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한국과 인도네시아 양국 정부, 자동차산업협회·민간기업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제1차 한-인도네시아 자동차 대화’가 열리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통상교섭본부가 수출·내수 동반 부진으로 곤경에 처한 국내 자동차산업을 구하기 위해 동남아 수출시장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수입관세를 넘어 상대국 자동차 소비세 개편과 소형차 기준 변경까지 요청하는 등 전례 없는 행보까지 하며 현대·기아차에 대한 지원 사격을 하는 모습인데, 일본이 완전 장악한 동남아 자동차시장에서 돌파구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24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인도네시아 산업부와 ‘제1차 한-인도네시아 자동차 대화’ 행사를 열었다. 강성천 산업부 통상차관보, 하르잔또 인도네시아 산업부 차관보, 한국자동차산업협회·현대자동차 관계자, 인도네시아 자동차 국장 등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우리 쪽은 “인도네시아가 차종(4도어·5도어), 배기량(1500cc 미만·1500cc 이상)에 따라 국내 소비세를 차등 적용하고 있어 4도어 1600cc 이상이 주종인 한국 자동차 업계가 진출하는데 비관세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양국 자동차산업 협력을 위해 자동차 소비세를 개선해달라고 인도네시아에 공식 요청했다. 인도네시아 자동차 소비세율은 4도어의 경우 1500cc 미만은 30%, 1500cc 이상은 40%이고, 5도어는 1500cc 미만은 10%, 1500cc 이상은 20%다. 인도네시아의 연간 자동차 시장은 약 100만대(2017년 기준)로, 일본차가 사실상 독점(97%)하고 있다. 한국차 비중은 0.2%에 그친다.
앞서 산업부는 미얀마에서도 자동차 내수시장 확보를 겨냥한 소형차 기준변경을 상호 협의했다. 지난 4월 23일 미얀마에서 열린 한-미얀마 통상장관회담에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배기량 1500cc로 돼 있는 미얀마의 소형차 기준을 1600cc로 변경해줄 것을 요청했다. 배기량 1499cc 이하인 일본차는 미얀마에서 특별소비세를 면제받고 있는 반면 현대차 아반떼 차종(1599cc)은 특소세를 물고 있어 소형차 배기량 기준을 상향 조정해달라고 한 것이다.
국가 통상조직의 대외 무역협상은 자국의 모든 수출입 산업·상품에 걸쳐 상대국의 수입관세 철폐·인하를 목표로 하는 게 일반적이다. 바꿔 말해 통상교섭본부가 ‘양국 산업협력’을 내세우며 자동차라는 특정 품목을 꼽아 상대국의 국내 세제 등 제도를 바꾸는 대화(협상)에 나서고 있는 건 매우 이례적이다. 현대·기아차가 미국·중국시장에서의 고전 지속, 미국의 ‘무역확장법 232조’ 자동차 관세 부과 예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협상에서의 자동차 양보 등으로 어려움을 겪자, 정부가 ‘남방시장’에 좌표를 설정하고 현대·기아차 구하기에 나선 형국이다. 각 나라마다 기존 수출입 사다리를 부수고 걷어차는 등 무역·통상질서를 깨고 무시하는 예측불허의 글로벌 통상 전쟁이 벌어지자, 우리 정부도 수출시장의 소비세 개편·소형차 기준 변경까지 ‘협의 대상’으로 올려가며 자동차산업 방어에 발 벗고 나선 셈이다.
일본 차는 인도네시아·미얀마뿐 아니라 아세안 10개국(자동차 내수시장 319만대·2017년)을 거의 장악하고 있다. 일본 차 브랜드의 아세안시장 점유율은 79%(2017년)이고, 한국차는 4.3%다. 김현종 본부장은 지난 4월 문재인 정부 ‘신통상정책’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일본에 뺏긴 아세안·인도시장을 되찾아야 한다. 자동차·부품의 경우 말레이시아·베트남·태국에서 우리는 수입관세 20~70%를 내야 하는데, 일본은 이들 국가와 양자 자유무역협정으로 관세를 철폐받고 있다”며 동남아 자동차시장에서 일본과 한판 각축을 예고한 바 있다.
조계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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