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사회를 중시한 드러커 경영철학을 담은 기업평가 기준을 통해 주주 이익 극대화를 위해 단기 재무성과만 중시하는 주주자본주의의 대안을 제시하고자 했습니다.”
릭 워츠만 ‘제대로 기능하는 사회를 위한 케이에이치 문(KH MOON) 센터’(이하 센터) 소장은 24일 서울 그랜드 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한겨레>와 만나 현대 경영학의 ‘그루’로 불리는 고 피터 드러커 교수의 경영철학을 반영해 미국 기업의 순위를 매긴 ‘경영을 잘한 기업 톱 250’(Management Top 250·이하 ‘드러커 랭킹’)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소개했다. 지난해 말 처음 발표된 ‘드러커 랭킹’의 250개 기업 중에서 1위는 아마존, 2위는 애플, 3위는 알파벳(구글 지주회사)이 차지했다.
센터는 드러커 랭킹 산정과 평생학습 확산을 위해 드러커연구소가 지난해 초 설립했는데, 세계적으로 드러커 경영철학의 보급 및 실천에 기여해온 문국현 한솔섬유 대표의 이름을 땄다. 드러커연구소는 드러커의 유지를 잇기 위해 2007년 미국 클레어몬트 대학원 대학교에 설립됐다. 드러커연구소의 소장을 역임하기도 했던 워츠만 소장은 23일부터 한국에서 열린 ‘국제노동고용관계학회 서울대회’에 강연자로 초청됐다.
릭 워츠만 전 드러커연구소 소장이 24일 오후 서울 삼성동 그랜드인터콘티넨털호텔에서 <한겨레>와 만나 이야기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미국 경제지 <월 스트리트 저널>이 지난해 말 ‘드러커 랭킹’ 발표를 5쪽에 걸쳐 대서특필했다. ‘포천 500’, ‘포브스의 가장 존경받는 기업’ 등 기존 기업평가와의 차이점은?
“다른 기업 랭킹은 경영성과 중 특정분야를 중심으로 본다. 일례로 포천 500은 기업 규모나 매출이 기준이다. 드러커 랭킹은 드러커 교수가 생전에 저술한 39권의 저서에서 설파한 기업 경영의 15개 핵심 원칙에 기반을 둬 고객 만족, 종업원 몰입 및 개발, 혁신, 사회책임, 재무 건전성 등 다섯 가지 범주로 평가해 선정한다. 드러커 교수는 기업은 인체와 같다고 강조했다. 순환계, 골격계, 근육계 등 여러 기관이 잘 기능해야 인체가 건강한 것처럼, 기업도 다섯 가지 범주가 잘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것이다.” (인터뷰에 동석한 문국현 대표는 5가지 범주를 로켓에 달린 5개의 엔진에 비유했다. 한 개의 엔진이라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기업이라는 로켓은 제대로 날지 못하거나 목적지까지 도달할 수 없다는 뜻이다.)
―드러커 랭킹을 구상한 이유가 있나?
“주주 이익 극대화를 이유로 단기 재무성과만 중시하는 주주자본주의의 대안을 모색하자는 취지에서 5년 전부터 시작했다. 많은 글로벌 기업이 직원에게 충분히 투자하지 않고, 공동체나 환경에 제대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경향이 있다. 기업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존중하고 장기 발전을 도모할 수 있도록 투자자나 경영자들에게 신뢰할 수 있는 기준을 제공하는 게 우리의 사회적 임무라고 생각했다.”
―드러커 경영철학을 압축해 소개해 달라.
“항상 인간을 중심으로 생각했다. 경영의 목적은 단순한 영리추구 차원을 뛰어넘어 사람이 존엄성을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업이라는 조직을 효과적으로 잘 경영하면 사회가 건강하고, 그렇지 못하면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다. 경영이 ‘제대로 기능하는 사회’를 만드는 데 중요하다는 뜻이다. 드러커는 경영학의 대가로 불리지만, 동시에 사회철학자였다. 경영학을 인문학으로 발전시켰다.”
―드러커가 말한 경영의 15개 핵심 원칙은 무엇인가?
“드러커 랭킹은 기업의 유효성(effectiveness)을 종합적으로 측정하는 수단이다. 드러커 교수는 유효성을 ‘기업이 옳은 일을 잘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15가지 원칙은 기업이 해야 할 옳은 일을 담고 있다. 일례로 소비자를 만족하게 하는 것은 모든 사업의 임무이자 목적이다. 종업원 몰입·개발과 관련해서는 기업은 직원들에게 비전과 사명감을 심어줘야 하고, 자신이 속한 공동체와 사회에 의미 있는 기여를 하려는 욕구를 충족시켜줘야 한다. 또 사회책임과 관련해 경영자는 제품과 서비스로 공공의 선을 진정으로 추구하는 것이 자신의 주된 관심이어야 한다고 설파했다.”
―15개 핵심 원칙을 37개 지표로 나눠 평가했다고 하는데?
“예를 들어, 기업의 고객만족도를 측정해서 제공하는 전문기관들이 많다. 각 기관이 제공하는 데이터들을 잘 살펴서 유의미한 것들만 채택했다. 또 데이터 수집도 1개의 기관에 의존하지 않고, 복수의 기관을 통해 확보했다.”
―드러커 랭킹의 1위는 아마존이다. 하지만 포브스의 가장 존경받는 기업 랭킹에서는 9위(미국 기준·전 세계 기준으로는 25위)에 불과하다. 차이가 나는 이유는?
“아마존은 사회책임 범주의 점수가 40점으로 하위 15% 수준에 그쳤다. 하지만 혁신 범주에서 압도적인 1위를 한데 힘입어 5가지 범주의 종합점수에서 1위를 했다. 아마존은 매우 혁신적인 기업이지만 사회책임 분야에서는 ‘레드카드’를 받은 셈이다. 아마존의 사회책임 점수가 낮은 것은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근무조건이 안 좋은 게 큰 영향을 미쳤다. 아마존의 재무적 성과가 아무리 좋아도 이런 문제를 개선하지 않으면 기업으로서 지속 가능하지 않다. 애초 센터가 평가한 전체 기업은 693개인데, 5개 범주에서 모두 상위 15%에 속한 기업은 3M, 알파벳, 애플, 나이키 등 6개 뿐이다. 기업 랭킹을 발표할 때 이런 유의사항을 함께 공개하고 있다.”
―한국의 1위 기업으로 불리는 삼성전자도 아마존과 비슷한 상황이다. 매출과 이익 등 재무적 성과는 뛰어난데 사회책임 분야의 평가가 낮다. 어떤 얘기를 해주고 싶은가?
“삼성전자의 스캔들(뇌물제공) 뉴스는 언론을 통해 알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소비자들은 사회책임을 잘 이행하는 기업의 물건은 사고, 그렇지 않으면 사지 않는 경향으로 점차 나아가고 있다. 따라서 사회책임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기업은 장기적으로 재무적 성과에도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 투자자들도 사회책임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미국의 경우 사회책임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는 기업은 인재가 몰리지만, 그렇지 않은 기업은 기피한다.”
―드러커 랭킹에 대한 미국 현지 반응은?
“많은 기업들의 주목을 받았다. 높은 순위에 오른 기업들은 자랑스러워했고, 순위가 낮은 기업들은 불만도 나타냈다. 일부 기업은 다음에 순위를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왔다.”
―앞으로 계획은?
“두 번째 순위를 매기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또 투자기관과 협업을 통해 드러커 랭킹 상위 100개 기업의 주가변동이나 수익률을 추정하는 상장지수펀드(ETF)를 개발해 증시에서 사고팔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한국 기업을 상대로 드러커 랭킹을 매기는 게 가능할까?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와 유럽의 기업들을 대상으로 할 수 있다면 너무 좋을 것이다. 관건은 믿을 수 있는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이다. 미국 기업 만을 대상으로 작업할 때도 어려움이 있었다. 미국 밖의 기업에 적용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경우 뉴패러다임센터(대표 문국현)나 한겨레신문 같은 믿을 수 있는 파트너와 협업을 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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