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대책의 유력한 카드 중의 하나로 제시됐던 ‘브랜드가 다른 편의점 간 출점거리 제한 방안’이 정부와 업계간 의견이 엇갈리며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현행 가맹사업법은 가맹본부가 가맹점주의 영업지역을 보호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공정위는 이에 따라 2012년 브랜드가 같은 편의점은 250m 이내 신규 출점을 금지하는 ‘모범거래기준’을 마련했으나, 2014년 규제완화 바람 속에 폐지됐다. 대신 편의점 가맹본부가 내부규정으로 출점거리 제한을 시행하되, 상권 특성에 따라 제한거리를 탄력적으로 적용중이다. 일례로 서울 도심의 경우 출점거리 제한을 250m 이하로 짧게 적용하고, 지방 소도시는 250m 이상으로 넓게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브랜드가 다른 편의점 간에는 출점거리 제한이 아예 없다. 편의점 업계가 1994년 80m 이내 근접 출점을 금지하는 자율규약을 시행했으나, 공정위가 2000년 소비자 피해가 우려된다며 부당한 공동행위(카르텔)로 시정조처를 내리면서 폐기됐다. 편의점 업계는 이후 지나친 근접 출점으로 인한 출혈 경쟁으로 편의점주의 어려움이 커졌다고 지적한다. 편의점 수는 2012년 2만4500여개에서 현재 4만여개로 급증했다.
지에스(GS)25·씨유(CU) 등 5개 편의점 가맹본부 모임인 편의점산업협회는 7월 말 공정위에 업계 자율규약으로 브랜드가 다른 편의점 간 출점거리를 제한하는 게 가능한지 유권해석을 의뢰했다. 공정거래법(19조)은 부당하게 경쟁을 제한하는 공동행위를 금지하지만, 산업구조 조정, 중소기업 경쟁력 향상 등의 목적으로 공정위 인가를 받으면 예외를 인정한다. 협회 간부는 16일 “과당경쟁의 폐해로부터 편의점주들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면서 “공정위가 가능하다고 하면, 후발업체인 이마트24까지 포함해서 자율규약을 만들어 공정위 심사를 신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가맹사업법상 가맹사업자의 자율규약은 공정위 승인을 받게 돼있다.
공정위는 아직 편의점협회에 공식 답변을 하지는 않았지만, 부정적인 반응이다. 공정위 기업거래정책국 간부는 “과거처럼 획일적으로 출점거리를 제한하는 것은 카르텔에 해당돼 곤란하다”면서 “카르텔이 아닌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확실히 선을 그었다. 공정위가 자영업자 보호 필요성에 동의하면서도 출점거리 제한에 신중한 것은 2000년 시정조처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실제 출점거리 제한이 경쟁제한으로 이어져 소비자 피해나 불편을 낳을 위험성도 있다. 편의점 업계에서는 공정위가 허용해도 검찰이 사후에 “공정위가 틀렸다. 부당한 공동행위에 해당한다”며 처벌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공정위는 현재 공정거래법과 관련된 전속고발권(공정위의 고발이 있어야 검찰이 공소제기를 할 수 있음) 폐지 방안을 검찰과 협의 중이다.
편의점 업계에서는 법으로 출점거리 제한을 허용하는 것이 해법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업계 임원은 “현실적으로 카르텔이 아닌 방식으로 출점거리를 제한하는 방안은 찾기 힘들다”면서 “국회가 국민적 공감대를 확인해서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게 근본 해법”이라고 말했다. 2013년 가맹점의 영업지역 보호를 위해 가맹사업법을 개정할 때도 일부에서 경쟁제한을 이유로 반대했으나, 경제민주화 흐름을 타고 성사됐다.
곽정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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