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1차 협력사인 엠에스오토텍에 부품을 납품하다가 지난 5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가진테크 남창식 사장의 부인 손미순씨가 지난 8일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
“가진테크 사장의 자살은 사실상 대기업 ‘갑질’이 낳은 타살입니다.”
현대·기아자동차의 2차 협력사로 자동차 도어 부품을 15년간 납품해온 가진테크의 남창식(58) 사장은 지난 5월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하지만 유족들은 엠에스오토텍(이하 엠에스)의 ‘갑질’에 의한 억울한 죽음이라고 주장한다. 엠에스는 연간 매출이 7천억원인 현대기아차의 1차 협력사로, 이양섭(81) 회장은 현대차 사장 출신이다.
엠에스는 5월초 가진테크에 발행한 어음 중 만기가 돌아오지 않은 부분(2억4천만원)에 대해 은행에 피사취어음을 신고했다. 피사취어음은 발행자(채무자)가 계약불이행 등의 이유로 지급을 거절한 어음이다. 일반적으로 피사취어음을 받은 사람(채권자)은 자금거래가 끊기면서 어려움을 겪게 된다. 남 사장의 부인인 손미순씨는 “어음발행은 엠에스가 오랜 갑질에 따른 손실을 보전하기 위한 것으로 차입증과 상환계획서도 없이 이뤄졌다“면서 “지급거절 사유가 없었다”고 부당성을 주장한다.
엠에스의 갑질은 이후 더 기승을 부렸다. 가진테크와의 거래중단에 대비해 이미 다른 업체로부터 부품을 공급받을 준비를 끝냈다는 날벼락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남 사장은 거래유지 보장을 요구했으나 반응은 냉담했다. 오히려 가진테크에 부품 생산에 필요한 금형의 반납과 이미 지급한 지원금의 상환을 요구했다. 남 사장은 모든 요구를 수용할테니 제발 거래만 계속할 수 있게 해달라고 매달렸지만 소용 없었다. 엠에스는 일방적으로 거래를 중단했다. 손씨는 “5월 한달 동안 식사도 거의 못한채 피가 마르고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는 상황이 이어졌다”고 말했다. 한때 50명의 직원이 연간 100억원에 가까운 매출을 올렸던 가진테크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게 됐다. 남 사장은 결국 자포자기한 채 가족들에게 마지막 글을 남겼다. “지난 15년간 무던히도 힘들고 괴로웠던 날의 연속이었다 … 아무것도 남겨둔 것 없이 떠나려니 가슴이 미어지고 속이 터지는구나 … 살다가 힘들면 나를 원망해라.”
엠에스의 거래중단은 지난해말부터 치밀하게 준비한 사전계획에 따른 것이었다는 지적을 받는다. 남 사장은 오랜 갑질로 경영난이 심해지자 엠에스에 손실 보전을 요청했다. 유족들은 매년 납품단가를 일방적으로 깎는 ‘납품단가 후려치기’를 대표적 갑질로 꼽는다. 금형 수선비를 가진테크에 부담시킨 것도 수급사업자의 이익을 부당하게 침해·제한하지 못하게 한 하도급법의 ‘부당특약 금지’ 위반에 해당한다.
엠에스는 8억원의 지원을 약속했고, 올해 1~3월 5억원을 어음으로 지급했다. 엠에스는 앞에서는 도움을 주는 것처럼 했지만, 뒤로는 등에 비수를 꼽기 위한 준비를 했다. 지난 2월 가진테크 몰래 부품 생산에 필요한 금형 제작을 다른 중소기업에 의뢰했다. 손씨는 “엠에스는 4월말에 금형 제작을 끝냈고, 5월초 피사취어음 신고를 하고, 5월말에 거래를 끊었다”고 말했다. 엠에스가 15년간이나 충실히 부품을 공급해온 가진테크를 사지로 몰아넣은 이유는 무엇일까? 유족들은 “다른 부품업체들에 ‘봐라, 까불면 이렇게 된다’고 보여주기 위한 ‘본보기’ 차원”이라고 주장한다.
현대자동차 1차 협력사인 엠에스오토텍이 가진테크 몰래 제작한 금형을 납품했지만 대금을 한푼도 못받은 에스에이치메탈엔지니어링의 차승휘 대표가 지난 8일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엠에스의 갑질은 그것에 그치지 않았다. 가진테크 몰래 제작한 금형의 납품 대금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다. 엠에스는 금형제작을 포엠에 맡기고, 포엠은 그 일부를 다도에게, 다도는 다시 그 일부를 에스에이치메탈엔지니어링(이하 에스에이치) 등 3개 금형전문업체에 하청을 줬다. 에스에이치 등은 지난 4월말 금형을 납품했다. 하지만 두달이 넘도록 대금 지급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에스에이치 차승휘(33) 사장은 “가진테크 몰래 금형을 만든 것은 전혀 몰랐다”면서 “엠에스는 포엠에 납품대금의 85%를 주고, 포엠은 다도에게 60%를 지급했는데, 다도는 에스에이치에 4억원의 대금을 한푼도 안줬다”고 말했다. 나머지 2개 금형전문업체도 에스에이치와 사정이 똑같다.
이는 다단계 하도급 갑질 구조를 적나나하게 보여준다. 차 사장은 “다도는 자신들도 포엠으로부터 돈을 제대로 못받았다고 변명하다가, 이제는 전화도 안받는다. 결국 시간을 끌다가 떼어먹겠다는 속셈이다”고 주장했다. 에스에이치는 공장가동이 중단된 뒤 법원에 납품대금 지급명령을 신청했다. 경주지원은 7월30일 지급명령을 내렸다.
가진테크와 에스에이치는 최근 자동차산업 납품업체들의 어려움이 더욱 심해졌다고 입을 모은다. 차 사장은 “완성차업체의 성장세가 멈춘 뒤 하도급거래의 말단에 위치한 2차 이하 협력사에 모든 부담이 전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손씨도 ”현대차에 1차 협력사의 갑질을 호소하면 자신들은 몰랐다고 변명한다”면서 “그러나 현대차도 2차 협력사를 직접 실사해서 이익이 예상보다 많으면 단가를 깎고, 적자가 나면 재무구조가 안좋은 회사와는 거래가 어렵다고 으름장을 놓는다“고 털어놨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대-중소기업 간 상생경영이 더욱 강조되지만, 현장에서는 체감이 안되고 있다. 오히려 자동차 부품업체들이 한계상황에 몰리면서 머지 않아 자동차산업의 기반이 붕괴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차 사장은 “자동차산업은 소수의 완성차업체들이 수많은 중소기업으로부터 부품을 납품받아 조립 생산하는 피라미드 구조인데, 중소기업들이 적정 마진을 보장받지 못한채 무더기로 쓰러지는 현 상황을 계속 방치하면 결국 현대기아차 같은 완성차업체도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손씨는 논란이 되고 있는 최저임금 인상과 관련해 “최저임금이 올라도 납품단가에 반영되어 정당한 마진이 보장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는 하도급법 개정을 통해 지난 7월부터 인건비 등 각종 경비가 오르면 하도급업체가 대기업에 납품대금 인상을 요청할 수 있도록 했다.
가진테크는 5월말 최후수단으로 공정거래위원회 산하 공정거래조정원에 분쟁조정을 신청했다. 하지만 두달의 처리기한이 끝나는 15일까지 가시적 성과는 없다. 조정원은 “법위반 혐의를 입증할 객관적 증거가 부족해, 자율 합의를 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진테크 사장의 자살로 증거자료 제시가 여의치 않은 점도 있지만, 조정원의 소극적 태도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서면계약서 미교부와 금형수선비 전가는 명백한 하도급법 위반이다. <한겨레>는 오토텍의 입장을 듣기 위해 수차례 전화와 문자 연락을 시도했으나 답변을 듣지 못했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