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5일 노제를 마치고 영결식이 열릴 서울 광화문광장으로 향하는 고 백남기 농민의 운구 행렬. 연합뉴스
2016년 11월5일 경찰 물대포에 맞아 숨진 백남기 농민 장례식이 열렸다. 사인을 둘러싼 논란으로 쓰러진 지 약 1년, 숨진 지 41일 만에 치러진 장례였다. 염습과 입관 등 실질적 일을 맡은 곳은 대형 상조회사가 아니라 협동조합이었다. 마을에서 상이 나면 주민들이 함께 돕는 품앗이 정신을 살려 만든 한겨레두레협동조합연합회다. 김근태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리영희 선생 등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애쓴 인사들의 마지막 가는 길 또한 이곳에서 뒷바라지했다. 한겨레두레에 가족과 사회의 믿음이 그 이유다.
영리 목적의 일반 상조회사들과 달리 협동조합은 조합원의 상호복리와 부조가 존재 이유다. 협동조합인 한겨레두레에 장례는 돈 버는 기회가 아니라 서로 도와 해결해야 할 과제다. 돌아가신 이에 대한 정성과 바가지를 씌우지 않는 정직이 기본 정신이다. 지나치게 상업화하고 폭리가 일상화한 장례문화를 개선하고 공동체 정신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 한겨레두레의 설립 취지다. 이웃과 마을이 함께 치르던 장례야말로 협동조합 정신이 꼭 필요한 분야다. 협동조합기본법이 만들어지기 전인 2009년 출범한 한겨레두레가 지금까지 1500여 건의 장례를 치렀으나 유가족 불만이 거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상을 치러본 조합원들은 관과 수의 등 장례 물품을 실비로 제공해줘 장례비를 몇백만원씩 줄일 수 있었다고 말한다.
‘바가지 없는 장례’라는 입소문을 타고 꾸준히 조합원을 늘려나가던 한겨레두레가 최근 큰 암초에 부딪혔다. 당국의 규제로 2018년 현재 3억원인 자본금을 2019년 초까지 15억원으로 늘려야 한다. 자본금이 증액되지 않으면 자칫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른다. 협동조합이 거액의 자본금을 요구받는 배경에는 복잡한 사정이 자리잡고 있다. 무엇보다 공정거래위원회 등 당국이 협동조합 특수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일반 상조회사와 같은 잣대를 적용한 때문이다. 협동조합의 ‘장례 품앗이’가 영리 목적의 상조업과 마찬가지로 ‘선불식할부거래’ 틀에 묶여 과도한 규제를 받게 된 것이다.
업계 구조조정 가속화
한겨레두레는 협동조합에 기본적으로 적용되는 출자금(1만원 이상)과 함께, 달마다 3만원씩 조합비를 받아 적립한다. 조합원 가족에게 상이 나면 장례 뒷바라지를 하고 적립한 조합비를 장례비로 쓴다. 조합원 복리가 목적이기에 ‘장례 과잉 소비’를 막기 위해 직거래 공동구매 방식으로 장례 물품을 사고 적정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때문에 한겨레두레는 이 사업을 ‘상포계’라고 부른다. 전통적인 상포계는 ‘초상 때 드는 비용을 서로 도와 마련하기 위하여 모은 계’라는 뜻으로 국어사전에도 올라 있다.
문제는 당국의 규제 일변도 정책에서 비롯했다. 상조회사들이 난립하고 부실·비리가 잇따라 규제가 불가피했지만, 그 칼날을 협동조합에도 들이댄 것이다. 당국은 조합원 상호부조를 위한 공제사업인 상포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상포계를 영리 목적의 상조업과 마찬가지의 ‘선불식할부거래’로 규정하고, 최소 자본금 3억원을 보유한 ‘상법상 회사’ 형태를 요구했다. 2012년 말 협동조합 기본법이 발효되는 등 협동조합과 사회적기업의 활성화를 위한 여건이 조성되는 상황에서 정책은 뒷걸음친 것이다.
한겨레두레는 상포계 사업을 중단할 수 없어, 2014년 6월 협동조합이 100% 출자한 주식회사 한두레를 설립하고 선불식할부거래업 등록을 마쳤다. 조합 운영과 조합비 징수, 장례 서비스 제공 등 모든 일은 협동조합이 하고 주식회사 사업인 것처럼 형식만 갖췄다. 이후 한겨레두레는 다른 협동조합들과 손잡고 협동조합연합회가 일반 조합원에게 소액대출과 상호부조 사업을 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해줄 것을 촉구해왔다. 협동조합 공제사업이 활성화하면 기업의 허울을 쓰지 않아도 상포계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협동조합기본법이 발효된 지 6년이 지나도록 당국은 제도 정비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상조회사 규제만 강화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15년 상조회사 부실 운영에 따른 소비자 피해를 막는다는 취지에서 상조업체 자본금을 15억원으로 올렸다. 이전부터 상조업을 해오던 곳은 3년의 유예기간을 뒀다. 2019년 1월23일까지 자본금을 늘리지 못하면 퇴출당한다. 한때 300곳 가까이 되던 상조업체는 지속적인 등록 요건 강화로 절반 수준인 158개 업체로 줄었다. 공정위에 따르면, 지금까지 자본금 15억원 증액 요건을 충족한 업체는 43곳에 지나지 않는다. 2019년 초면 50곳 안팎의 업체만 남을 전망이다.
공정위는 최근 영세업체 폐업에 따른 소비자 피해를 막기 위해 ‘내상조 그대로’ 서비스를 도입했다. 문 닫는 업체의 가입자를 다른 대형 업체가 넘겨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80만 명으로 추산되는 영세업체 가입자들이 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6개 업체로 옮겨갈 것으로 보인다.
귀 닫은 공정위
한겨레두레는 협동조합의 취지와 특수성을 인정해 협동조합도 선불식할부거래업을 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을 여러 차례 공정위에 촉구해왔다. 협동조합이 상호부조 차원에서 이런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하면 거액의 자본금 같은 요건은 적용받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정위는 상포계 협동조합이 한 곳뿐이라는 이유로 난색을 보인다. 상포계를 협동조합의 정당한 공제사업으로 인정하면 되는데도 마치 무슨 특별한 예외를 요구하는 듯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한겨레두레는 조합원에게 받은 돈의 50%를 금융기관에 예치하고 회계 내용을 공개하는 등 다른 ‘사업자 의무사항’은 앞장서 지켜왔다.
한겨레두레는 법 개정을 통해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는 방안도 모색해왔다. 협동조합에는 그 취지에 맞는 규제 기준을 적용하도록 하는 조항을 선불식할부거래법에 추가하는 방식이다. 주식회사의 건전성 기준이 자본금이라면, 협동조합은 출자금과 조합원 수가 거기에 해당한다. 그래서 법률 개정안은 협동조합에 대해선 ‘출자금 5억원과 조합원 총수 3천 명’을 요건으로 하는 내용을 담았다. 사회적기업진흥원을 통해 법 개정을 적극적으로 촉구해왔으나, 의원들의 소극적 태도와 지자체 선거로 별 진전이 없었다.
한겨레두레가 자본금을 15억원으로 늘리는 방안을 고민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조합원의 자발적 의사로 내는 출자금을 크게 늘려 주식회사의 자본금을 만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불필요한 오해를 살 우려도 있다. 차선책으로 신용협동조합의 투자를 받는 방법도 검토 중이다. 2018년 하반기 국회에 제출될 것으로 보이는 신협법 개정안에는 신협의 사회적 금융 기능을 강화하는 조항이 들었다. 신협이 사회적기업과 협동조합 등에 자기자본 20% 이내에서 투자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다.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한겨레두레에 우호적인 신협들의 투자를 받아 자본금 기준을 맞추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
무연고 사망자 김아무개씨를 위해 서울 돈의동 사랑의쉼터와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이 마련한 추모식. 한겨레두레협동조합 제공
협동조합 활성화가 길
그러나 협동조합에 이런 식의 자본금 증액은 또 한 번의 편법일 뿐이다. 지원과 육성의 대상인 협동조합의 고유 기능이 제도적 미비와 당국의 무차별 규제로 제약받는 환경을 해소하는 것이 필요하다. 협동조합 관계자들은 “조합원 대상 소액대출과 상호부조는 하루빨리 허용돼야 한다”며 “법 개정이 필요 없는 기획재정부 장관 허가사항인데도 협동조합기본법 발효 6년이 지나도록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예금과 대출 등 금융거래를 하는 신용협동조합의 자본금 기준이 3억원이란 점에 비춰봐도 상포계 협동조합에 자본금 15억원 요구가 얼마나 과도한지는 쉽게 알 수 있다.
공정위의 자본금 규제가 영세업체 퇴출에는 효과가 있지만, 소비자 불신의 더 큰 원인인 ‘장례 바가지’를 줄이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은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한 대목이다. 전통적 ‘효 문화’를 악용해 유가족에게 고가의 장례 물품 구매를 강요하거나 뒷돈을 받고, 물품업체한테 리베이트를 챙기는 등 상조업체의 고질적 비리는 좀체 줄어들지 않고 있다. 임종한 한국사회적경제연대회의 상임대표는 “진입장벽을 높여 소비자 피해를 줄이겠다는 취지의 자본금 증액은 정말 중요한 소비자 참여를 막는 족쇄가 된다”며 “소비자가 주인인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에 길을 열어주거나 문턱을 낮추는 것이 피해 예방은 물론 경제정의 차원에서도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기업 규모가 아니라 신뢰에 기반을 둔 장례가 가능해야 소비자가 상조업체의 바가지 상혼에 무방비로 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한겨레두레가 사회적 사업을 지속해온 것도 협동조합 장례의 필요성을 더해준다. 한겨레두레는 2015년 서울 종로구와 함께 장례조차 치르지 못한 돈의동 쪽방촌 홀몸어르신들의 추모식을 열었다. 이를 계기로 이 지역에는 홀몸어르신을 위한 주민장례위원회가 구성됐다. 얼마 전에는 서울시와 협약을 맺고, 무연고자와 기초수급대상자 등을 위한 공영장례 업무도 시작했다. 충남 아산시 설화산 민간인 학살 유해 발굴 때는 끌려갈 때처럼 트럭에 실려 운반될 뻔한 학살 피해자들 유해를 리무진 5대로 옮겼다. 조합비 1%를 적립해 만든 공동체기금 일부를 그 비용으로 썼다. 비싼 대학병원 영안실과 장례식장 대신 돌아가신 분의 집이나 근처 커뮤니티 공간에서 치르는 ‘작은 장례’와 일회용품을 쓰지 않는 장례 등도 실행하고 있다.
상조 서비스 가입자는 해마다 늘어 2017년 3월 500만 명을 넘어섰다. 단속과 규제로 상조업체의 외형적 부실을 막는 것으로는 한계가 많다. 지나친 소비자 부담을 덜려면 더 나은 대안을 장려해 장례문화를 개선하는 것이 급선무다. 협동조합기본법은 “재화 또는 용역의 구매·생산·판매·제공 등을 협동으로 영위함으로써 조합원의 권익을 향상하고 지역사회에 공헌하고자 하는 사업조직”이라고 협동조합을 규정한다. “품앗이 정신에서 출발한 협동조합은 시민의 장례 부담을 줄이고 바람직한 장례문화를 조성하는 데 가장 알맞은 조직”이라고 김경환 한겨레두레 대표는 말했다.
박중언 기자
parkj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