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7일 서울 중구 서울시 시민청 활짝라운지에서 열린 인터넷 전문은행 규제혁신 현장 간담회를 마친 후 케이뱅크 부스에서 스마트폰을 이용해 계좌개설 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 듣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7일 두번째 규제혁신 현장방문에서 인터넷 전문은행 은산분리 완화 추진을 공식화했다. 반면 참여연대·경실련 등 시민단체들은 같은 날 국회에서 토론회를 갖고 반대 의사를 재확인했다. 정부 정책에 대해 시민단체가 이견을 보이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고, 이상하게 볼 일도 아니다. 정부는 낙후된 은행산업 발전, 4차산업혁명과 핀테크 활성화, 고용 창출 등 규제완화 효과를 강조한다. 시민단체는 산업자본 사금고화 등의 부작용을 우려한다. 양쪽 모두 산업자본의 은행 지배를 차단하는 것에 원칙적으로 동의하면서도 이견을 보이는 것은 정책의 우선순위에 대한 시각차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앞으로 보다 깊은 토론을 통해 접점을 찾을 부분이다.
하지만 명백한 사실을 놓고 서로 엇갈린 주장을 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7일 국회 토론회에서 은산분리 완화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의 2017년 대선공약을 포기하는 것으로, 금융이론이나 경제이론으로 모두 납득이 안간다”고 비판했다. 반면 윤종원 청와대 경제수석은 하루 전인 6일 경제신문과의 공동 인터뷰에서 동일사안에 대해 “대선공약 파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180도 다른 주장을 폈다.
과연 누가 사실과 다른 얘기를 하는 것일까? 답은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시절 발표한 대선공약집에 있다. 공약집 120쪽을 보면 ‘성장동력이 넘치는 대한민국’ 정책의 일환으로 ‘금융산업 구조 선진화 추진’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세부적으로 “인터넷 전문은행 등 각 업권에서 현행법상 자격요건을 갖춘 후보가 자유롭게 진입할 수있는 환경 조성”이라고 밝히고 있다. 전성인 교수는 “‘현행법상 자격요건을 갖춘 후보’라고 명시한 것은 지금의 은산분리 규정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박상인 서울대 교수도 “이 문제는 더불어민주당이 야당 시절인 박근혜 정부 때 당론으로 반대했던 것”이라며, 박근혜 정부가 (민주당의 반대로) 못했던 일을 문재인 정부가 재추진하는 모순적 상황을 꼬집었다.
문제는 청와대의 거짓말이 이것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청와대는 6일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삼성 방문과 관련해 “청와대가 ‘재벌에 투자와 고용을 구걸하거나 팔 비트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우려를 전달했다는 언론보도는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다. 애초 이 사안은 <한겨레>가 지난 3일 처음 보도한 뒤 대다수 언론들이 확인취재를 통해 동일하게 보도한 내용이다. 그 결과 기재부는 삼성으로부터 투자·고용 계획을 받아 직접 발표하려던 계획을 취소했고, 김 부총리는 이례적으로 장문의 입장문을 통해 유감을 표명했다. 청와대는 이에 대해 “김 부총리의 삼성 방문 때 투자 계획 발표 시기와 방식에 대해 청와대와 의견조율이 있었다”고 얼버무렸다. 청와대의 해명은 전형적으로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는 행위’다. 정부 내 갈등설 등 논란이 확산되는 것을 막으려는 고충은 이해되지만, 사실과 다른 해명은 옳지 못하다.
청와대가 사실과 다른 얘기를 자꾸 하는 것은 정책이나 의사결정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졌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상황이 바뀌면 대선공약도 포기하거나 바꿀 수 있다. 하지만 은산분리 같은 주요 사안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그 이유를 명확히 설명하고 국민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또 정부가 혁신성장을 앞세워 재벌과 직접 만나는 것이 일부에서 우려하듯 투자·고용을 재벌에 의존하고, 재벌개혁을 포기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대통령이 당당히 밝혀야 한다. 만약 그런 과정 없이 그냥 따라오라고 한다면, 정책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힘들다. 박근혜 대통령이 민심의 경고를 무시하고 독선으로 일관하며 이른바 ‘불통 대통령’으로 불린 것과 다를 바 없다.
정부여당은 최저임금 인상과 소득주도 성장 정책에 대한 비판, 고용과 분배 지표 악화, 민생경제의 부진 등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전열을 재정비할 필요는 있지만, 국정운영의 페이스를 잃고 허둥대서는 안된다. 이제 겨우 5년 임기 중에서 4분의 1이 지났을 뿐이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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