한 정보를 포함하고 있다”고 밝혔다.
두산인프라코어는 공정위 조사 과정에서 이노코퍼레이션에 대한 기술자료 요구 목적을 ‘에어탱크의 균열원인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자료 요구 당시 직전 1년간 이노코퍼레이션이 납품한 3천대 가운데 에어탱크에 하자가 있었던 것은 단 1건에 불과했다. 또 하자 내용도 에어탱크 균열이 아닌 에어탱크 지지대에 부착하는 용접 불충분이었다.
또 두산인프라코어는 굴삭기 부품인 냉각수 저장장치를 납품하는 하도급업체인 코스모이엔지가 2017년 7월 납품가격 인상을 요청하자, 코스모이엔지의 냉각수 저장탱크 제작도면 38장을 5개 사업자에게 전달해 납품 가능성을 타진했다. 공정위는 두산인프라코어와 5개 업체 간의 거래는 성사되지 않았으나 도면 전달 행위는 기술자료 유용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또 두산인프라코어는 2015년부터 2017년까지 3년간 30여개 납품업체로부터 승인도라는 382건의 기술자료를 요구하면서 법에서 정한 기술자료 명칭, 요구 목적, 요구일과 제공일, 비밀유지 방법 등이 적힌 서면으로 하지 않았다. 공정거래법상 정당한 사유없이 기술자료를 요구하거나 유용하면 안되고, 정당한 사유가 있어 기술자료를 요구하더라도 서면으로 요구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공정위는 “대기업의 기술유용은 중소기업이 애써 개발한 기술을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고 중소기업의 혁신 유인을 저해함으로써 산업 경쟁력 약화를 초래하는 대표적 갑질 사례”라면서 “이번 사건을 통해 기술유용에 대해 엄정하게 대처하겠다는 공정위의 의지를 분명히했다”고 밝혔다.
곽정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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