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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동네가 미디어다…삶의 현장을 바꾸는 저널리즘의 새 얼굴

등록 2018-08-22 17:43수정 2018-08-22 19:45

[더 나은 사회]
어반플레이·닷페이스 등의 ‘다른 문법’
‘내 이야기’에 주목하는 마을미디어들
독자를 ‘해결자’로 이끌어내는 데 성공
사회혁신의 대표 사례로 자리잡는 중
도시 문화 콘텐츠 기업 어반플레이는 “(도시에도) 개성 있는 도시 콘텐츠가 자생할 수 있는 운영체계(OS)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사진은 홍주석 어반플레이 대표.  이봉현 연구위원
도시 문화 콘텐츠 기업 어반플레이는 “(도시에도) 개성 있는 도시 콘텐츠가 자생할 수 있는 운영체계(OS)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사진은 홍주석 어반플레이 대표. 이봉현 연구위원
국보인지 보물인지 큰 관심이 없던 석탑이 달리 보이기 시작한 것은 문화유산 답사기를 읽은 뒤였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사람들은 전국의 유명하다는 곳마다 찾아다녔다. 도시 문화 콘텐츠 기업 ‘어반플레이’의 홍주석(36) 대표는 이야기와 의미가 꼭 멀리 가야만 찾을 수 있는 건 아니라는 데 주목했다. 스마트폰으로 누구나 미디어가 될 수 있는 시대에는 어느 동네든 멋진 의미의 옷을 입을 수 있다고 봤다. 서울 북촌과 서촌이, 남해 독일마을과 통영 달동네 동피랑 벽화마을이 이미 그걸 보여주고 있었다. 특히 낙후된 도시에 생기를 불어넣는 해법을 재개발보다는 재생에서 찾으려는 흐름이 나타나는 요즘, 도시 문화 콘텐츠의 중요성은 한층 커졌다.

도시란 콘텐츠로 가득한 놀이터

“도시의 상점가, 골목 목욕탕, 빵집, 철물점에는 수십년 쌓인 그들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곳곳에 드러나지 않은 창작자도 많습니다. 하나의 콘텐츠는 폭발적으로 어필하기 어렵기 때문에 우리가 하는 것은 이를 연결하는 것입니다. 연희동 이름으로 작은 이야기 40~50개가 모이면 숨어 있던 콘텐츠가 드러나기도 합니다.”

어반플레이에게 도시란 콘텐츠로 가득한 놀이터다. 핵심은 다양한 콘텐츠를 꿰어서 의미를 찾고, 그곳만의 라이프스타일을 만들며, 궁극에는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2013년 소셜벤처로 만들어진 직원 30여명의 어반플레이는 회사 소개 팸플릿에서 “(도시에도) 개성 있는 도시 콘텐츠가 자생할 수 있는 운영체계(OS)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어반플레이의 복합문화카페 ‘연남방앗간’에서 열린 방앗간 토크 모습.  어반플레이 제공
어반플레이의 복합문화카페 ‘연남방앗간’에서 열린 방앗간 토크 모습. 어반플레이 제공

사업지가 선정되면 우선 주민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인물·공간·기록들을 축적해 간다. 그러는 동안 지역의 콘셉트를 어떻게 잡을지 궁리한다. 자료가 확보되면 이를 도시에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경험으로 큐레이션을 한다. 어떤 이야기는 기사나 영상물로, 때로는 캐릭터 상품이나 전시, 축제로 기획된다. 이렇게 재해석된 콘텐츠는 어반플레이의 온라인 미디어 <아는 동네>를 통해 기사, 오디오, 책, 영상 등 다양한 형태로 제공된다.

하지만 홍 대표는 공방, 골목길, 카페 등 “동네 전체”가 메시지를 가진 미디어라고 강조한다. 2015년부터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시작한 ‘연희 걷다’가 그런 예다. 이곳 작은 점포들이 간직한 나름의 이야기에 주목해 점포들을 연희동이란 문화적 가치로 묶어낸 것. 방문객에게 마을 곳곳의 정보를 제공했다. 사진, 그림, 공예품을 감상하고 공방에 들러 브로치, 가방 등을 직접 만들어보게 했다. 골목길을 걸으며 주민이 직접 들려주는 마을 이야기를 듣는 기회도 줬다. 방문객이 늘었고 점포는 매출이 올랐다. ‘연희 걷다’가 이 지역 대표 문화 프로젝트로 떠오르면서, 처음엔 10개이던 참여 점포가 50개로 늘었다. 올가을 4회째 ‘연희 걷다’가 열린다. 어반플레이는 이렇게 서울 연희동, 연남동, 제기동 약령시장, 삼척 어촌마을에서 콘텐츠 기반의 도시재생 경험을 쌓으며 지속가능한 도시를 실험해가고 있다.

“굳이 공익적 콘텐츠를 지향하지는 않아요. 대신 주민이 마을에서 더 잘 살 수 있고, 장사하는 분들은 혼자 할 때보다 마케팅도 잘되게 하려고 합니다. 이래야 대자본을 상대로 조금은 버티는 힘이 생긴다고 봅니다.” 홍 대표는 말한다.

구경꾼이 아니라 뛰어들게 하라

정부나 시장 등 전통적인 방식으로 잘 해결되지 않는 복잡한 사회문제를 많은 사람의 참여로 창의성 있게 풀어나가는 것을 사회혁신이라고 한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누구나 손쉽게 콘텐츠를 전달하고 사람들을 모으는 일이 가능해지면서 어반플레이처럼 미디어를 통한 사회혁신 사례가 잇따라 쏟아지고 있다. 이들 ‘미디어 기업’은 삶의 현장에서 문제를 찾아내 신문이나 방송 등 전통매체와는 다른 문법으로 해결책을 모색하고 사회적 영향력(임팩트)을 만들어내고 있다.

“우리에게 새로운 상식이 필요하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2016년 10월 창업한 닷페이스의 조소담 대표가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닷페이스 사무실에서 활짝 웃고 있다.  이봉현 연구위원
“우리에게 새로운 상식이 필요하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2016년 10월 창업한 닷페이스의 조소담 대표가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닷페이스 사무실에서 활짝 웃고 있다. 이봉현 연구위원
미디어 스타트업 ‘닷페이스’(.face)가 지난해 말 10대 여성의 성 매수 문제를 다룬 ‘에이치아이엠(H.I.M, Here I am) 프로젝트’는 기사도 널리 읽혔지만 그에 못지않게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동참을 이끌어내고 기부와 입법청원운동까지 이른 흔치 않은 사례다. 십대여성인권센터에서 미디어 파트너로 닷페이스를 처음 찾았을 때 기대한 건 시내 전광판에 걸리는 30초짜리 홍보물이었다. 닷페이스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청소년성보호법) 개정 청원과 펀딩까지 이르는 사회적 사명을 목표로 하자고 설득했다.

닷페이스는 일반인이 미성년의 성 매수를 자신의 문제로 생각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인권센터 인터뷰와 연구를 거쳐 콘텐츠 제작의 방향을 종전과 달리 잡았다. 이슈에 대한 지지와 공감을 이끌어내야 제자리걸음인 청소년성보호법 개정도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그동안 해온 대로 피해자를 비판하거나 동정하는 프레임 말고 가해자에게 초점을 돌리는 콘텐츠를 기획했습니다.” 조소담(28) 닷페이스 대표는 말한다.

가해자에게 질문하는 콘텐츠가 방송을 탔다. 채팅앱에서 미성년자라고 밝혔는데도 성 매수를 시도한 남성에게 직접 마이크를 들이댔다. 딸이 있다는 남성의 멋쩍은 목소리, 차 문을 연 채 도망치는 모습이 그대로 방영됐다. 유튜브, 페이스북 등에서 영상을 본 독자들의 반응이 폭발했다. 닷페이스는 영상에 청소년성보호법 개정 서명으로 이어지는 링크를 걸었다. 이틀 만에 5천명이 동참했다. 청소년성보호법 개정 캠페인에는 모두 1만2619명의 서명과 295개 연대단체의 서명, 국회의원 4명의 공식 응답이 모아졌다. 또 십대여성인권센터를 지원하기 위한 펀딩에도 3주 만에 2055명이 참여해 4061만원이 모였다.

닷페이스가 10대 성매수 피해 여성을 위한 펀딩에서 모금된 금액을 십대여성인권센터에 전달하고 있다. 닷페이스 제공
닷페이스가 10대 성매수 피해 여성을 위한 펀딩에서 모금된 금액을 십대여성인권센터에 전달하고 있다. 닷페이스 제공

“우리에게 새로운 상식이 필요하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2016년 10월 창업한 닷페이스는 상투적이지 않은 스토리텔링과 독자의 참여를 끌어내는 능력을 선보이며 짧은 기간에 이목을 끌었다. 유튜브와 페이스북을 주로 활용하는데, 얼마 전 팔로어 수 25만명을 넘겼다. 미디어 전문 액셀러레이터인 메디아티 등의 창업투자도 받았다. 닷페이스는 20대 젊은이의 감성으로 ‘주변 3미터’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룬다는 기조로 콘텐츠를 제작한다. 단순 보도에 그치지 않고 독자의 ‘관여’를 이끌어낸다. 릴레이 글쓰기, 나와서 얘기하기, 펀딩, 입법청원으로 이어지는 독자 관여 방식은 닷페이스가 다룬 학교 페미니즘, 데이트 폭력, 개헌, 화장실 몰카 등의 프로젝트에서도 지속적으로 시도되고 있다.

“미디어가 사람들이 얘기할 수 있는 환경을 적극적으로 만들어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변화가 필요할 때 이에 동의하는 사람들의 커뮤니티를 만드는 일, 그들이 행동할 수 있는 계기를 주는 일이 앞으로 사회를 바꾸는 새로운 정치운동이자 미디어운동 방식이 될 것입니다.” 조 대표의 생각이다.

‘나에겐 중요한’ 얘기를 해줘

주류 미디어가 다루지 않지만 나에게는 의미가 있는 이야기가 많이 있다. 최근 몇년간 활성화된 마을 미디어들은 이런 이야기를 풀어내 작은 지역을 이어주고 변화하도록 북돋는다. 서울 강서구는 지난해 특수학교 설립 문제로 장애아의 부모들이 학교 설립에 반대하는 주민들 앞에서 무릎을 꿇는 일이 일어난 곳이다. <강서에프엠(FM)>에선 올여름 장애아를 둔 어머니 셋이서 이야기를 나누는 ‘특별한 그들만의 세상’이란 팟캐스트 프로그램이 네차례 방송됐다. 아이가 아프다는 판정을 받았을 때의 심정, 아이를 키우며 느끼는 주변의 시선, 남편과의 부부생활까지를 담담히 풀어냈다.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너무 모른다고 생각해서 기획한 꼭지였지만, 장애아의 부모가 마이크 앞에 나와 아이 이야기를 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발달장애 아이를 둔 어머니들이 <강서에프엠(FM)>에서 토크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강서에프엠 제공
발달장애 아이를 둔 어머니들이 <강서에프엠(FM)>에서 토크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강서에프엠 제공
초등학교 5학년 자폐성 장애 아들을 둔 한유정씨는 방송에 나온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작년 특수학교 설명회에 갔다 오는데 너무 서글펐다. 곰곰 생각해보니 내 아이가 자라서까지 이런 환경이면 안 되겠더라. 비장애인이 알려 하지 않으면 내가 다가가서 알려주고 싶었다.” 방송이 나간 뒤 “네가 이렇게 힘들게 살았구나” 하며 위로를 건네온 친지, 친구들이 많았다. 눈물이 멈추지 않아 차를 세워놓고 방송을 들었다는 다른 장애인 부모들과 서로 공감하고 의지할 수 있게 된 것도 좋다고 한다. 김지혜 <강서에프엠> 방송국장은 “지난해 지역의 경험도 있어서 기획했는데, 방송을 해보니 반향이 크게 느껴진다”며 “내년에는 장애 형제를 둔 비장애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시즌2를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서울 금천구의 <라디오 금천>은 지역 현안인 독산동 우시장 도시재생을 둘러싸고 시장 상인과 지역주민, 주변 예술공방, 봉제공장 주민들이 함께 마이크 앞에 앉는 ‘독산동 아모르파티’를 한달에 두번씩 8개월째 방송하고 있다. 이은희 <라디오 금천> 사무국장은 “마찰이 클 게 분명한 도시재생 얘기를 계속해 나가니 시장 상인들도 주변과 상생하는 방향으로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게 변화”라고 말했다. 서울시 마을미디어지원센터에 따르면 2018년 현재 서울에는 40곳의 마을 미디어가 매주 50여건의 콘텐츠를 정기 제작해 지역사회에 배포하고 있다.

최근 ‘솔루션 저널리즘’이 언론의 한 흐름으로 세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솔루션 저널리즘에선 언론이 단지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세상에 정상적으로 풀리는 문제도 많으며 그런 것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린다. 비슷한 문제에 적용 가능한 해법도 앞장서 고민한다. 언론의 부정 편향(bias)을 극복하고 무관심하고 냉담해진 독자를 ‘문제 해결자’로 초대하는 것이다. 앞서 소개한 작은 미디어의 활동도 그런 흐름 속에 있다. 분명 ‘파괴적’ 기술변화에 직면한 전통 미디어에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 연구위원 bhlee@hani.co.kr

어반플레이가 지난해 기획한 ‘연희 걷다’ 행사에서 참석자들이 마을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걷고 있다.  어반플레이 제공
어반플레이가 지난해 기획한 ‘연희 걷다’ 행사에서 참석자들이 마을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걷고 있다. 어반플레이 제공
2018년 현재 서울에는 40곳의 마을 미디어가 활동하고 있다. 강서에프엠의 ‘초딩을 다독다독’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박현주(왼쪽)씨와 김진희씨.  <한겨레> 자료사진
2018년 현재 서울에는 40곳의 마을 미디어가 활동하고 있다. 강서에프엠의 ‘초딩을 다독다독’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박현주(왼쪽)씨와 김진희씨.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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