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공정위원장(오른쪽)과 박상기 법무장관이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공정거래법 전속고발제 합의문 서명식’에 참석해 서명한 합의문을 전달하고 있다. 공정위 고발로 검찰 기소가 가능한 전속고발제가 폐지되면, 검찰 단독으로도 공정거래 사건 관련 수사가 가능해진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앞으로 건설사들의 4대강 담합사건 같은 중대한 담합행위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제가 폐지돼, 공정위의 고발이 없이도 검찰이 바로 수사가 가능해진다. 공정위는 대규모유통업·가맹사업·대리점법 등 유통3법과 표시광고법도 전속고발제를 전면 폐지하고, 하도급법은 기술탈취에 대해 부분 폐지하기로 해, 사실상 대기업 ‘갑질사건’의 상당부분이 공정위 고발과 상관없이 검찰 수사가 가능해진다.
김상조 공정위원장과 박상기 법무장관은 2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한 ‘공정거래법 전속고발제 폐지 합의안’에 서명했다. 김 위원장과 박 장관은 “건전한 시장경제 발전과 소비자 후생 증진에 공감하고, 경성(중대한) 담합에 대한 전속고발제 폐지와 자진신고제(리니언시제도)의 차질없는 운영에 협조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전속고발권은 공정거래 사건의 경우 공정위의 고발이 있어야 검찰의 기소가 가능한 제도여서, 전속고발권 폐지는 공정위 공정거래 사건에 대한 독점적 법집행 권한이 폐지됐음을 의미한다. 경제민주화 요구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대기업의 갑질이 여전하고 경제검찰로 불리는 공정위의 기업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 논란 등이 전속고발권 폐지 추진의 배경이 됐다.
김상조 공정위원장(오른쪽)과 박상기 법무장관이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공정거래법 전속고발제 합의문 서명식’에 참석해 서명한 합의문을 들어 보이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공정위와 법무부는 전속고발제 폐지 대상을 공정거래법 19조의 부당한 공동행위(카르텔) 가운데 가격담합·공급제한·시장분할·입찰담합 등 4가지 유형으로 합의했다. 김 위원장과 박 장관은 “가격이나 입찰담합 등 중대한 담합은 신규 사업자들의 시장진입 기회를 박탈해 공정경쟁을 저해하고, 그로 인한 비효율을 소비자에게 그대로 전가하는 행위로서 형사제재를 해서 근절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공정위와 법무부는 은밀하게 이뤄지는 담합을 적발하기 위해 운영하는 ‘자진신고제’가 전속고발제 폐지로 위축되지 않도록 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공정거래법에 형벌감면 근거규정을 마련하고, 검찰도 감경기준을 신설하기로 했다. 공정위는 지금까지 담합 자진신고자에 대해서는 과징금을 감면해주고, 검찰고발도 하지 않았다.
또 자진신고 접수창구를 지금처럼 공정위로 단일화하되, 두 기관이 실시간으로 정보를 공유하기로 했다. 이어 국민경제에 심대한 피해를 초래하거나 국민적 관심, 사회적 비난 가능성이 큰 자진신고 사건은 검찰이 우선적으로 수사에 착수하기로 했다. 담합사건의 70~80%가 리니언시제도를 활용해 처리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앞으로 4대강 담합사건 등 주요 사건은 대부분 검찰이 공정위에 앞서 수사를 할 전망이다. 검찰이 우선 조사하지 않는 나머지 자진신고 사건은 공정위가 먼저 조사해서, 13개월 안에 조사를 끝내고 관련자료를 검찰에 송부하기로 했다. 또 자진신고 신청이 접수되면 공정위는 일정기간(30일) 안에 자진신고 신청자의 형사면책 여부에 대한 판단을 검찰에 송부하고, 검찰은 이를 최대한 존중하기로 했다. 자진신고로 공정위 시정조처와 과징금을 감면받은 기업이 행정소송에서 협조하지 않으면 감면 혜택을 취소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기로 했다.
한편 공정위는 법무부 합의와는 별개로 대규모유통업·가맹사업·대리점법 등 유통3법과 표시광고법도 전속고발제를 전면 폐기할 방침이다. 또 하도급법은 기술탈취에 한해 부분 폐지키로 했다. 공정위는 현재 추진 중인 공정거래법 전면 개편안에 이런 내용을 담아 정기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공정거래 사건은 일반 살인·절도죄처럼 누구나 위법 여부를 알 수 있는 게 아니라 공정위의 경제분석을 통해 법위반 여부를 가려야 하는 사안이어서, 담합 등과 같은 당연 위법 사건은 전속고발제를 폐지하고, 경제분석이 필요한 일반 불공정행위 사건은 존속키로 했다”고 설명했다. 곽정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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